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M이면서 ECM스럽지 않은 Marcin Wasilewski Trio의 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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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M이면서 ECM스럽지 않은 Marcin Wasilewski Trio의 신보

2020.07.22
Special

ECM이면서 ECM스럽지 않은 Marcin Wasilewski Trio의 신보

다음 책 집필 때문에 예민해서인지, 나이를 먹어서인지 해가 뜨기 전의 새벽에 눈을 뜨는 일이 잦아집니다. 새벽 네 시 정도의 시간에는 모든 게 고요하고 평화롭죠. 읽고 싶은 책 읽기에 좋은 시간. 굳이 비싼 커피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향이 은은한 커피 한 잔이면 책 읽기를 위한 나만의 시간을 만드는 준비는 끝났습니다.

저는 어떤 앨범이 있을 때 그 앨범이 어울리는 날씨는 물론이고 어울리는 시간도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이를테면 John Abecrombie의 [Up And Coming]이나 Charlie Haden과 Pat Metheny가 함께 작업한 [Beyond the Missouri Sky (short stories)] 같은 앨범은 해가 뜨기 전의 새벽에, Gerry Mulligan의 [Night Lights]나 Keith Jarrett의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같은 앨범은 밤이 어울리죠. Pat Metheny의 [One Quiet Night]이나 Joe Pass의 [Northsea Nights] 같은 앨범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그렇다면 이런 앨범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일단 지금부터 드리는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일 뿐, 이게 맞는 말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저는 새벽에 책을 읽으며 BGM으로 음악을 틀어놓을 때에는 주로 재즈 트리오 앨범을 듣습니다. 이유는 트리오라는 구성에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재즈 트리오의 구성은 드럼과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피아노로 이루어집니다. 물론 피아노대신 색소폰이나 트럼펫 또는 다른 멜로디 악기가 들어올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재즈 트리오 구성에서의 멜로디 악기는 피아노지요. 쿼텟으로 구성했을 때 여기에 색소폰이나 트럼펫이 추가되는 것에 비하면 멜로디 악기가 하나 부족한 형태입니다.

사실 트리오라는 구성은 뮤지션이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기에 그리 좋은 구성은 아닙니다. 하나의 악기로, 하나의 음색으로 멜로디 라인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밴드는 대부분 4인조나 5인조의 구성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물론 Rush같은 팀도 있긴 하지만 그들은 지구인의 탈을 쓴 외계인이지 지구인이 아니잖아요?

그렇기에 트리오 구성일 경우에는 대부분의 곡에서 베이스 솔로가 나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피아노라는 악기는 멜로디 라인은 연주할 수 있으면서 코드를 짚는 게 가능한 악기이기 때문이죠. 또한 이 악기들은 인위적인 이펙터를 쓰기 보다는 악기 그 자체의 소리를 가지고 연주를 합니다. 물론 색소폰이나 트럼펫도 별다른 이펙터를 안 쓰는 건 마찬가지지만 음색에 차이가 있죠. 관악기의 날카로운 음색보다는 음색이 부드럽기 때문에 잠이 덜 깬 새벽에 듣기에 더 좋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같은 이유로 트리오 구성의 곡은 쿼텟이나 퀸텟 구성의 곡에 비해 멜로디 라인이 단순합니다. 그들의 연주력이 떨어져서 그런 게 아닙니다. 어쨌든 앨범을 낼 정도면 기본적인 연주력은 갖춘 상태이고, 얼마든지 화려한 연주를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트리오 구성에서 멜로디 라인을 부각시키면 상대적으로 배킹 파트나 리듬 파트가 부족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전체적인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일부러 솔로를 담백하게 연주하는 경향이 있죠.

제가 제작했던 European Jazz Trio의 [서촌] 앨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멤버 각각은 자기 나라에서 대학교수를 할 정도로 뛰어난 연주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고, 그중에서도 피아노를 치는 Marc van Roon은 그저 손을 풀기 위해 피아노에 앉아서 연습을 할 때에도 '와, 정말 잘 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주력이 뛰어났는데 정작 레코딩에 들어가니 손 풀 때보다도 연주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했는데 그의 연주가 잦아들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Frans의 베이스 라인이 치고 들어오더군요. 이 둘이 코드를 잡기 시작하면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Roy의 드럼이 연주의 중심으로 올라오고요.

이는 Marcin Wasilewski Trio의 앨범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Trio] 앨범부터 [Faithful] 앨범, 그리고 [Live]앨범에서의 연주와 이번에 새로 나온 [Arctic Riff]에서의 연주는 이 팀이 같은 팀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연주의 결이 달라졌습니다. 이유는 딱 하나, 앨범의 사이드맨으로 Joe Lovano가 참여한 것이죠.

기본적으로 Marcin Wasilewski Trio의 앨범은 다른 ECM 레이블의 앨범처럼 조용하고 소박합니다. 아니 이 팀이야말로 2000년대 ECM 레이블의 상징과도 같은, ECM 하면 떠오르는 그런 앨범을 발표하는 팀이죠. 조용하고, 깔끔하며, 자극적이지 않고, 여백의 미를 살리는 연주. 그게 Marcin Wasilewski Trio의 앨범입니다. 그렇기에 한 때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CDP에 넣는 앨범이기도 했죠. 더 자야 하나 일어나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 새벽에 깨서 침대에 누워 이들의 앨범을 들으면 스르륵 다시 잠이 들기도 하고, 책상에 앉아 볼륨을 낮추고 들으면 이보다 좋은 새벽용 BGM 음악도 흔치 않으니까요.

하지만 Joe Lovano가 참여한 이번 앨범은 듣다가 스르르 잠들기는 어려울 겁니다. 물론 조용하고 깔끔한 연주는 여전하지만 이전까지의 트리오 앨범이 소박한 여백의 미를 강조한 음악이었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나 원래 이런 연주를 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화려한 연주를 선보입니다. 물론 Joe Lovano와의 유니즌 플레이도 일품이죠. 글쎄요, 이런 비유가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전까지의 Marcin Wasilewski Trio의 앨범들이 Keith Jarrett 분위기의 앨범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Keith Jarrett보다는 Fourplay나 Return To Forever의 분위기에 가까운 앨범이라면 이해가 되실까요?

Album

Marcin Wasilewski Trio, Joe Lovano [Arctic Riff]

Arctic Riff

ECM의 앨범답게 녹음 상태도 완벽합니다. "The Most Beautiful Sound Next to Silence"라는 그들의 슬로건이 전혀 건방져 보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듭니다. 볼륨을 낮추고 들어도 들릴 소리는 모두 들리면서도 번잡스럽거나 산만하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ECM이 왜 ECM인지 알려줍니다.

지금 쓰고 있는 책은 무슨 무슨 명반 뭐 그런 데에는 올라있지 않지만 알아두면 삶이 풍요해지는 그런 앨범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저는 이번 책에 Marcin Wasilewski Trio의 앨범을 모두 소개할 생각입니다. 그들은 그럴만한 연주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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