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Velvet의 알 수 없는 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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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Velvet의 알 수 없는 호러

2020.07.24
Special

Red Velvet의 알 수 없는 호러

Red Velvet의 콘셉트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렇지 않은 팀도 없겠지만) 둘 사이에서 언제나 갈팡질팡하게 된다. 작정하고 거대한 다이어그램을 그리거나, 지나칠 정도로 간단하게 "레드"와 "벨벳" 둘로 나뉘어진다고만 말하기. 그렇지만 둘 중에 어느 것도 적절한 설명이 되지는 못한다. 그래도 어렴풋하게나마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어느 시점부터 Red Velvet이라는 팀에게 있어 "레드 또는 벨벳"이라는 양자택일식의 구분은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The Perfect Red Velvet]이라는 음반명은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The Perfect Red Velvet]을 기점으로 삼았을 때, "레드"와 "벨벳"의 구분이 상대적으로 확실했던 과거의 여러 요소들이 이후 활동들에 여전히 남아있는 채로 자연스럽게 합쳐졌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Red Velvet의 활동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 특징을 하나 고르자면 "호러"를 꼽고 싶다. 아이린&슬기의 첫 EP [Monster]가 나온 시점에서, 말 그대로 또 비유적으로 Red Velvet의 호러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타이틀 곡들을 중심으로 되살펴보자.

글ㅣ나원영(웹진웨이브 에디터)
사진 출처ㅣRed Velvet 공식사이트


# 무표정이라는 섬뜩함

일단 [The Perfect Red Velvet] 때까지 Red Velvet에 대한 비평에서 나왔던 몇몇 표현들을 되돌아보자. 특히 "그리고 다시 스위치를 누르면, (…) 표정이 없어진다(김누누)", "그런 역할('해석할 떡밥')을 해온 장치는 특유의 무표정이었다(김세철)", "멤버들의 표정은 좀처럼 활짝 웃지 않는다(강명석)",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순간이 많다 / 멤버들은 웃지 않는 무표정을 제법 많이 노출한다(미묘)" "무감각한 얼굴을 한 채 (…) 예의 차가운 얼굴로 돌아온다(박희아)", "그 (무)표정은 (…) 외부의 시선에 맞서는 대응기제로서 작용한다(김윤하)" 같은 문장들을.

[The Red]와 [Russian Roulette] 시절 "콘셉트의 부재/불분명함"과 함께 Red Velvet에 대한 비평에서 종종 언급되던 것은 "무표정"인데, 이는 보통 알 수 없는 "느낌"으로만 설명되곤 하는 섬뜩함, 스산함, 서늘함, 뻣뻣함, 뻔뻔함, 차가움, 날 섬, 심지어 낯섦 등의 단어들과 겹쳐진다. 개인적으론 이 "섬뜩한 무표정"을 Red Velvet의 중요한 특징으로 두고 싶고, 또 앞서 언급한 호러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요소라고도 보고 싶다. 의도를 간파해낼 수 없는 무표정이나 (적어도 특정 시기까지는) 의도적으로 멤버들의 개성과 차이를 무화하는 의상, 또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정되지 않은 채 전환하는 콘셉트 등으로 Red Velvet은 (시)청자들에게 불안정함과 불확실함을 가져다주고, 그를 통해 아이돌 팝 아티스트에게 흔히 기대되곤 하는 어떠한 양식에서 슬쩍 어긋나거나 이를 뒤튼다.

예상이나 설명, 혹은 통제가 가능한 범주 안에서 벗어나는, 알 수도 없으며 알지도 못하는 것. 그러한 특성은 "호러"에 있어서 중요한 구성 요소다. Red Velvet의 활동 전체가 물론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단서는 꽤 일찍부터 있었다. 2015~2016년 SM의 중요한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신희원 감독 특유의 슬쩍 빛바랜 컬러풀한 세계 속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멤버들을 담은 'Russian Roulette'의 경우가 특히나 이른 사례였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그 나름대로의 "섬뜩한 무표정"을 통해 은근한 호러 분위기를 내온 Red Velvet은 본격적으로 [The Perfect Velvet]에서부터 몇 가지 방식으로 "호러"를 그들의 타이틀 곡 콘셉트와 적극적으로 합쳐서 보여주기 시작한다.

# 'Peek-A-Boo'부터 'RBB'까지, Red Velvet의 호러 롤러코스터

그렇기에 이제 'Peek-A-Boo'를 이야기할 수 있다. 한국이나 일본 등에서 익숙한 "공포 영화"보다는 영미권의 "호러 영화"에 더 가까울 슬래셔 영화의 플롯을 따라가는 뮤직비디오에서, 멤버들이 무기를 든 살인마로 출연하는 것은 'Russian Roulette'의 기시감을 머금은 채 훨씬 더 충실하게 호러를 장르 문법으로 담아낸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종종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등장하는 멤버들이 무기를 들고 서있는 경우에는 그 "섬뜩한 무표정"을 짓는다는 점인데, 가운데에서 석궁을 든 예리를 중심으로 시퍼런 달 그림자 속에 나란히 서 있는 멤버들의 모습이 특히 상징적이다.

비디오에서 드러나지 않고 설명되지도 않기에 영영 알 수 없을 이유로 서로 혹은 피자 배달부를 죽이는 멤버들은, 그 때문에 비디오 안에서는 피자 배달부에 비해, 어쩌면 비디오 밖에서는 시청자들에 비해 어떤 "우위"에 있다. 여기서 섬뜩한 무표정은 단순히 살인마에게 으레 붙는 무감각한 그것이라기보다는, Red Velvet 스스로가 외부로부터 의도를 꽁꽁 숨기는 것을 일종의 호러로써 표현하는 기술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후속 곡인 'Bad Boy'에서도 이러한 우위는 여전한데, 'Peek-A-Boo'만큼 곧장 호러와 연결할 수는 없지만, Red Velvet은 여전히 "무심한 그 표정"을 유지한 채 행동을 선점하고 그를 통해 어떠한 통제의 바깥에서 꿍꿍이를 드러내지 않는 식으로 "알 수 없음"을 유지한다.

장르적인 호러의 특징은 대놓고 할리우드의 호러 영화 세트 같은 배경을 세운 'RBB'에서 더 잘 나타난다. 움직이는 그림이나 <샤이닝>의 쌍둥이 자매, 그림자와 조명을 이용한 연출, 거대한 아가리를 벌린 늑대 인간 괴물의 형상, 거울과 손전등과 공동묘지 등 수많은 호러 클리셰들을 한 데 모으고, 앞선 곡들보다 훨씬 더 경쾌한 분위기에서도 "Oh My God"이나 예상 못한 높은 비명을 외치는 등의 구간들이 유기적으로 섞여 들어가 가장 충실한 "호러 영화" 같은 콘셉트의 곡이 만들어졌다. 여태껏 은근한 분위기로만 깔려 있던 호러가 'Peek-A-Boo'와 'RBB'에서 완연하게 나타난 셈이다.

# '알 수 없는 작은 괴물'이 펼치는 호러

한 해 동안 이어진 [The ReVe Festival] 시리즈에서 '짐살라빔'이 예상 불가능하게 엇나가는 롤러코스터와 같은 전개를 선보이고, '음파음파'의 하강하는 멜로디나 어딘가로 "빠져버리는" 테마가 밝지만 은근하게 섬뜩한 느낌을 줄 때, 'Psycho'는 다시 한 번 "참 별나고 이상한" 특성들을 강조하는 곡이다. 특히나 'Psycho'를 비롯한 ['The ReVe Festival' Finale] 전체의 경우엔 티저 사진의 의상이나 영상 등에서 무표정과 섬뜩함을 강조하면서 [The Perfect Red Velvet] 티저에서의 호러 영화 포스터 같은 느낌을 조금씩 이어간다. 이상하고 별나며 싸이코처럼 느껴지게 하는 "우리"를 이야기하는 가사와 함께, 뮤직비디오 속의 멤버들은 짧게 등장하긴 하지만 계속해서 문을 닫거나, 실 전화 혹은 귓속말 등을 하면서 여전히 정확한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는다.

Red Velvet은 모든 것을 꺼내 놓지 않는다. "섬뜩한 무표정"을 방어막으로 삼은 다음, 애매모호함을 설명하지 않고, 있는지 없는지 모를 속마음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게 확실히 파악할 수 없거나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계속 존재하는 것은 어떻게 보자면 Red Velvet이 지금까지 그려온 경로와 많이 닮아있다. 이러한 "알 수 없음"을 신비주의나 카오스로 극단화하기보다는, 그 "알 수 없음"을 완전히 드러내지도 꽁꽁 숨기지도 않은 채 활용하며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 Red Velvet은 그렇게 그들만의 태도와 접근법을 만들어냈다. 그렇기에, 그런 알 수 없는 무언가 혹은 무언가를 알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스릴"을 장르적으로 이용하는 호러만큼 Red Velvet에게 딱 들어맞는 이미지도 없다. 화사한 색감의 전형적인 아이돌 뮤직비디오 세계에서 원인 모를 섬찟함을 갖고 있건, 아니면 호러 영화 배경과도 같은 세계 속에서 왜인지 발랄하게 뛰어놀건, Red Velvet은 당당하게 바라보는 "알 수 없음"의 힘으로 팬들과 시청자들을 "위태롭게 홀려" 놓는다.

그러므로 호러 영화의 등장인물과 주인공에서 살인마, 또 "싸이코"를 지나 아이린&슬기의 'Monster'에 이르러 괴물의 시점이 전개되는 것은 이러한 호러의 분위기와 소재 속에서 굉장히 자연스러운 절차에 닿은 것처럼 느껴진다. 가사에 나오는 기괴한 움직임과 형상이나, (안무를 통해 생겨난) 거대한 몸집에 무수히 많은 다리가 달린 이 괴물은 "나쁜 의도 없어"나 "누가 거부하겠어"라고 다가오면서도 끊임없이 대상에게 겁을 주며, 벗어나려 해도 "황혼에서 새벽"까지 "여전히 존재"한다. 이렇게 섬뜩한 무표정을 지은 채 예상에서 벗어나고 기대를 뒤엎으며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채로, 그러므로 여전히 한 발 위에 올라선 채 존재하는 "작은 괴물"의 방식이 바로 Red Velvet이 꾸려온 "호러"의 어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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