2014년 상반기 결산 : 지나치면 아쉬운 앨범들!
좋은 음악은 언제나 우리 마음을 흐뭇하게 합니다. 앞서 보낸 2014년의 반절도 여느 해와 다름없이 멋진 작품이 많이 나와 음악 팬들에게 설렘과 기쁨을 안겼습니다. 이들 음악은 장르, 분위기, 스타일 등 저마다 다른 매력을 나타냄으로써 다양한 기호와 취향을 만족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앨범은 집적된 뮤지션의 성향과 수록곡 간의 유기적 흐름을 통해 싱글에서는 맛볼 수 없는 별개의 재미를 주곤 합니다. 지난 반년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독특한 매력으로 즐거움을 제공한 앨범들을 선별했습니다. 그냥 지나치면 아쉬울 2014년 상반기의 훌륭한 가요, 팝 앨범들을 만나 보세요.
글 제공 | 한동윤 평론가
여성 트리오 바버렛츠의 음악은 남들과 구분되는 지향 때문에 돋보입니다. 이들은 일단 화음으로 독보적인 방향성을 나타냅니다. 현재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에는 화음을 내는 보컬 그룹이 거의 없습니다.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많지만, 혼자서 높이, 크게 지를 뿐입니다. 노래 잘하는 가수로 이뤄진 그룹도 많지만, 하모니를 만드는 경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이들의 아름답고 부드러운 화음은 더욱 근사하게 느껴집니다. 예스러운 음악 스타일 또한 바버렛츠를 튀어 보이게 하는 요소입니다. 이들은 1950, 60년대에 유행했던 재즈. R&B, 로큰롤 등을 선보여 중년 음악 팬들에게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10대, 20대의 젊은 음악 팬에게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합니다. 하모니와 복고의 멋진 만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걸음마를 떼고 있지만, 이 동갑내기 소녀 그룹은 데뷔 앨범을 통해 어린 나이가 믿기지 않는 뛰어난 보컬 기량과 가수로서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한국 특유의 전형적인 발라드는 물론 굴곡과 박자를 잘 타야 묘미가 사는 R&B까지 두루 소화해 감상에 즐거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가창력도 가창력이지만 기본적으로 노래들이 괜찮은 것이 이 앨범의 장점이며, 그룹을 더욱 빛나게 하는 배경입니다. 멤버들의 나이에 맞게 가사는 대체로 10대의 정서, 생활을 담고 있으며 곡은 몇 번만 들어도 귀에 익을 인상적인 선율을 내보입니다. 또한, 수록 곡들의 모양새가 특색은 있되 서로 현격한 차이를 내지는 않아서 안정적으로 느껴집니다. 10대의 발랄함, 심각하지 않은 준수함이 적절하게 배합된 작품입니다.
역시 베테랑은 베테랑입니다. 30년이 넘는 긴 공백이 무색할 만큼 김추자는 새 앨범에서 관록의 보컬을 시원스럽게 터뜨렸습니다. 여전히 힘이 넘치는 가창은 한창때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 없고요. 펑크(funk) 록, 하드록, 사이키델릭, 성인 취향의 스타일 등 그녀가 전성기에 마당처럼 뛰어 놀던 음악 양식이 또다시 이어지는 것도 과거를 생각나게 합니다. 물론 과하다 싶은 콧소리, 요즘 가요에서는 웬만해서는 마주할 수 없는 예스러운 창법 때문에 젊은 음악 팬들은 살짝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빠르게 바뀌는 트렌드에 옛날 음악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기를 반복하는 우리 대중음악계에서 김추자의 이번 앨범은 과거의 감성을 재현하고 음악적 다양성을 확장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앨범 제목처럼 너무 늦지 않은 컴백이었습니다.
3인조 인디 밴드 Ludistelo는 신시사이저를 전면에 내건 록 음악을 들려줍니다. 전자음이 모든 면을 장식하고 있음에도 그런지와 사이키델릭, 헤비메탈의 기운을 고르게 품은 'Summer Hill', 포크 록에 앰비언트를 접목한 'Play The Air'처럼 여러 노래에서 장르 간의 다채로운 결합을 행해 앨범은 더욱 흥미롭습니다. 멤버들이 말레이시아, 프랑스, 제주도 등을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제작됐기에 선율과 리듬의 진행 외에 특정 분위기를 소개하는 것처럼 오묘한 공간감을 내보이는 점도 이 앨범을 돋보이게 합니다. 록의 스트레이트함, 일렉트로닉의 강렬한 사운드, 완급을 반복하는 꼼꼼한 편곡 등으로 춤추기와 감상용의 기능을 모두 만족하고 있습니다.
많은 배우가 싱글이나 앨범을 취입하며 뮤지션에 도전했지만, 그 많은 배우 중 다수가 그리 좋지 않은 작품을 들고 나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우들의 가수 변신에 대해서 미덥지 못했죠. 하지만 박준면의 데뷔 앨범 [아무도 없는 방]은 멋진 음악으로 지금까지 품어 온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고 있습니다. 고독, 그리움, 좌절 등을 토대로 써 내려간 어두운 톤의 가사는 록, 포크, 블루스 반주를 발판 삼아 격정을 표출합니다. 이로 인해 노래들은 한 자, 한 자에 생동감이 깃든 살아 있는 시처럼 느껴집니다. 깊이 있고 섬세한 표현, 안정된 보컬이 여느 연기자들의 뻔한 변신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이 앨범만의 매력입니다. 모든 수록곡을 박준면이 직접 작사, 작곡했다는 사항은 또 한 번 놀라움을 안깁니다. 감초 연기자라는 타이틀보다 이제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직함이 더 어울릴 멋진 변신입니다.
리믹스 아티스트 컬렉티브(Remix Artist Collective)라는 원래 이름으로 알 수 있듯 RAC는 리믹스를 전문으로 하는 팀으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멤버들의 탈퇴로 처음 팀을 조직했던 André Allen Anjos만 남았고, 이것이 계기가 돼 그는 리믹스가 아닌 창작곡을 만드는 것으로 그룹의 음악 노선을 바꾸게 됩니다. 약 2년 동안의 준비를 거친 뒤 선보인 앨범은 '과연 리믹스만 하던 뮤지션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잘 들리는 멜로디와 정돈된 악기 편성을 자랑합니다. 일렉트로닉, 팝 록을 주 메뉴로 선택한 앨범은 어디 하나 난해한 부분 없이 캐주얼한 모습을 나타내 누구나 가볍게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지닙니다. MNDR, Tegan And Sara, Tokyo Police Club 등 유명 인디 뮤지션들의 대대적 참여는 [Strangers]의 또 다른 즐길 거리입니다.
2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음악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처음 발표하는 솔로 앨범이라 눈길을 끌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리 중대한 포인트는 아닙니다. 더 관심을 끄는 요인은 Blur 이후에 활동했던 Gorillaz 때와 마찬가지로 솔로 음반에서도 Damon Albarn이 변화를 시도했다는 점입니다. 트립 합을 어느 정도 교집합으로 두는 부분에서는 Gorillaz와의 연속성을 논할 수 있겠으나 그는 이 앨범을 통해 솔로 뮤지션으로서 차별화된 모습을 보입니다. 단출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사운드, 그럼에도 장난스럽지 않은 분위기를 겸비해 용이한 접근성과 무게감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부단한 창작에 대한 열의와 새로움에 대한 욕구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불가리아 가수 Ruth Koleva의 두 번째 앨범 [Ruth]는 10여 년 전 팝 음악계의 어느 한 국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전자음을 덧댄 네오 소울, 브로큰 비트, 뉴 재즈가 조금씩 세력을 확장하던 순간이죠. 이 때문에 그녀는 King Britt, New Sector Movements 같은 뮤지션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수록 곡들은 이 양식들이 보유한 특징인 섬세한 구성의 리듬, 차분한 멜로디, 옅게 깔리는 화음을 온전히 복원하고 있습니다. 플루트 연주와 기억하기 쉬운 코러스가 아기자기하게 들리는 'Freak And Fly', 다이내믹한 드럼 패턴과 듀엣 형식의 보컬로 농밀함을 드러내는 'Clarity', 빅 비트와 UK 거라지, 브로큰 비트의 합집합에 서정적인 음을 쌓아 올려 확실한 대조를 보이는 'Gone' 등은 감상은 물론 작게 몸을 흔들기에도 좋습니다. 곱고도 활동적인 것이 이 음반의 최대 장점이에요.
스웨덴 밴드 Dirty Loops의 데뷔 앨범 [Loopified]는 진정 오묘한 퓨전의 모음입니다. 이들의 음악을 간단하게는 얼터너티브 록, 애시드 재즈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완전히 정의되지 않습니다. 'Hit Me'에서는 일본 재즈 밴드 Casiopea의 몇몇 곡이 연상되는 재즈 펑크를 하고, 'Sexy Girls'에서는 전자음을 주요 악기로 써서 요즘 유행하는 일렉트로 팝을 들려줍니다. 'Sayonara Love'에서는 Prince 특유의 섹시한 펑크 느낌이 나고, 또 어떤 노래에서는 Jamiroquai가 바로 생각나기도 합니다. 애시드 재즈도 맞고 얼터너티브 록도 맞긴 하지만, 분명히 그 이상의 재즈 퓨전과 록을 선사합니다. 여기에 베이스, 드럼, 키보드로 이뤄진 멤버들의 연주는 무척 튼실해서 그룹이 내는 다채로움을 하나로 단단히 엮고 있습니다. 재즈 밴드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고음의 보컬도 음악을 맛깔스럽게 하는 특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