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상처가 구원이 되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로코,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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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상처가 구원이 되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로코,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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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조금 이상한 로맨틱 코미디

사이코지만 (사랑하니까) 괜찮아. 주인공들 촘촘한 서사에 심장 떨리는 서사 처돌이들을 설레게 할 드라마가 나타났습니다. 사랑을 거부하는 남자 주인공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르는 여자 주인공, 둘의 유일한 도피처가 서로라서 피하려고 해도 엮일 수 밖에 없는 완벽한 서사. 김수현과 서예지로 다 한 드라마인 줄 알았더니 디테일이 더 매력적인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입니다.

글ㅣ김효정
사진ㅣtvN "사이코지만 괜찮아" 화면 캡처


#1 고문영은 인성을 찢어

외모로 나라를 세웠다면 나라 서너 개쯤 구했을 고문영(서예지)의 찬란한 타이틀은 인기 아동문학 작가. 동화로 출판사 사람들을 먹여살리는 고문영은 육두문자와 칼질(?)을 믹스매치할 줄 아는 지옥에서 온 주둥이였습니다.

"사복 입으니까 꽤 멋지네. 꼭 외상값 받으러 온 호스트 같아."
이것이 남주가 맘에 든 여주의 인사말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칭찬도 제대로 하면 고문영이 아니지. 정의구현을 참지 않으며 예쁜 칼 모으기가 취미인 고문영의 인생에 갑자기 등장한 문강태(김수현) 자신이 휘두르던 칼에 베인 강태를 다시 만난 문영이 건네는 첫 마디였는데요. 대충 문영이가 강태한테 사과하는 것이 맞는 분위기라는 뜻.

"너 먹고 떨어질게. 문강태 나 주라."
이건 뭐 로맨스 장르에서도 알아주는, 상대방에 미쳐버린 집착 불도저 아닙니까. 여긴 서사 맛집인데 캐릭터도 너무 JMT다. 게다가 문강태는 "이렇게 막무가내로 하다보면 다들 잘 먹혀줬나본데 나한테는 절대 안 통해."라며 앙칼지게 튕긴다구요.

♬OST로 듣는 서예지 필모그래피
#2 문강태가 사는 세상

"원래 사는 게 죽을만큼 힘들면, 도망이 제일 편하거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고 있는 형을 평생 보살피고 형만을 바라보던 문강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남을 돕는 것. 그래서 얻은 정신병동의 보호사라는 직업까지 형 문상태(오정세)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강태의 하루 하루는 상태의 시간을 따라 흐르고 있습니다.

"동생이니까 겁쟁이지. 형만 믿어."
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 헌신하는 착한 동생의 프레임 안에 스스로 갇히는 것을 선택한 강태. 잘 지내다가도 언제 돌발 행동을 할지 모르는 상태 때문에 거처를 옮기고 직장을 새로 구하는 것이 몇 번째인지 셀 수조차 없습니다. 형이 밉다가도 형의 한마디에 강태는 와르르 무너진다구요 ㅜㅅㅜ

강태의 기구한 운명에 한 번, 연기 좀 살살 하.시.라.구.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오정세 연기에 한 번. 눈물 지뢰를 피하기가 어려운 강태의 삶이지만 가끔씩 보이는 상태의 세상은 너무 천진하고 예쁘기만 합니다. 결국은 그래서 더 슬프다는 이야기… 강태야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는 과몰입충인가봐.

♬OST로 듣는 김수현 필모그래피
#3 케미가 곧 개연성

"그 여자 무서웠어?" "좋아했어."
솔직히 내가 알던 누구와 같은 눈빛을 갖고 있다는 말 뒤에 그 여자를 좋아했다고 덧붙이면 이건 뭐 그냥 내가 널 좋아한다고 고백한 거 아닌가요? (아님) 지가 먼저 느꼈으면서 여전히 철벽인 강태와 뭔가 촉을 느끼고 직진 시작한 문영, 혐오에서 애정으로 여주한테 감기는 남주 짜릿하다.

"나비 포옹법. 트라우마 환자들한테 추천하는 자가 치료법이야."
주인공들 진도 빼는 것에 진심인 사람들에게도 나비 포옹신은 신선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문영이를 껴안은 건 문영이 팔인데 왜 텐션은 이렇게 으른들의 텐션이 오가냔 말임. 그래도 그냥 백허그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찍헌 강태문영 주주들의 심정…

"나랑 한번 잘래?"
집착 불도저의 덕목은 플라토닉 러브 금지라는 것이 업계의 정설. 계속 튕기는 문강태에 소유욕으로 돌아버린 고문영이 사람들 그득한 병원 로비에서 쩌렁쩌렁 외치는 말이란…

#4 서로의 상처로 서로를 구원하다

"니가 왜 살아있어? 죽어."
어릴 적 아버지에게 목이 졸려 죽을 뻔한 적이 있는 문영. 아버지가 정신 병원에 있는 몇 년간 한번도 찾지 않았지만 환자들의 특별수업이라는 명목으로 병원에 오게 되었는데요.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아버지는 문영의 목을 조르며 문영에게 같은 상처를 안겨줍니다.

"몸통만 남은 엄마를 아이가 양팔로 꽉 끌어안으며 처음으로 한마디를 해 - 엄마는 참 따뜻하구나" – 좀비아이 中

어릴 때부터 항상 형이 먼저였던 엄마는 형이 맞고 들어오면 강태를 먼저 때렸고, 어쩌다 한번 자신을 안아주는 날엔 "너는 죽을 때까지 형 옆에 있어야 돼. 엄마가 너 그러려고 낳았어." 같은 소리만 들어온 강태. 문영의 동화책을 읽고, 형을 향해 몸을 돌리고 잠든 엄마 몰래 등에 기대며 처음 느낀 온기를 떠올린 강태는 오열을 참지 못했습니다. 이 밤톨만한 애가 뭘 지켜요 뭘ㅜㅜ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도 자신을 향해 부단히 걸어오는 문영에게 처음으로 먼저 다가간 강태. 드디어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며 포옹으로 치유 로맨스 서사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주와 남주는 연을 끊어내려고 지지고 볶아도 어떻게든 만나진다는 것을. 3회까지 갸우뚱 했던 사람마저 마지막 장면으로 납득시켰는데요.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거친,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의 감정들을 서로의 온기로 보듬는 강태와 문영의 행복을 지켜보고 싶어졌습니다. 이들의 상처가 곧 우리의 상처이기도 하니까요.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