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자'들의 앨범, 사우스카니발 [Cloud9]

매니아의 음악 서재

'즐기는 자'들의 앨범, 사우스카니발 [Cloud9]

2020.06.24
Special

'즐기는 자'들의 앨범, 사우스카니발 [Cloud9]

1980년대 말의 헤비메탈 앨범은 "누가 더 어려운 연주를 하나?"를 경쟁하기라도 하듯이 빠르고 무거운 톤의 연주가 온 앨범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 대표적인 앨범으로 Metallica의 [...And Justice For All]과 Megadeth의 [Rust In Peace] 앨범 정도를 꼽을 수 있을 텐데요. Metallica가 [...And Justice For All] 앨범의 엄청난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 앨범 작업을 서두른 이유 중의 하나가 라이브 연주가 너무 힘들어서였고, 그렇기에 Bob Rock이라는 대중 취향의 프로듀서와 작업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Nirvana의 [Nevermind] 앨범을 필두로 Pearl Jam의 [Ten], Soundgarden의 [Superunknown], Alice In Chains의 [Dirt] 등의 앨범은 1990년대 초반 미국 대중문화의 지형을 바꾼 그런지 열풍의 꼭지점을 장식하는 앨범이지만, 이 앨범들은 그런 문화혁명의 선봉장이라는 점 이외에도 작곡과 연주법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쓰리 코드로 대표되는, 통기타 F 코드를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라면 누구나 'Smells Like Teen Spirit'을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연주는 쉬워진 반면(실제로는 기타와 베이스만 어렵지 않지 이 곡의 드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습니다. 보통 이 곡과 Skid Row의 'Youth Gone Wild' 정도가 드럼을 배우는 사람들이 처음 접하는 벽입니다. 필자 주) 기존의 어법과는 다른 심오한 가사로 그 시대를 살던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냈고, MTV에서는 하루 종일 그런지 음악이 나오면서 그런지는 음악에서 사회현상이 되었죠.

그리고 이때부터 헤비메탈 그룹들은 어렵고 복잡한 연주보다는 가사와 메시지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헤비메탈의 양대 산맥이었던 Metallica가 [Load]를, Megadeth가 [Youthanasia]를 발표한 것도 이 무렵입니다. 어렵고 복잡한 연주보다는 쉽고 단순해 보이는 연주라고 하더라도 연주자가 즐거우면 듣는 사람도 즐거워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사우스카니발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이 바로 이랬습니다. "이 친구들은 정말 즐기며 음악을 하는구나!"

Album

사우스카니발 [Cloud9]

Cloud9

저는 음악을 듣고 그렇게 들은 음악의 느낌을 글로 옮기는 것이 직업이다 보니 아무래도 보통 사람보다는 음악을 많이 듣게 되는데요. 더구나 요즘은 음악 관련 책 원고를 쓰는 중이라 더 음악을 많이 듣고 있고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음악을 들어도 귀에 꽂히는 음악은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오디오 제조업체에서 데모 CD로 써도 손색이 없을 만큼 음질이 대단히 뛰어나다거나,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가 다시 태어나 연주를 한 것처럼 연주가 뛰어나다거나, 노래를 듣다가 눈물이 주르륵 흐를 정도로 가사가 정말 마음을 후벼 판다거나 하는 앨범은 많습니다. 하지만 정말 즐겁게 앨범 작업을 했다는 느낌을 받는 앨범은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정상의 자리에 있는 가수라고 하더라도 새 앨범을 낸다는 것은 대단한 도전이고 그렇기에 새 앨범을 찬찬히 들어보면 누구의 앨범이든 목숨 걸고 작업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사우스카니발의 음악은 뭐랄까요? Doris Day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Che Sera Sera' 느낌이랄까요? "될 대로 대라고 해. 어떻게든 되겠지 뭐." 이런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 잔 하고 있으면 어느샌가 꽃무늬가 그려진 하와이안 티셔츠를 입고 다가와 웃는 얼굴로 노래 몇 곡을 부른 후, 다시 웃는 얼굴로 사라지는 그런 밴드가 하는 음악 같은 느낌?

그렇다고 음악의 수준이 떨어진다거나 연주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대충 막 만들었거나 녹음도 대충 했다거나 하는 느낌이 드는 앨범도 아닙니다. 이 앨범은 노력하는 자와 즐기는 자 중에 즐기는 자가 만든 앨범이고, 도이키 뮤직의 대표이자 우리나라 최고의 프로듀서인 조동익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한 마스터링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스터링 스튜디오인 스털링사운드나 마스터디스크에서 작업을 해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입니다. 현장에서 듣는 것과는 달리 음반에서는 그 느낌을 살리기가 어려운 브라스 밴드의 소리가 살아있습니다. 모든 장르를 통틀어서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앨범 중에 이렇게 브라스의 소리가 잘 살아있는 앨범은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자, 그렇다면 이렇게 흥겨우면서도 유쾌하고, 그러면서도 재미있으면서 사운드 퀄리티까지 뛰어난 앨범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요? 저는 이 앨범의 프로듀서이자 최소우주 레이블의 대표인 조동희의 능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동희 씨와 따로 이야기를 해보진 않았지만 이 앨범을 들으면서 조동희는 아마 Jamiroquai의 음악을 레퍼런스로 삼으면서 앨범 작업의 기준을 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Jamiroquai의 카피가 아닌, 그들 음악의 흥겨움은 그대로 살리면서 사우스카니발 멤버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게 앨범 작업을 진행한 것처럼 들리네요. 여기에 우리나라 최고의 프로듀서가 그녀의 오빠인 것은 그녀가 타고난 복이고요. 물론 오빠와의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겠지만요(조동익 씨가 이 글을 보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어쨌든 이 앨범은 재기발랄한 제주도 출신의 음악가들과 그들을 품을 줄 아는 프로듀서, 그리고 둘째가라면 서러울 프로듀서/엔지니어가 만나면서 우리나라에선 쿨 이후에 이렇게 흥겨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나? 싶은 앨범으로 탄생했습니다. 더 고무적인 것은 그들의 언어(제주도 방언)으로 그들의 정서를 표현했다는 점이고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있는 요즘, 집에서라도 칵테일 한 잔 만들어서 사우스카니발의 [Cloud 9] 앨범을 듣는다면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하는 듯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요? 1980년대의 Gloria Estefan이나 1990년대의 Jamiroquai, 그리고 2000년대의 Daft Punk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앨범입니다. 노래를 듣다 보니 계속 입에서 제주도 방언을 흥얼거리네요. 몬딱 도르라, 몬딱 도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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