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지 프로젝트, JYP의 새로운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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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지 프로젝트, JYP의 새로운 과정

2020.07.17
Special

니지 프로젝트, JYP의 새로운 과정

"일본인 멤버로 구성되어 일본어로 노래를 부르는 그룹이 K-Pop 그룹이라고?" JYP 엔터테인먼트가 2019년 2월 7일 일본 최대 음반사 소니뮤직과 손잡고 현지 걸그룹 결성 사업인 <니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발표했을 때, 한국에서 이에 대한 반발과 함께 터져 나온 의견이다. 심지어 "박진영은 친일 아니냐"는 비난을 가하는 사람도 있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한일 무역분쟁은 JYP 엔터테인먼트의 이러한 행보에 대중이 더더욱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게 만드는 외부 요인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넘게 지난 현재, <니지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걸그룹 NiziU는 프리 데뷔 EP [Make you happy]로 오리콘 차트를 비롯한 일본 내 64개 차트 1위를 차지하며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일본 현지에서 TWICE에 이은 JYP 엔터테인먼트의 연타석 홈런이라는 찬사, 단순히 외국인 멤버를 국내 활동 그룹에 합류시키는 것을 넘어 처음부터 현지에서 선발한 해외 멤버로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K-Pop 3.0"의 성공이라는 선언 등 한국에서도 발표 당시와는 달리 긍정적인 분석이 많아졌고, <니지 프로젝트> 오디션 참가자들과 방송 자체에 매력을 느끼는 반응도 많이 보인다. 우연한 계기로 나 역시 <니지 프로젝트>를 보게 되었고, 몇 가지 생각을 이번 글을 통해 정리해 본다.

글ㅣ정구원 (웹진웨이브 편집장)
사진 출처ㅣNizi Project 페이스북, 한국콘텐츠진흥원


# K-Pop의 일본 시장 공략

2016년 이후 미국과 유럽 등 서구 시장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며 급격하게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긴 하지만, K-Pop 산업에 있어 여전히 최대 해외 시장은 일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행하는 『음악백서』에 따르면, 지역별 수출액 현황이 확인되는 2011년부터 일본 음악시장에 대한 수출액은 한 번도 1위를 놓친 적이 없으며, 총합 수출액에 대한 비중 역시 60% 이상을 꾸준히 유지해 왔다. K-Pop 산업에 있어 세계 2위의 음악 시장이자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나라인 일본은 놓칠 수 없는 타겟이며, 이는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한국 아이돌 그룹들이 예외 없이 일본 활동을 위해 일본어 앨범을 따로 내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아울러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초 보아와 동방신기, 카라 등으로 대표되는 초기 K-Pop 유행과 비교했을 때, 2010년대 후반부터 진행되고 있는 일본에서의 2차 K-Pop 붐에서 새로이 발견할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는 일본 내에서 아이돌을 지망하는 인재들이 K-Pop 기획 시스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역시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시리즈일 텐데, <프로듀스 101> 시즌 2의 타카다 켄타가 어떤 전조였다면, <프로듀스 48>은 AKB48의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와 함께 한일합작으로 이루어지며 미야와키 사쿠라, 야부키 나코, 혼다 히토미(이하 IZ*ONE), 타카하시 쥬리(로켓펀치) 등의 멤버를 K-Pop 아이돌로 재탄생시켰다. 이외에도 NCT의 나카모토 유타, 펜타곤의 아다치 유토, 공원소녀의 미야우치 하루카 등 2010년대 후반부터 생각보다 많은 일본인 멤버가 한국에서 아이돌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아이돌 음악이 자리를 잡고 있는 두 국가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는 일본의 아이돌 지망생들이 K-Pop을 진지한 선택지로 여기기 시작했다는 징조로 볼 수 있다.

JYP 엔터테인먼트가 일본에서의 추가적인 수익 창출과 신인 발굴이라는 두 가지 목표에 있어서 다른 어떤 한국 기획사들보다도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TWICE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티스트 중 하나니까. 그런 점에서 보면 JYP 엔터테인먼트가 2010년대 초 일본인 걸그룹을 론칭하려 했지만 결국 무산되었던 건, 그 당시 데뷔할 예정이었던 모모와 사나, 미나에게 있어서나 JYP 엔터테인먼트에 있어서나 커다란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세 멤버는 TWICE의 멤버로서 한일 양국에서 톱 아이돌의 위치에 올랐으며, JYP 엔터테인먼트로서는 그 당시보다 K-Pop의 위상이 더욱 높아진, 훨씬 긍정적인 상황에서 다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으니.

# <니지 프로젝트>란 포트폴리오

그렇지만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긍정적인 요인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아이돌 시장의 경쟁은 "JYP"라는 이름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해졌으며, 팬들은 이제 단순히 멋진 결과물과 퍼포먼스를 넘어서 자신들이 몰입할 수 있는 서사를 바란다. 데뷔는 더 이상 보안이 유지된 상태에서 짠 하고 밝히는 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으며, 많은 기획사가 자사 멤버들에 대해 연습생 시절부터 서사를 부여하려고 노력한다. 설사 그것이 일본을 주무대로 활동할 그룹이라고 해도, 그것이 K-Pop의 자장 안에 있다면 상황은 다르지 않다.

그러니 JYP 엔터테인먼트가 서사를 부여하는 방법으로 일본 8개 도시, 미국 2개 도시에서 예선을 진행해 최종적으로 9명으로 이루어진 걸그룹을 데뷔시킨다는 전 과정을 담아낸 오디션/서바이벌 프로그램인 <니지 프로젝트>를 선택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이는 굉장히 "정통파"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도 있다. JYP 엔터테인먼트는 이미 비슷한 방식으로 TWICE를 데뷔시킨 "SIXTEEN"과 Stray Kids를 데뷔시킨 "Stray Kids"를 진행했던 경험이 있으며(<니지 프로젝트> 파트 2 7화의 "진실, 성실, 겸손" 가치관 강의는 "SIXTEEN"의 그것과 거의 똑같이 일치한다) "WIN: Who Is Next?" (WINNER), "NO.MERCY" (몬스타엑스) 등 여러 그룹이 같은 종류의 프로그램으로 데뷔한 바 있으니까.

<니지 프로젝트>가 지닌 차별점은 과거 한국에서 진행되었던 오디션/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자극성을 상당 부분 순화시켰다는 부분이다. 물론 경쟁과 선발 및 탈락이라는, K-Pop 서바이벌의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꽤 잔인하게 느껴질 과정을 채택하고 있다는 건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니지 프로젝트>에는 메이저 팀과 마이너 팀 사이의 극단적인 차별 대우, 올라가는 참가자가 강등되는 참가자의 목걸이를 잡아 뜯는 "SIXTEEN"의 불필요한 잔혹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울러, 이런 류의 프로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팬의 투표 참여(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분쟁들) 역시 배제되어 있으며, 심사의 포커스는 철저하게 박진영에게 맞춰진다.

이러한 특징은 몇 가지 효과를 낳는다. 시청자는 자신이 응원하는 참가자에 대한 과몰입으로 눈이 뒤집히지 않은 채 참가자들이 보여주는 실력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으며, 이들이 펼치는 "경쟁"보다는 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참가자들 못지않게 박진영의 철학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박진영은 <니지 프로젝트>에서 정말 끊임없이 자신의 기준과 교육 방식을 이야기한다. "가능성만 가지고는 안 된다. 노력을 통해서 그 가능성을 실현해야 한다"는 부정할 수 없는 원론부터 "관절을 사용해서 이렇게 춤을 춰야 동작이 크게 보인다"는 디테일한 어드바이스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시청자 각자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다른 문제지만, 그의 이야기가 자신의 경험과 실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건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일본의 인재를 발굴하고 가르쳐서 우리가 가진 K-Pop과 접목시킨다." <니지 프로젝트> 파트 1 1화에서 박진영이 제시한 프로그램의 목표다. 이 목표는, 적어도 일본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본다면 <니지 프로젝트>의 방영 내내 그 방향성을 잃지 않고 실현되고 있다. 시청자들은 이미 JYP 엔터테인먼트의 시스템에 의해 교육받은 연습생 참가자들 – 마코, 미이히, 리마 – 이 얼마나 많이 성장"해 있는지"에 대해 놀라고(모두 <니지 프로젝트> 최고의 실력자들이다), 6개월 동안 한국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재능은 있지만 경험이 일천했던 지망생 참가자들 – 마야, 리오, 리쿠, 아야카, 마유카, 니나 – 이 얼마나 확실하게 성장"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놀란다(가장 실력이 부족했던 아야카의 첫 오디션과 마지막 무대를 비교해 보자). 또한 엄격할 때는 엄격하고, 칭찬할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칭찬하며, 큰 도움이 되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 박진영의 모습을 보면서 K-Pop 프로듀싱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피부로 체감하게 된다(실제로 NiziU 못지않게 박진영에 대한 기사 또한 일본에서 쏟아지고 있는 중이다).

방송 전체를 통틀어 큰 무리수 없이 깔끔하게 이루어지는 이러한 과정을 보며, 나는 <니지 프로젝트>가 일종의 "JYP 엔터테인먼트 포트폴리오"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재능을 가진 일본의 아이돌 지망생들은 자신의 꿈을 가르치고 이끌어 줄 유력한 기획사로서, 일본의 기획사 및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들은 벤치마킹의 대상으로서, 아이돌 팬 및 일반 시청자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서 JYP 엔터테인먼트를 꼽게 되지 않을까. TWICE가 인기를 얻었을 때보다, 좀 더 구체적인 인상을 가지고.

# 결과보다 재밌는 과정

<니지 프로젝트>가 일본 내에서 JYP 엔터테인먼트를 떠나 K-Pop 전체에 대한 인상까지 결정지을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NiziU가 K-Pop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인가에 대한 진단 역시 섣불러 보인다. 이것은 아직 새로운, 그리고 또 달리 보면 그렇게까지 새롭지는 않은 시도일 테니까. 서두에서 말한 "K-Pop 3.0"에 해당하는 그룹은 NiziU뿐만이 아니다. 같은 JYP의 보이스토리, 그리고 SM 엔터테인먼트의 WayV, 그 이전의 SUPER JUNIOR-M이나 EXO-M 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흐름은 여러 기획사의 수장들이 이미 과거부터 구상하고 있었던 시도다. 이제 구체적인 형태로 막 드러나기 시작했을 뿐인 이 과정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니 지금은 커다란 이야기보다는 NiziU의 프리 데뷔곡 'Make you happy'가 얼마나 매력적인가에 대해 좀 더 집중하고 싶다. 박진영의 깔끔하고 통통 튀는 프로덕션 위에서 귀여우면서도 날렵한 안무와 밝은 목소리를 펼쳐 놓는 아홉 명의 멤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들이 <니지 프로젝트>에서 거쳤던 과정에 대해서 다시 한번 떠올려보게 된다. 지금은 일단 그 힘든 길을 거친 이들의 반짝거리는 데뷔를 축하해주고 싶다. 아마 'Make you happy'를 차트 1위로 올려놓은 팬들도 같은 심정이지 않을까. 서사에 몰입하며 "과정"에 함께 참여해 나가는 팬들의 마음과 비교하면, 멀찌감치 떨어진 시선으로 산업이나 경제성, 위상 같은 "결과"에 대해 요리조리 논하는 건 참 재미없는 일이다. <니지 프로젝트>는 그 "과정"이 "결과"보다 훨씬 재밌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걸 잘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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