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음격 6회: 널 보면 먹고 싶어 [한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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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음격 6회: 널 보면 먹고 싶어 [한동윤]

2014.07.23

여름은 매번 다이어트라는 질긴 과제를 부과합니다. 다른 때보다 얇은 소재에, 길이가 짧은 옷을 찾게 되니 자연스레 살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계절, 이 모습에서 더한 자신감을 표출하기 위해, 또는 상대적으로 부끄러움을 덜 느끼고자 우리는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이 고된 숙제에 빠져듭니다. 스포츠센터와 각종 건강보조식품 업체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노출의 계절', '건강미를 뽐낼 시기' 등의 표어로 잠재한 소비자를 모집합니다. 브라운관에는 잘빠진 몸매의 연예인들이 상주하는 탓에 몸 만들기에 대한 압박은 줄어들 새가 없어요. 기업의 상술과 미디어의 암묵적 지지가 가담한 다이어트 열풍은 거대한 외모 지상주의의 울타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더욱 고단하게 합니다. 여름과 다이어트의 무서운 이면이에요.

이 둘의 공고한 관계가 두려운 이유가 또 있습니다. 여름은 살 빼기를 부추기면서 한편으로는 많은 에너지원을 요구하는 계절이기 때문이죠. 특별히 큰 활동을 하지 않아도 여름에는 수분이 쉽게 빠져나갑니다. 체내에 수분이 부족하면 피로감을 빨리 느끼고 심하게는 짜증이나 화를 잘 내게 됩니다. 그렇다고 물만 마시면 되나요, 원활한 일상생활과 건강을 위해서는 충분한 열량의 음식물을 섭취해야 하죠. 센스 있는 우리 선조들은 무더위에 무력감을 느끼고 입맛을 잃는 사람들을 위해 3단계로 복날까지 지정하셨습니다. 또 어느 순간 불어 닥친 '치맥' 광풍은 열대야에 시달리는 현대인을 위한 짧은 돌파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비루한 몸뚱이가 되긴 싫으니 참아야겠고, 살자니 먹어야겠고. 여름은 다이어트와 생존이라는 딜레마에 우리를 몰아넣습니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 여름이라고 초조한 마음에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하는 분이 많죠. 극단적인 다이어트는 공격적인 태도를 유발하고 몸을 망치기 쉽대요. 그리고 조금만 더 버티면 다시 두꺼운 옷 입는 계절이 와요. 인생 뭐 있어, 먹을 수 있을 때 좋은 음식 많이 먹어 두는 게 좋은 거지. 어렵게 살 뺐는데 '결국 얼굴이 문제였구나' 하고 후회할 바엔 그냥 먹겠어.

오늘 다중音격은 제목만 봐도 음식이 당기는 노래들을 선곡했습니다. 식욕을 돋우기에는 역시 와인이 좋죠. 특히 레드 와인이 육류의 지방질을 중화해 준다고 하니 Neil Diamond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UB40의 'Red Red Wine'을 듣고 닭 요리를 만나 보세요. 미국은 우리나라만큼이나 닭으로 만든 음식이 일반적입니다. 패스트푸드가 발달한 나라라서 프라이드치킨은 일상이죠. 많은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된 'Jambalaya (On The Bayou)'는 쌀과 닭, 해산물 등을 넣어 만든 미국 남부의 요리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리소토랑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치킨과 더불어 피자, 족발, 보쌈이 일명 '피치족보'라 불리며 야식 계의 사대천왕으로 군림하죠. 리치의 '던질 수 없는 피자'는 주인공이 피자를 먹다가 여자 친구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모습을 목격하고 충격 받은 상황을 재미있고 애절하게 묘사했구요, 블루빈스의 '족발'은 족발을 의인화해 은은한 향기와 구릿빛 피부로 자신을 유혹한다고 말합니다. (어르신들이 보면 지랄한다고 하시겠어요) 인디 소울 밴드 마호가니 킹의 '할매 보쌈'은 스킷 형식의 짧은 노랜데요, 제목과는 다르게 족발 얘기만 합니다.

Kelis는 음식을 참 좋아하나 봅니다. 얼마 전 낸 새 앨범 제목도 [Food]고요, 역시 음식을 제목으로 쓴 수록 곡들이 있어요. 3집의 리드 싱글이었던 'Milkshake'는 국내에서 광고에 삽입돼 유명해졌죠. 일본 여성들이 결성한 미국 밴드 Cibo Matto도 음식과 연관이 깊습니다. 그룹의 이름부터가 이탈리아어로 '광란의 음식'이라는 점, 데뷔 앨범 [Viva! La Woman]의 노래들은 두 편을 제외하고 '소고기 육포', '백후추를 곁들인 아이스크림' 등 모두 제목으로 음식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패러디 전문 뮤지션 Weird Al Yankovic은 Michael Jackson의 명곡 'Beat It'을 패러디한 'Eat It'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배부르다고 말하지 마, 그냥 먹어. 치킨도 먹고 파이도 먹어. 끓인 건지 튀긴 건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냥 먹어." 꼭 다이어트 때문이 아니라도 간혹 특별한 사정을 이유로 맛난 먹을 거리를 앞에 두고도 침만 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즐겁게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게 아닐까 싶어요. 먹을 수 있을 때 먹읍시다. (아… 진짜 난 언제 살 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