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뛰어넘는 위대한 음악, Beyonce [Lemonad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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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뛰어넘는 위대한 음악, Beyonce [Lemonade] (2016)

2020.07.02
Special

국경을 뛰어넘는 위대한 음악, Beyonce [Lemonade] (2016)

알앤비? 글쎄. 소울? 뭐, 그럴 수도. 히트 팝? 그렇다고 하기엔 노골적인 멜로디 라인이 눈에 띄질 않는다. 설마 록? 아주 틀리진 않다. 적어도 태도적인 면에서는 로커라고 평할 만하니까. 하나, 록적인 요소는 있을지언정 록이라고 잘라 말하기엔 음반이 장악하고 있는 광대한 영토가 눈에 밟힌다.

마지막으로 힙합? 하긴, 요즘엔 힙합 뮤지션이 'Rockstar'라는 제목으로 곡을 발표하는 시대 아닌가. 과연, 가장 그럴 듯 하지만 비욘세 스스로가 밝힌 바 있다. "내 음악은 알앤비도 아니고 전형적인 팝도 아니며 록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 섞은 것이다." 이 인터뷰를 읽자마자 다음 선언이 떠올랐다. "난 전부가 될 거야!" 1884년 화가 마리 바시키르체프(Marie Bashkirtselff)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써서 후대 여성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 비욘세는 우리 시대의 마리 바시키르체프다.

글ㅣ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Album

Beyonce [Lemonade] (2016)

Lemonade


격찬, 그리고 또 격찬. 그럼에도, 과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럴 만한 성취를 일궈낸 작품이었던 까닭이다. 불만이라고는 딱 하나뿐이었다. 그래미 "본상" 트로피였다. 솔직히 예상은 했다. 그래미에게는 당시 안전하면서도 기존 권위가 보장될 카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아델(Adele)이다. 나는 지금 아델을 무시하려는 게 아니다. 그의 음악은 정말이지 탁월하다. 다만, "혁신"이라는 측면에서 아델은 결코 비욘세를 따라잡을 수 없다. 적어도 이 점만큼은 비욘세의 압승이다. 이 음반 [Lemonade](2016)가 증명한다.

일종의 격언이다. 삶이 당신에게 레몬을 준다면, 레모네이드라도 만들라는 거다. 레몬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상징한다. 예를 들어 'Pray You Catch Me'에서 비욘세는 "Nothing else ever seems to hurt/like the smile on your face(너의 미소만큼 나를 아프게 하는 건 없어)"라고 노래한다. 여기에서 "너"는 볼 것도 없이 남편인 제이-지(Jay-Z)다. 증거는 또 있다. 이번에는 뮤직비디오를 봐야 한다.

"You remind me of my father, a magician. Able to exist in two places at once." (넌 마법사 같았던 내 아빠를 떠올리게 해.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할 수 있다니 말이야.)

용감한 발화다. 아무리 상대의 잘못을 폭로하는 거라고 해도 (비욘세급의 슈퍼스타가 전 세계 대중을 상대로) 자신의 치부를 가감 없이 드러내기란 어려운 법이다. 이런 기조는 음반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나는 '진정성' 따위 잘 믿지 않지만 비욘세 디스코그라피 중 지나치다 싶을 만큼 솔직한 결과물이 [Lemonade]다. 우리는 보통 지나침을 단점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지나침도 때로는 미덕이 된다. 비욘세의 세계 안에서는 특히 그렇다.

돌이켜보면 그는 항상 지나치게 성실하고, 지나치게 노래를 잘했다. 'Listen'(2007)과 'Love on Top'(2011) 등에서의 보컬을 들어보라. 거의 고함에 가까운 성량으로 시대의 절창임을 짜릿하게 과시한다. 메시지도 지나치다 여겨질 만큼 직접적이었다. 그중에서도 (흑인) 여성으로서의 주체성을 강조한 노래들이 더욱 그랬다. 'Independent Women, Part 1'(2000)에서 시작된 이 흐름은 'Single Ladies'(2008)과 'If I Were a Boy'(2008), 'Irreplaceable'(2006) 등에서 정점을 찍었고, 이 앨범 [Lemonade]로 이어진다.

장르에 대해 말해야 할 차례다. 앞서 언급했듯이 [Lemonade]의 음악은 여러 장르가 교차하는 만듦새로 설계되어 있다. 히트곡만 꼽자면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명곡 'When The Levee Breaks'를 샘플링한 'Don't Hurt Yourself'에서는 기타리스트 잭 화이트(Jack White)와 함께 소울과 록의 연대를 시도했고, 'Sorry'에서는 일렉트로와 알앤비를 섞어 매혹적인 후렴구를 길어냈다.

그런가 하면 'Daddy Lessons'에서는 크레올(Creole) 음악과 컨트리의 그림자가 일렁이는데 이후 'Old Town Road'(2019)를 통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햐 아젠다(The Yeehaw Agenda)의 기초를 닦아준 곡으로 평가받는다. 이 중 크레올은 스페인과 프랑스가 정복하고 있던 시절부터 존재한, 미국 남부의 흑백 혼혈을 뜻하는데 재즈의 탄생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보면 된다.

음반의 베스트를 꼽자면 다음 세 곡 아닐까 한다. 순서대로 'Sandcastles', 'Freedom', 그리고 'Formation'이다. 'Sandcastle'에서는 후회와 회한의 감정이 녹아있는 반면, 'Freedom'에서는 "이게 비욘세지"라고 느껴질 만큼 자신감으로 충만한 모습을 보여준다.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와의 하모니는 말할 것도 없다.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두 사람이 만났으니 말이다.

'Formation'은 어떤가. 뿌리 찾기인 동시에 그 뿌리에 대한 자긍심을 스웨그 넘치게 발설한다. 만약 아직 이 음반을 못 들어봤는데 시간이 없다면 'Sandcastles', 'Freedom', 'Formation', 이렇게 3곡이라도 감상해보길 권한다. [Lemonade]를 애정하는 팬 대부분이 괜히 이 3곡에 격찬을 날리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앨범의 힘은 자연스러운 확장에서 나온다. 과연, [Lemonade]에 수많은 팬이 공감한 건 비욘세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이 영향력이 하나 둘 뭉쳐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던 덕분이리라. 비욘세는 자신의 비극을 음악으로 승화하는 방식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흑인 여성이 감내해야 할 고통을 어루만진다.

We all experience pain and loss. My intention for the film and album was to create a body of work that would give a voice to our pain, our struggles, our darkness and our history. To confront issues that make us uncomfortable. (우리 모두는 고통과 상실을 경험해요. 뮤직비디오와 앨범을 통해 우리의 고통과 투쟁, 우리 안에 깃든 어둠과 우리의 역사에 목소리를 선물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슈들 말이에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신이 불편하다는 건 영감의 문턱까지 왔다는 걸 의미한다." 한 명의 예술가로서 비욘세에게는 이 불편함이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한 셈이다. 이 불편함, 주지하다시피 4년이 지난 "바로 지금"도 미국 사회에서 격렬한 갈등 속에 현재 진행 중이다.

아니다. 어디 미국 사회뿐이겠나. 비욘세가 [Lemonade]를 통해 노래하는 바는 "바로 여기", 우리에게도 의미심장하다. 위대한 음악이 대개 이렇다. 시제 이동은 기본이요, 그것은 국경마저 훌쩍 뛰어넘는다. [Lemonade]가 갇띵반인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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