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유독 인기 있는, 혹은 인기 없는

매니아의 음악 서재

우리나라에서 유독 인기 있는, 혹은 인기 없는

2020.07.08
Special

우리나라에서 유독 인기 있는, 혹은 인기 없는

팝송 중에는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인기가 있는 팝송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Stratovarius의 'Forever'라는 곡인데요. Stratovarius가 멜로딕 파워 메탈 쪽에서는 그 사조를 이끌어가는 그룹 중의 하나이고, 특히 이 팀의 키보디스트인 Jens Johansson는 Dream Theater의 Jordan Rudess와 더불어 헤비메탈 키보드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그건 그쪽의 이야기일 뿐, 멜로딕 파워 메탈이라는 장르 자체가 워낙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장르인지라 앨범을 한 장 발표해도 10만장을 팔기 힘든 그룹인데요. 이 팀의 유일한 발라드 곡인 'Forever'가 당시 시청률 65.8%를 자랑하던 드라마에 삽입되면서 그 곡이 수록되어 있는 앨범이 우리나라에서만 10만장이 넘게 팔리는 일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한국이라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보도 듣도 못한 나라에서 앨범이 대박이 나서 부랴부랴 내한공연까지 준비를 했지만, 이 CD의 첫 번째 트랙을 들은 사람들은 본인이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앨범을 환불하기에 이르렀으며, 결국 내한공연은 없던 이야기가 되었고, 10만장이 넘게 나갔던 CD의 최종 판매고는 2만장 정도로 마감되었습니다. 여기서는 국내에서 유독 인기 있었던 'Forever', 그리고 앨범의 첫 곡 'Father Time'을 연달아 들어봅니다.

비슷한 예로 'Before The Dawn'이 있는데요. 이 곡을 부른 Judas Priest는 헤비메탈의 상징과도 같은, 마치 영화 "타짜"에서 평경장이 화투이고, 화투가 평경장인 물아일체의 경지인 것처럼 Judas Priest가 헤비메탈이고 헤비메탈이 Judas Priest인 그런 팀이죠. 오죽하면 이 팀의 보컬리스트인 Rob Halford의 닉네임이 "Metal God"일까요?

하지만 우리나라엔 이 팀의 유일한 발라드 곡인 'Before The Dawn'이 가장 먼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팀을 애절한 발라드를 부르는 팀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한 때 기네스북에 "이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록 그룹"으로 등재된 Deep Purple도 'Soldier Of Fortune'이라는 곡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록발라드를 부르는 그룹으로 아는 사람이 생기기도 했죠.

이런 팀들은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이름이 있는 팀들인데요.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인기가 있던 뮤지션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She's Gone'을 불렀던 Steelheart, 'I.O.U'의 Carry & Ron, 'Evergreen'의 Susan Jacks이죠. 이렇듯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인기가 있는 곡들은 대부분 드라마에 삽입되며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요. 이런 곡들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곡의 기-승-전-결의 구조가 확실합니다. 잔잔하게 시작되었다가 감정을 끌어올려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감정을 폭발시키고 곡을 마무리하는 구조이죠. 1980~1990년대 대부분의 발라드 곡이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요. 꼭 그 시절의 노래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선 이런 구조의 노래가 인기를 끌었죠. 그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가 2008년에 발표된 Karina의 'Slow Motion'이고요.

곡의 구조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운드도 특징이 따로 있습니다. 바로 조금 더 긴 리버브입니다.

리버브는 말 그대로 소리에 잔향의 길이를 조절하는 이펙터입니다. 비슷한 효과를 주는 딜레이가 있는데요. 딜레이가 음원의 아주 짧은 기간의 소리를 반복해서 들려주는 형태라면 리버브는 음원의 잔향 길이와 공간의 크기를 조절합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리버브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있는데요. 카오디오를 보면 DSP 프리셋 중에 콘서트, 라이브, 영화관 등등의 효과가 있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 프리셋들이 리버브를 조절한 프리셋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리버브가 길고, 공간의 울림이 큰 소리를 좋아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굴 소리죠. 그래서 1980년대에 녹음된 발라드 곡들은 대부분 동굴소리처럼 들립니다. 물론 이런 소리는 2020년에도 들을 수 있는데요.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2020년 대한민국 가요계는 아이돌 음악과 트로트로 양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트로트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야구 외에는 TV를 전혀 보지 않는 저조차도 매 이닝이 끝날 때마다 흘러나오는 요소수 광고와 식혜 광고 때문에 트로트의 열풍이 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정도인데요. 트로트는 장르의 특성 상 창법에 비브라토가 많고 그런 비브라토는 리버브가 길 때 극대화되다 보니 다른 장르의 음악보다 트로트에서 리버브 이펙터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렇기에 이런 리버브를 잘 표현하는 알텍이나 탄노이 스피커에서 가슴 저미는 트로트를 들을 수 있는 것이고요.

탄노이 스피커는 클래식, 그중에서도 소편성 음악을 들을 때 좋은 스피커 아니냐고 반문하실 분도 있을 텐데요. 물론 클래식 소편성 음악에도 대단히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는 건 맞지만 그 못지않게 트로트에서도 본인의 몸값을 증명합니다. 오리지널 탄노이 인클로저에 탄노이 모니터 블랙 유닛이 장착된 탄노이 스피커와 그에 어울리는 앰프를 조합하면 1억 원이 훌쩍 넘어가는, 웬만한 요즘의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을 보급형 오디오 시스템으로 만들어버리는 가격이지만 제가 들어본 최고의 '목포의 눈물'은 알텍 스피커가 아니라 탄노이 모니터 블랙 스피커에서였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유독 인기가 있는 뮤지션이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유독 인기가 없는 뮤지션도 있습니다. The Beach Boys나 The Who, The Rolling Stones, The Mamas & The Papas, KISS, Aerosmith, Lynyrd Skynyrd 등이 그런 팀인데요. The Beach Boys는 'Surfin' USA'나 'Kokomo' 정도만 알려져 있는 팀이지만 활동 당시에 영국 출신의 The Beatles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미국 밴드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의 팀이었으며, The Who는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드라마 주제곡을 부른 정도의 팀으로 알려져 있지만 The Beatles, The Rolling Stones와 더불어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이끌었던 팀입니다.

The Mamas & The Papas 역시 우리나라에서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이라는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그 영화의 삽입곡으로 쓰였던 'California Dreamin'도 덩달아 인기를 끌면서 알려졌지만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팀이며, KISS와 Aerosmith는 이들이 없었다면 미국의 록음악 자체가 없어졌을지도 모를 만큼 후배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팀입니다. Lynyrd Skynyrd 역시 미국 서던락을 상징하는 팀이죠.

이렇듯 유독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있는 음악이 있고, 우리나라에서 유독 인기가 없는 음악이 있는 것을 보면, 음악 역시 그 나라의 국민성을 잘 표현하는 도구가 아닌가 싶습니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