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재즈 여행 (Pt. 1): 남아프리카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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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재즈 여행 (Pt. 1): 남아프리카 공화국

2020.06.22
Special

아프리카 재즈 여행 (Pt. 1): 남아프리카 공화국

여러분은 "재즈"라고 하면 어느 도시를 가장 먼저 떠올리십니까? 많은 분들이 뉴욕 혹은 뉴올리언스를 떠올리실 것이고, 제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의외로 많은 분들이 쿠바의 아바나를 떠올리셨습니다. 맞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의 후손들이 대략 120년 전 미국의 뉴올리언스에서 재즈라는 새로운 음악을 만들었고 이후에 이 음악은 여러 도시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뉴욕이든, 시카고든, 혹은 아바나이든 그곳에서 제일 먼저 재즈를 연주한 사람들 역시 아프리카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즈라는 음악에서 아프리카의 어느 도시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아프리카는 재즈의 문화적 뿌리이자 1950년대 이후로 세계적인 연주자들을 배출했고 여전히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이번 회와 다음 회 2회에 걸쳐서 아프리카의 재즈를 간략하게 살펴볼까 합니다.

이미 외신을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지난 4월 30일 나이지리아 출신의 재즈 드러머이자 "아프로 비트"의 창시자로 불렸던 Tony Allen이 80세의 일기로(1940~2020)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대략 한 달 뒤에 Tony Allen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설적인 트럼펫 주자 Hugh Masekela가 함께 녹음했던 앨범 [Rejoice]가 유작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음악으로 문을 열겠습니다.

Tony Allen과 함께 [Rejoice]를 남긴 트럼펫 주자 Hugh Masekela(1939~2018) 역시 이제는 고인이 되었습니다. 남아프리카 출신의 그는 1959년 남아공 최초의 세계적인 재즈 밴드 The Jazz Epistles(재즈 사도들의 편지)의 멤버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이 밴드는 Kippie Moeketsi(알토 색소폰), Jonas Gwangwa(트롬본), Dollar Brand(피아노), Johnny Gertze(베이스), Makaya Ntshoko(드럼)로 이뤄진 정통 하드밥 밴드였습니다. 현재 그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1959년 당시에 미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이 정도의 하드 밥 밴드를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이들의 연주는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The Jazz Epistles가 활동하고 있던 남아공의 현실은 엄혹했습니다. 이 지역은 17세기부터 네덜란드인들의 침략을 받기 시작했고 19세기에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20세기에는 영국연방의 한 지역으로 종속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네덜란드계 국민당은 인종차별(국토 내에서 아프리카계 사람들의 활동구역을 한정해 놓은 소위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아프리카계 사람들의 시위를 1960년 샤프빌에서 무력으로 진압하며서 수많은 사상자를 냈으며 그럼에도 선거에서 다수당이 되어 인종차별법을 강화하기에 이릅니다. 그러자 Hugh Masekela는 자신들을 탄압하는 정부를 피해서 기나긴 망명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망명기간 Masekela는 음악적 스타일을 바꿔 보다 대중과 가까워진 재즈-팝을 구사하며 'Grazing in the Grass', 'Don't Go Lose It Baby'와 같은 히트곡을 발표했고, 아울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야만적인 인종차별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던 Nelson Mandela가 오랜 투옥 끝에 1990년에 석방되고 이듬해에 인종차별 악법이 폐지되자 Masekela는 약 30년 동안의 망명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왔으며 그 후에도 아프리카의 현실을 담은 그만의 재즈로 생애 끝까지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Hugh Masekela와 더불어 The Jazz Epistles를 이끌었던 피아니스트 Dollar Brand 역시 남아공의 인종차별을 피해 1962년 망명길에 오릅니다. 그리고 이듬해 스위스에서 재즈의 거장 Duke Ellington을 만나 Ellington의 추천으로 미국과 유럽 각지에서 활발한 음악 활동을 펼쳤습니다. 남아공의 민속음악과 19세기 음악인 마라비(marabi) 그리고 흑인 교회음악 등을 재즈와 접목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독특한 재즈 스타일인 소위 "케이프 재즈(Cape Jazz)"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들었으며 1968년 이슬람으로 개종해 새로운 이름 Abdullah Ibrahim으로 오늘날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Hugh Masekela와 마찬가지로 1990년대 초, 인종차별제도가 철폐된 뒤 고국으로 돌아온 Ibrahim은 아프리카의 광대한 자연과 굴곡의 역사를 담은 작품들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Nelson Mandela는 그를 가리켜 "우리들의 Mozart"라고 칭송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재즈의 모태였던 The Jazz Epistles의 트롬본 주자였던 Jonas Gwangwa는 Masekela, Ibrahim과는 달리 인종차별과 억압이 만연했던 남아공에 그대로 남아있게 됩니다. 하지만 1965년 미국 카네기홀에서 열린 "아프리카의 소리 (Sound of Africa)" 음악회에 참가하면서 그의 명성은 남아공의 국경을 넘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Hugh Masekela, Miriam Makeba, Letta Mbulu 등 이미 망명을 택한 남아공의 음악인들이 참여한 이 공연을 통해 그의 이름이 더욱 알려지자 Gwangwa에 대한 남아공 정부의 감시와 탄압은 심해졌고 그는 결국 1970년대에 망명길에 오릅니다.

1988년 남아공의 험난한 인권운동을 조망했던 다큐멘터리 [자유를 외치다 Cry Freedom]의 영화음악을 담당했던 그는 1991년 인종차별법의 철폐로 다시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으며 이후 남아공의 문화 친선대사로 국제무대에서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역시 The Jazz Epistles의 멤버로 1962년 망명을 택한 드러머 Makaya Ntshoko는 팀의 동료였던 베이시스트 Johnny Gertze와 함께 Abdullah Ibrahim(당시에는 Dollar Brand) 트리오에서 '63년부터 '65년까지 활동하다가 '66년 당시 세계 재즈 음악인들의 안식처와도 같았던 덴마크 코펜하겐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Ben Webster, Dexter Gordon, Stuff Smith, Benny Bailey 등 미국에서 건너온 재즈의 거장들(그들 역시 미국의 인종차별에 치를 떨어야 했습니다)과 함께 연주했으며 '7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활동 중이던 Hugh Masekela 밴드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메인스트림 재즈에서 아방가르드 음악까지 다양한 연주를 들려주었던 Ntshoko는 역시 '90년대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음악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90년대 Hugh Masekela와 Abdullah Ibrahim이 그들의 고국에 돌아왔을 때 그곳에서 가장 돋보이는 젊은 재즈 연주가는 목관악기 주자 Zim Ngqawana였습니다. 알토, 테너, 바리톤 색소폰에 플루트까지 능숙하게 다뤘던 그는 남아공의 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뒤 Max Roach, Wynton Marsalis의 장학생 선발과정을 거쳐 미국에서 Arche Shepp, Yusef Lateef를 사사한 연주자였습니다. Zimology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11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왕성한 창작을 보여줬는데 안타깝게도 지난 2011년 52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Ngqawana와 같은 해인 1959년에 태어난 색소포니스트 McCoy Mrubata는 1992년 Hugh Masekela 밴드에 발탁되면서 주목을 받은 연주자입니다. 이후 자신의 앨범들을 통해 South Africa Music Award의 "전통 재즈 앨범" 부문에서 세 차례나 수상하는 등 오늘날 최고의 정통파 색소포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재즈팬이면서도 지금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재즈에 특별한 관심을 가질 기회가 없었던 분이라면 지금까지 간략하게 살펴본 음악 속에서 남아공의 재즈가 이토록 깊은 역사와 자기 이야기를 갖고 있었는지, 그리고 현재 음악인들의 음악이 국제적 명성의 연주자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 않는 내용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실 수도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릴 연주자는 최근에 유니버설 뮤직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음반을 여러 나라에 발매한 남아공의 재즈 피아니스트 Nduduzo Makhathini입니다. 앞서 소개해 드린 Zim Ngqawana, McCoy Mrubata 밴드를 통해 성장한 그는 아프리카 고유의 음악과 재즈를 조화시켜 아프리카 특유의 포스트-밥을 완성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는 Abdullah Ibrahim의 전통을 새롭게 잇고 있으며, 남아공이라는 지역적 한정을 벗어나 재즈 전체에 새로운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옹골찬 그의 피아노 터치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모든 예술의 궁극은 결국 탄탄한 기초를 기반으로 한 "개성"이란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다음 회에는 서아프리카 지역의 재즈를 여러분들과 함께 여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