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음악을 근간으로 한 백인 뮤지션들의 달달 R&B/SOUL
'Blue Eyed Soul'이라는 용어는 'Soul' 장르 안에 자리하고 있는 하나의 서브 장르입니다. 사실 장르라기보다는 구분에 가깝죠. 직역 그대로 해석하면 '백인들이 하는 소울 음악'입니다. 처음엔 흑인음악의 영역에서 아주 작게 움텄지만, 지금은 흑인음악의 트렌드에 힘입어 많은 아티스트들이 배출되었죠. 사실 지금에 와서 편의상 규정하는 이런 장르 구분은 새삼 의미가 없어져 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상 현재 블랙 뮤직의 동향은 인종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방대하게 향유되고 있으니까요. 그만큼 한 세기가 훌쩍 넘는 흑인음악의 역사에서 백인들이 남겨놓은 족적들을 짚어내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흑인 R&B/SOUL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레이블 모타운에서 배출한 걸출한 2000년대 뮤지션 Remy Shand나 98 Degrees 같은 아티스트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상징적이며, 'White Trash'라 불리는 백인빈민에서 힙합 씬의 거물이 된 Eminem의 성공신화는 이제 언급이 민망할 정도죠.
미국 메이저 음악의 핵심 키워드가 블랙 뮤직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건 누구나 실감하고 있습니다. Robin Thicke, Macklemore And Ryan Lewis의 그래미 어워즈와 빌보드 석권, Iggy Azalea의 빌보드 차트 1위 장기간 체류는 괄목할만하지만, 생각해보면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라는 것이죠. 블랙 뮤직은 흑인들 고유의 문화지만, 동시에 문화라는 점에서 필연적인 개방을 맞고 있습니다. 이 주에 소개해드릴 플레이리스트는 흑인 음악을 근간으로 한 백인 뮤지션들의 R&B/SOUL 곡으로 구성해봤습니다.
최초 Remy Shand의 등장은 강렬했던 데뷔 앨범 [The Way I Feel]을 발매하며, 모타운이 선택한 백인 소울 아티스트로 주목을 받지만, 인상적인 등장만큼이나 인상적인 퇴장을 맞이한다. 딱히 무슨 일이 있던 건 아니다. 무기한 잠적했을 뿐이다. 하지만 Remy의 1집 앨범 [The Way I Feel]은 흥미롭게도 뮤지션의 무신경함과 앨범의 완성도가 결합하여 요상한 아우라를 얻게 되는데, 그의 앨범 한 장 툭 내놓고 홀연히 사라지지만, 팬들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1집 앨범에 묶여 있는 불친절한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아마 Remy Shand가 불의에 사고로 죽기라도 했으면, 이 앨범은 Jeff Buckly의 유작 [Grace] 만큼이나 회자됐을지 모른다. 그야말로 뚝심 있는 앨범 한 장이다. 그리고, 'Blue Eyed Soul'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반드시 등장하는 이 앨범은 그만한 완성도와 작품성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Remy Shand는 2013년부터 Remy Records라는 독립 레이블을 운영하며, 밴드캠프, 유투브 등의 플랫폼을 통해 10년 동안 꾸준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북 유럽풍의 R&B/SOUL은 사실 미국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조금 덜 세속적이고, 조금 더 몽환적이라 해야 할까, 멜로디 라인도 특유의 그루브가 있다. 올해 초 발매한 스웨덴 출신의 R&B/SOUL 싱어 Erik Hassle의 앨범이 그렇다. 앨범은 PB/R&B라고 하는 최근의 R&B 경향에도 충실하지만, 그 밖의 뭔가가 있다.
Melo 역시 스웨덴 출신의 싱어송라이터다. 흥미로운 건 이 아티스트가 한국의 파이리데이자 레이블 (헤리티지 등이 소속되어있다.)을 등에 업고 소개되었다는 점인데, 블로거들의 입소문을 타고, 제2의 Lasse Lindh로 등극하나 싶었지만, 아쉽게도 [Off My Chest]라는 앨범 발매를 마지막으로 현재는 감감무소식이다. Erik Hassle 같은 트렌디한 R&B는 아니지만, 차분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전통적인 Soul 그루브를 느낄 수 있다.
단연, 2013년의 가장 핫한 앨범 중 하나는 Mayer Hawthorne의 [Where Does This Door Go]였다. 다재다능하다는 말은 이런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프로듀서부터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싱어송라이터까지 전방위적인 포지셔닝이 가능한 Mayer Hawthorne은 이 앨범에 이르러 대기만성을 이뤘다.
프로듀서 Robin Hannibal을 공통분모로 엮이는 이 두 팀은 사실 R&B나 SOUL의 범주로 덮어놓고 묶기엔 애매한 부분이 많다. 두 팀 모두 소울풀한 창법을 쓰는 보컬을 가지고 있다는 점, 통상적인 R&B/SOUL과 분명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 정도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흑인음악의 끈적함에 집요하게 파고들지 않는다. 필드도 다르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Blue Eyed Soul이 가진 진정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같은 DNA의 다른 생활양식'
Quadron과 Rhye, 각각의 앨범이 바라보는 지향점 또한 비슷한 듯 다르다. 보컬 Coco O와 Robin Hannibal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Quadron의 [Avalanche]가 발랄한 로맨티시즘을 담고 있다면, Mike Milosh와의 프로젝트 팀 Rhye의 [Woman]에선 좀 더 관능적이고 농밀한 프로덕션을 담아냈다. 두 가지 모두 프로듀서 로빈 한니발이 가지고 있는 색깔일 것이다.
이상 'Blue Eyed Soul' 추천 아티스트 6인의 추천 곡들을 만나봤습니다. 이번 회차에서 말랑말랑한 소울 음악을 다뤘다면, 다음 번에는 'Blue Eyed Hip Hop'에 대한 테마로 백인들의 빡센 힙합을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