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들어요, 클래식

장르 인사이드

밤에 들어요, 클래식

2020.07.20
Special

밤에 들어요, 클래식

오전에는 작업을 하고 오후에는 조금 쉬어 갑니다. 그리 덥지 않다 해도 작업실로 밀어닥치는 햇살을 여유 있게 받아넘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여름이거든요. 아무튼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에 회복한 기력을 들고 다시 작업실로 갑니다. 그렇게 남은 일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밤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드디어 왔구나."라고는 말하지 않지만 그런 마음으로 밤에 어울리는 음악으로 저의 시간을 장식합니다. 변변치 않은 하루를 보냈을지라도 마무리는 그럴듯하게 해야지요. 오늘은 여름밤에 들을 만한 클래식을 몇 곡 가지고 왔습니다. 이 곡들이 여러분의 밤에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1. 꿀잠으로 갑시다 - Max Richter의 작품들

베토벤이 작곡가가 예술가임을 선언한 이후, 후배 작곡가들은 비교적 적은 수의 작품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가면 갈수록 더욱 강화되어, 대다수의 현대 작곡가들은 특정 단체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좀처럼 작곡을 하지 않습니다. 작곡은 노동이며, 현대음악 작곡은 중노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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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 Richter [Sleep] 소개

그러나 Max Richter는 다릅니다. 각종 단체의 제안을 적절하게 선별해 작업함은 물론, 최근에는 영화 쪽에도 그 이름을 적극 올리고 있습니다. 작곡가가 주도적으로 만드는 솔로 앨범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중에는 지난 2015년에 발표했던 앨범 [Sleep]이 있습니다. [Sleep]은 제목 그대로 잠을 위한 음반입니다. Max Richter는 말합니다.

"[Sleep]은 열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를 위한 저의 개인적인 자장가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통해 잠의 과정을 탐구하고 싶었습니다."

작곡가는 잠의 과정을 탐구하고 싶다고 우아하게 말했지만 이 작품의 목표는 단 하나. 바로 "꿀잠"입니다. 모두가 질 좋은 잠을 원하는 시대에 Max Richter는 그것을 음악으로 돕고 싶습니다.

[Sleep]은 성공적이었고 이후 작곡가는 앨범의 확장판까지 발매했습니다. 이 완전본은 무려 8시간에 달하는 길이로 여러분의 잠을 확실하게 보장한다고 하는데요. 저는 한동안 이 8시간 버전을 조용히 틀어 놓고 잠자리에 들었었습니다. 효과가 아주 좋아요.

Album

Max Richter [Sleep]

Sleep

곡리스트 204

[Sleep]과 그 결은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밤에 어울리는 곡을 소개합니다. 올여름, Max Richter는 또 다른 솔로 앨범인 [Voices]를 발매합니다. 먼저 발매된 싱글은 세계인권선언의 영향을 받은 [All Human Beings]입니다. 다시 인권을 말해야 하는 시대에 Max Richter는 음악으로 힘을 보탭니다.

[All Human Beings]에 이어 두 번째로 공개된 싱글은 [Mercy]입니다. 리히터의 음악과 함께 밤은 더욱 깊어져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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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곳의 밤은 길고 길어서 - Ola Gjeilo의 [Night]

동생은 한동안 북유럽에 빠져 살았습니다. 여행도 갔다 왔어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 뒤로 얼마나 지났을까요? 제게 지나가듯 동생이 말했습니다. 사랑이 끝났음을 직감한 사람이 할 법한 이야기였습니다.

"진짜 사람 미치게 하는 날씨야. 해는 짧고, 밤은 길고..."

그러나 태어나고 자란 곳이 그곳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우리가 태어난 곳을 애써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듯, 여기 소개하는 노르웨이 출신 작곡가 Ola Gjeilo는 그런 조국의 밤을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Ola Gjeilo의 앨범 [Night]에는 피아노 독주로 기록해낸 그곳의 밤이 있습니다. 밤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자연은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 이 앨범은 말합니다.

Album

Ola Gjeilo [Night]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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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숙의 기록 - Lang Lang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는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바흐와 평소 알고 지내던 카이저 링크 백작은 평소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백작이 어느 날 바흐에게 잠이 솔솔 오게 하는 작품을 의뢰합니다. 그런 부탁이라면 거절하는 법이 없었던 작곡가는 조용한 주제로 시작하는 기다란 변주곡을 하나 만들어 백작에게 보냈습니다. 이 작품을 연주한 인물이 바로 골드베르크였기에 작품의 제목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널리 알려져 있던 이 이야기는 현대에 들어서 그 신빙성에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경험에 따르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숙면에 도움 될 만한 작품이 아닙니다. 정교하면서도 다채로운 변주들 사이에서 잠을 청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작품의 시작이자 끝인 [Aria]는 예외이지만요.

여기 소개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연주자는 다른 사람도 아닌 Lang Lang입니다. Lang Lang의 바흐라니...

Lang Lang이 연주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앨범은 9월에 발매될 예정입니다. 그나저나 Lang Lang이 우리 나이로 내년에 마흔을 맞이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거침없었고 지금도 거침없는 사람이 벌써 마흔이 다 되어 바흐를 연주한다니. 다 같이 늙어간다는 말을 절로 실감하게 됩니다.

Video

Lang Lang이 알려주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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