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계 외계인들의 회동, [Friday Night In San Francisco]
연주계 외계인들의 회동, [Friday Night In San Francisco]
누가 선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때 속주기타 4인방이라는 이름으로 Rising Force의 Yngwie Malmsteen, Racer X와 Mr. Big의 Paul Gilbert, Impellitteri의 Chris Impellitteri, 그리고 Tony Macalpine이 인구에 회자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모두 어마어마한 속주를 자랑하는 기타리스트들이죠. 하지만 기타의 속주를 논할 때 결코 빠져서는 안 될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Al Di Meola입니다.
어느 정도의 자리에 오른 기타리스트들은 제각각 자신만의 무기를 장착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Eddie Van Halen은 태핑, Paul Gilbert는 얼터네이트 피킹, Joe Satriani는 레가토, Jeff Beck은 필링, Eric Johnson은 코드 보이싱, Zakk Wylde는 피킹 하모닉스 등이 그것이죠. 그리고 Al Di Meola는 팜 뮤트입니다. 팜 뮤트란 말 그대로 손바닥(palm)으로 뮤트(mute)를 하는 테크닉으로 손바닥으로 현의 울림을 제한하기 때문에 음이 딱딱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죠. 어찌 보면 Joe Satriani의 장기인 레가토와는 반대되는 테크닉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이게 뭐 대단한 테크닉이냐고 반문하실 분도 계실 겁니다. 실제로 보기에도 Eddie Van Halen이나 Akira Takasaki의 장기인 태핑이나 Yngwie Malmsteen의 장기인 스윕 피킹에 비하면 너무 단순해 보여서 어려운 테크닉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죠. 1990년도 헤비메탈의 전성기에 활동하던 기타리스트 대부분이 Jimi Hendrix의 연주에 열광하는 관객과 Van Halen의 'Eruption', 그리고 그 조금 후 세대들이 Loudness의 'Like Hell'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기타를 잡은 것에 비해 Al Di Meola의 팜뮤트를 보고 기타를 잡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기타를 조금만 쳐보면 Al Di Meola의 연주가 얼마나 대단하지 알게 되는데요.
기타를 안 치시는 분은 모르실 수도 있지만 같은 1번줄이라도 제각각 굵기가 다릅니다. 일렉트릭 기타의 경우 1번줄 기준으로 008 게이지(0.08인치)부터 012 게이지(0.12인치)까지 사용하고 일반적으로는 009 게이지나 010 게이지를 주로 씁니다. 줄이 굵어질수록 소리는 단단하고 묵직하며 강력하지만 줄이 굵어지니 당연히 장력도 세져서 벤딩이나 비브라토 같은 테크닉 구사가 힘들어지고, 줄이 가늘수록 장력이 약해져서 벤딩이나 비브라토는 쉬워지지만 그만큼 기타 톤도 가벼워지죠.
011 게이지를 사용한다고 알려진 Zakk Wylde나 SRV, Gary Moore와 008 게이지를 사용하는 Yngwie Malmsteen(Yngwie Malmsteen은 1, 2, 3 번 줄은 가는 줄로, 4, 5, 6번 줄은 굵은 줄을 세팅해서 연주합니다. 필자 주)의 기타 톤을 비교해보면 바로 이해가 되실 겁니다.
일반적으로 통기타의 줄은 일렉트릭 기타 줄에 비해 003 게이지 정도 굵은 줄을 사용합니다. 즉 일렉트릭 기타에서 009 게이지의 줄을 가장 많이 쓰는데 비해 통기타에서는 012 게이지의 줄을 가장 많이 사용하죠. 그게 얼마나 차이가 나겠냐고 생각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벤딩만 해봐도 그 차이를 바로 아실 겁니다.
바로 이런 차이 때문에 통기타로는 벤딩이나 해머링, 풀링오프 같은 테크닉을 구사하기가 힘들고, 이렇게 사용할 수 있는 테크닉에 제한이 있기에(손가락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는 의미이지 불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필자 주) 통기타로는 속주가 어려운 겁니다. 그리고 Al Di Meola는 통기타나 오베이션 기타를 주로 사용합니다. 다시 말해 저 굵은 줄로 연주를 하면서 웬만한 일렉트릭 기타리스트보다도 빠른 연주를 선보이고, 그러면서도 완벽한 팜뮤트를 하기에 그의 테크닉이 대단하다는 것이지요.
제가 "외계인 회동"이라고 부르는 앨범이 있는데요. Al Di Meola, John McLaughlin, 그리고 Paco de Lucía가 모여 펼친 라이브 공연 실황 앨범인 [Friday Night in San Francisco] 앨범이 그것입니다.
Al Di Meola, John McLaughlin, Paco de Lucía [Friday Night In San Francisco]
곡리스트 5
가장 어려 보이는 청년은 약관의 나이에 당시 퓨전 재즈계를 호령하던 Chick Corea의 눈에 들어 버클리 음악 대학을 포기하고 Bill Connors와 Earl Klugh의 뒤를 이어 Return To Forever의 기타리스트가 된 Al Di Meola, 그리고 그 옆이 Mahavishnu Orchestra의 창단 멤버이자 퓨전 재즈, 블루스, 플라멩코 등 기타로 할 수 있는 그 어떤 장르에서도 정상의 자리에 있었던 기타의 전설 John McLaughlin, 가장 오른쪽이 재즈를 논할 때 Miles Davis를 빼 놓을 수 없듯이 플라멩코를 논할 때에는 빠질 수도 없고 빠져서도 안 될 플라멩코의 장인 Paco de Lucía인데요. 이 때 이들의 나이는 불과 각각 26, 38, 33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그 나이의 숫자를 다 합친 햇수동안 기타만 쳐도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연주를 들려주죠.
이 앨범의 첫 곡은 Al Di Meola의 두 번째 앨범 [Elegant Gypsy]에 수록되어 있는 'Mediterranean Sundance'와 Paco de Lucía의 [Almoraima]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Río Ancho' 입니다. 무려 11분 25초에 달하는 긴 연주이지만 단 1초도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둘은 말은 한 마디도 안 하지만 말 그대로 불꽃 튀는 연주로 대화를 하는데요.
이연걸 주연의 "영웅(英雄)"이라는 영화를 보면 이연걸과 견자단이 결투에 앞서 상상속으로 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실제 칼과 창의 싸움은 그 결과를 확인하는 작업일 뿐이죠. 제게는 이 앨범의 첫 곡인 'Mediterranean Sundance / Río Ancho'에서 그 장면이 연상됩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상대방에게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눈에 보입니다.
이 한 곡만으로도 이들은 위에서 말한 팜뮤트를 이용한 주법부터 시작해서 오베이션 기타와 통기타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연주를 들려줍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이 앨범에는 재미있는 비밀이 숨어있는데요. 일반적으로 이런 라이브 연주는 왼쪽 채널과 오른쪽 채널을 따로 분리하여 녹음하지 않고 마이크를 여러 대 설치한 다음 묶어서 녹음합니다. 그렇기에 지금 멜로디를 연주하는 연주자가 누구인지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죠.
하지만 이 앨범은 위에서 말한 첫 곡의 경우 왼쪽 채널은 Paco de Lucía, 오른쪽 채널은 Al Di Meola의 연주로 채널 별로 연주자를 달리 배치했습니다. 보통 이럴 경우 한쪽에서는 노래만 나오고, 다른 한쪽에서는 반주만 나와서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모노 시절의 녹음처럼 들릴 수가 있는데요. 그런데 이 앨범은 모노 시절처럼 녹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자연스럽게, 오히려 더 다이내믹하면서도 지금 누가 어떤 연주를 하나 아주 잘 들리게 녹음을 했습니다.
두 가지 이유인데요. 일단 첫 번째 이유는 왼쪽 채널과 오른쪽 채널 모두 기타 외에는 다른 악기의 소리가 섞이지 않아 음색에 큰 차이가 없으며, 또 다른 이유로는 관객의 함성이 두 기타 소리의 이질감을 가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에 이 앨범은 1980년대 청소년 영화에 많이 등장하는 장면처럼 연인이 이어폰을 한쪽씩 나누어 끼면 둘이 서로 다른 소리를 듣게 되는 앨범이기도 합니다.
이 앨범 녹음의 또 다른 특징은 제가 오디오 테스트를 할 때 데모 음원으로 쓸 만큼 다이내믹스가 상당하다는 건데요. 소리가 날 듯 말 듯 잔잔하게 연주하는 부분부터 "이러다 기타 부서지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격렬하게 연주하는 부분이 공존하고, 그렇기에 음량의 차이가 상당히 큰 앨범입니다. 다시 말해 스피커도 스피커지만 앰프의 역량을 테스트하기에 상당히 좋은 음원이라는 뜻이지요.
일반적으로 라이브 앨범은 스튜디오 앨범에 비해 녹음 환경이 열악하고, 잡음 등이 유입될 확률이 높기에, 그래서 잡소리가 녹음될 확률이 높기에 오디오 테스트용 음원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앨범은 연주, 녹음, 믹싱, 마스터링 그 어느 하나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저는 이런 앨범을 명반이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