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음악은 어떻게 재즈 스탠더드 넘버가 되었나?

매니아의 음악 서재

영화 음악은 어떻게 재즈 스탠더드 넘버가 되었나?

2020.07.20
Special

영화 음악은 어떻게 재즈 스탠더드 넘버가 되었나?

영화음악의 거장 Ennio Morricone(1928~2020)가 이 세상과 이별한지 벌써 보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떤 음악을 연주하든지, 또는 좋아하든지 모두가 이 작곡가의 타계를 특별히 애도했다는 것은 모든 음악인들, 모든 음악팬들로부터 그의 음악이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 이탈리아 작곡가의 음악은 심지어 재즈 연주자들의 레퍼토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앨범인 Charlie Haden과 Pat Metheny의 [Beyond the Missouri Sky]에서 두 곡의 Morricone 작품을 듣겠습니다. 영화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1988)에 등장했던 사랑의 주제곡과 메인 주제곡입니다.

그런데 이 앨범에는 영화와 관련된 명곡이 두 곡 더 담겨 있습니다. 영화 "언제나 둘이서 Two for the Road"(1967)에 등장하는 Henry Mancini의 주제곡과 영화 영화음악 작곡으로 유명한 Johnny Mandel의 곡 'The Moon Song'(일명 'Solitary Moon')입니다.

공교롭게도 'The Moon Song'의 작곡가 Johnny Mandel(1925~2020) 역시 지난 6월 29일, 그러니까 Ennio Morricone가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 역시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특히 많은 재즈 음악인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Mandel의 명복을 빌었는데 그는 영화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작곡가이지만 그 출발은 재즈 음악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금관악기(트럼펫, 트롬본) 주자로 Joe Venuti, Boyd Raeburn, Jimmy Dorsey, Buddy Rich, George Auld, Chubby Jackson, Bob Cooper 밴드에서 연주했던 그는 Count Basie, Woody Herman, Stan Getz, Chet Baker를 위해 작곡, 편곡을 맡았고 1958년 영화 "나는 살고 싶다! I Want to Live!"(이 영화에는 Gerry Mulligan, Art Farmer 등이 출연했습니다)의 음악을 담당하면서 할리우드에서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곡 가운데는 여러 작품이 재즈 스탠더드 넘버가 됐는데, 그 가운데는 원래 영화음악으로 작곡된 작품들도 여러 곡 있습니다. 영화 "에밀리를 미국사람으로 만들기 (The Americanization of Emily)"(1964)의 주제곡, 영화 "고백 (The Sandpiper)"(1965)의 주제가인 'The Shadow of Your Smile'(이 곡은 아카데미 주제가상과 그래미 '올해의 노래'로 선정될 정도로 대성곡을 거두었습니다), 영화 "아메리칸 드림 An American Dream"(1966)에 등장한 'A Time for Love', 영화 "야전병원 M.A.S.H"(1970/ 이 영화는 TV 드라마로 발전해 1972년부터 1983년까지 방송됩니다)의 주제가인 'Suicide is Painless'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Johnny Mandel의 작품은 재즈에 적합하면서도 그 멜로디가 매우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기에 연주자들은 그의 곡을 연주하면서도 그들의 기교와 즉흥성을 최대한 자제합니다. 그리고 Mandel의 선율을 최대한 존중합니다. Paul Desmond와 Lou Donaldson의 알토 색소폰(Donaldson의 연주에는 Blue Mitchell의 트럼펫, Jimmy Ponder의 기타, Dr. Lonnie Smith의 오르간 솔로가 등장합니다), Shirley Horn의 노래에 등장하는 Wynton Marsalis의 트럼펫(Johnny Mandel은 이 곡에서 편곡과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았습니다), Bill Evans의 피아노 모두가 그 점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이 명연주자들의 진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Johnny Mandel의 작품들처럼 재즈 연주자들이 널리 연주하는 스탠더드 넘버들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재즈 음악가들이 직접 작곡해서 처음부터 재즈 밴드가 연주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곡입니다. Duke Ellington, Thelonious Monk, Charlie Parker, Miles Davis의 작품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두 번째 부류는 맨 처음에는 일반적인 대중음악으로 시작되었다가 재즈 음악인들이 즐겨 연주하면서 재즈 레퍼토리로 정착된 곡들입니다. 작곡가 Cole Porter, Irving Berlin, George Gershwin, Richard Rodgers 등의 음악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대중음악 작곡가들은 모두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기반으로 해서 활동했던 인물들입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태어나 1920년대부터 '40년대까지 그들의 주요 작품을 발표한 작곡가들로, 당시 브로드웨이는 미국 대중음악의 중심시장이었고 재즈 역시 이 시기에 급성장하던 음악으로, 이들의 음악 안에는 자연스럽게 재즈의 영향이 깊이 스며있었습니다. 재즈 스탠더드 넘버 가운데 20세기 전반기의 뮤지컬 넘버들이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재즈가 20세기에 등장한 당시의 새로운 예술이듯이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또 다른 새로운 예술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화입니다.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싱어 (The Jazz Singer)"(1927)가 등장한 이래로 영화에서 음악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면서 재즈도 영화와 일정 정도의 연관을 맺게 됩니다.

물론 영화와 재즈의 관계는 뮤지컬과 재즈의 관계만큼 긴밀하지는 않았습니다. 맨해튼 안에서(브로드웨이와 할렘) 인접성이 있었던 뮤지컬과 재즈와는 달리 영화는 미 대륙을 건너 할리우드에 자신의 근거지를 마련했고 그곳에서 영화를 담당하던 사람들은 주로 20세기 초 유럽에서 건너온 클래식 작곡가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쓰인 몇몇 곡들은 재즈 연주자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그 곡들은 모두 재즈 즉흥연주의 영감을 주었던 곡들입니다.

훗날 Nat King Cole의 노래로 많은 사랑을 받게 된 'Smile'은 맨 처음 영화 "모던 타임스 (The Modern Times)"(1936)에 등장했던 곡이며 이 곡을 작곡한 사람은 "모던 타임스"의 감독과 주연을 맡은 Charlie Chaplin이었습니다. 원래 Charlie Chaplin은 가사가 없는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이 곡을 작곡했지만 1954년, 이 곡에는 가사가 붙여졌고 그 가사를 통해 Nat King Cole이 노래한 버전은 많은 사랑을 받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시작된 재즈 연주자들의 녹음은 오늘날의 신동 Joey Alexander에게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1930년대 말부터 '50년대까지 Walt Disney에 의해 제작된 애니메이션은 뜻밖에도 많은 재즈 스탠더드 넘버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백설공주 (Snow White)"(1937)를 위해 처음 등장했던 Frank Churchill의 곡 'Someday My Prince Will Come'은 1961년 트럼피터 Miles Davis의 앨범의 타이틀 넘버가 되었으며(첫 번째 테너 색소폰 솔로는 Hank Mobley, Wynton Kelly의 피아노 솔로를 거쳐 두 번째 테너 솔로는 John Coltrane입니다), "피노키오 (Pinocchio)"(1940)의 주제가인 'When You Wish Upon a Star'(Leigh Harlie 작곡) 역시 색소폰의 거장 Sonny Rollins도 결코 놓칠 리 없는 스탠더드 넘버가 되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 in Wonderland"(1951)의 주제가(Sammy Fain 작곡)는 6년 뒤 피아니스트 Dave Brubeck에 의해 재즈 버전으로 녹음되었는데(알토 색소포니스트 Paul Desmond, 베이시스트 Norman Bates, 드러머 Joe Morello) 그의 연주는 이후 많은 Disney 주제곡 다수가 재즈 스탠더드 넘버가 되는 첫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 (The Wizard of Oz)"(1939)에서 열일곱 살의 소녀 Judy Garland가 처음 불렀던 'Over the Rainbow'는 작곡가 Harold Arlen의 많은 노래가 그렇듯이 즉각 재즈 스탠더드 넘버가 되었습니다. 물론 Art Tatum, Bud Powell은 이 곡을 화려한 테크닉으로 재해석했지만 이 곡 역시 함부로 손을 대면 깨질 것 같은 정교하고 여린 멜로디를 갖고 있어서 많은 녹음이 있음에도 명연주를 발견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곡을 유난히 사랑했던 Sarah Vaughan의 노래는 원곡의 아름다움과 자신의 해석을 적절하게 가미한 절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 "그린 돌핀 스트리트 (Green Dolphin Street)"(1947)에 등장했던 Bronislaw Kaper의 주제곡은 처음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9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피아노의 거장 Ahmad Jamal은 이 곡을 유심히 드려다 보기 시작했습니다. 도입부의 반복되는 오스티나토와 매력적인 화성 전개로 Jamal은 이 곡을 자신의 레퍼토리로 삼았고 그의 매력적인 연주가 등장하자 평소 그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던 Miles Davis를 비롯해, Bill Evans, Wynton Kelly 등 명연주자들이 이 곡을 녹음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가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를 각색한 영화 "흑인 오르페 (Orfeu Negro)"(1959)는 물론 Marcel Camus의 연출도 훌륭했지만 이 영화에 등장했던 Luiz Bonfa의 주제곡이 없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고전으로 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곡은 영화를 통해 알려지자마자 많은 재즈 음악인들의 주목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는 라틴 리듬을 재즈에 선구적으로 도입했음에도 유독 보사노바 영역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한 Dizzy Gillespie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의 가냘픈 뮤트 사운드가 인상적인 1962년 녹음은 이 비극적 신화의 내용을 음악적으로 함축한 인상을 줍니다.

앞서 Charlie Haden과 Pat Metheny의 'Two for the Road'에서 이미 만났던 작곡가 Henry Mancini는 1960년대 미국 영화음악을 대표했던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Johnny Mandel과 마찬가지로 재즈 연주자 출신의 음악인으로, 1946년 Glenn Miller Orchestra의 피아니스트 겸 편곡자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품에는 재즈적인 색채가 농후한데(그의 대표곡 'Pink Panther', 'Peter Gunn'이 대표적입니다) 그중에서도 영화 "술과 장미의 나날 (Days of Wine & Roses)"(1962)의 주제곡은 재즈 팬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곡은 원래 애잔한 발라드 곡이었지만 Oscar Peterson의 해석처럼 경쾌한 스윙이 가미되었을 때도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Walt Disney로부터 영화 "메리 포핀스 (Mary Poppins)"(1964)의 음악을 의뢰 받은 Robert Sherman과 Rick Sherman 형제는 "매리 포핀스"의 성공을 출발로 "정글북 (The Jungle Book)", "아리스토 캣 (The Aristocats)" 등 Disney와의 작업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 출발점이 된 "매리 포핀스"는 즉각 재즈 연주자들에게도 자극을 주었는데 특히 Duke Ellington과 John Coltrane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왈츠 'Chim Chim Cheree'를 즉각 재즈로 소화한 음악인들이었습니다. 특히 Coltrane의 연주는 5년 전(1960년)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My Favorite Things'를 연상시키는 것으로 그와 왈츠 리듬의 스윙이 얼마나 어울리는가를 다시 한 번 입증해 주었습니다.

2004년에도 리메이크된 바 있는 영화 "알피 (Alfie)"(1966)는 여러모로 재즈와 관련이 깊은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은 바로 Sonny Rollins가 맡았고 그는 Oliver Nelson의 편곡을 통해 9중주 밴드의 스윙 넘치는 연주로 사운드 트랙을 채웠습니다(기타에 Kenny Burrell, 피아노에 Roger Kellaway). 하지만 감독이었던 Lewis Gilbert는 주제가만큼은 작곡가 Burt Bacharach에게 의뢰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는 Cher가 부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 주제가마저도 재즈 음악인들은 관심을 스탠더드 넘버로 삼기 시작했는데 Burt Bacharach의 곡들이 다른 곡들 역시 재즈 연주자들의 관심을 받고있는 것을 보면 특별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재즈와 대중음악의 거리가 점차 멀어지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재즈와 영화음악의 거리도 함께 멀어졌다는 것은 부인할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또 언제, 어디서 재즈가 영화 스크린을 채우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인 것 같습니다. 영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Ascenseur Pour L'enchafaud)"(1958)의 사운드 트랙이었던 Miles Davis의 즉흥연주가 60년 뒤에 불현듯 영화 "버닝"(2018)에서 다시 등장하게 될 것을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죠. 그 장면을 보며 재즈는 지금 유행을 선도하는 음악은 아닐지라도 언제든 다시 소환될 수 있는 긴 생명의 음악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또는 창조적인 음악인라면 지금 스크린에 등장하는 어떤 곡을 재즈로 새롭게 연주하겠다는 계획을 이미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