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보다 중요한 가치를 위해, Max Richter의 [Voices]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힘든 시절이 있다면 인류에게는 20세기가 그런 시기였습니다. 특히 20세기 초반과 중반이 그랬습니다. 제정신인 사람이 거의 없던 시기였죠. 세계 열강들의 식민지 지배와 양차 세계대전, 그리고 그 외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견디느라 인류는 인권이 무엇인지를 다시 논의해야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1948년에 채택된 세계 인권 선언은 국적을 초월한, 인류 전체가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가치를 다시 하나하나 짚어서 인류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세계는 어떤가요? 분명 세계는 변했습니다. 인권이라는 개념은 비교적 고르게 전세계로 뻗어 나갔으며 그로 인해 잊고 있었거나 몰랐던 권리들을 인류는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던 일이 이제는 만행으로 언급되는 시기가 찾아온 것이죠. 그러나 여전한 것은 여전하여, 인류는 여전히 인권을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역사를 쌓고 있습니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내전 문제와, 난민, 그리고 최근 미국에서의 상황들을 보고 있으면 인권의 일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이런 시대에, 작곡가 Max Richter는 새로운 방식으로 인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은 시작된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Max Richter는 이번 앨범에서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번 Max Richter의 앨범 [Voices]에서 음악은 언어와 함께 시작해 끝납니다. 작곡가는 말이 가진 힘을 음악으로 전달해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앨범의 시작은 'All Human Beings', 세계 인권 선언의 채택에 주도적 역할을 맡았던 엘리너 루스벨트의 목소리로 시작합니다. 1949년에 녹음된 루스벨트 여사의 목소리가 세계 인권 선언을 읽어 나가는 동안 Max Richter는 우리 시대의 응답을 조금씩 준비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배우 키키 레인의 목소리가 점점 사라지는 루스벨트 여사의 목소리를 이어받습니다. 목소리는 달라졌어도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똑같습니다. 바로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누구나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앨범 [Voices]는 복수의 트랙이 하나의 곡을 이룹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각각의 섬들이 [Voices]라는 군도를 만드는 것이지요. 또한 앨범은 세계 인권 선언을 낭독하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첼리스트 이언 버지의 나긋나긋한 솔로가 인상적인 'Origins' 이후에는 세계 인권 선언의 제5조와 7조, 그리고 13조와 14조, 15조를 성실히 낭독하는 'Journey Piece'가 이어집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Choral'은 앨범 [Voices]의 핵심 트랙입니다. 4개의 트랙에 이어서 펼쳐지는 이 합창은 숭고한 가치를 음악으로 만들어내려는 작곡가의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가족의 권리를 정의 내리는 제16조를 낭독하는 'Hypocognition', 그리고 이어지는 'Prelude'는 앨범 안에 쉴 공간을 만드는 곡들입니다.

제18조를 낭독하며 시작하는 'Murmuration'은 피할 수 없는 삶의 비극이 덤덤하게 펼쳐지는 곡. 이후 이어지는 'Cartography'는 앨범에 다시 휴식을 만들어 줍니다.

어머니와 어린이의 인권, 그리고 교육의 권리를 말하는 'Little Requiems'는 앞선 'Choral'의 보다 개인적인 버전처럼 들리기도 하고, 'Murmuration'의 변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앞에서 숭고하게 울렸던 목소리가 이제 내면을 향하는 것이지요.

마지막 트랙은 'Mercy', "자비"입니다. 모든 사회가 이를 필요로 하지만 좀처럼 얻을 수 없는 가치. 만약 우리에게 더 많은 측은지심이 생겨나기를 Max Richter는 마지막 곡 'Mercy'와 함께 희망하며 앨범 [Voices] 마무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