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을 되찾은 R&B 레전드, Alicia Keys의 [ALIC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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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을 되찾은 R&B 레전드, Alicia Keys의 [ALICIA]

2020.09.22
Special

정체성을 되찾은 R&B 레전드, Alicia Keys의 [ALICIA]

Alicia Keys는 빌보드에서도 공인한 2000년대 최고의 R&B 아티스트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4,000만 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하는 건 물론, 총 15회의 Grammy Awards 수상을 거두며 후대의 많은 음악가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런 Alicia Keys가 마침내 일곱 번째 정규 앨범 [ALICIA]를 들고 우리 곁에 돌아왔다. 이번 앨범에 셀프 타이틀이 붙게 된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다양한 음악가들과 함께 협업해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런 만큼 앨범은 Alicia Keys의 넓은 음악 스펙트럼과 함께 자기 확신의 과정, 그리고 위로의 메시지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주요 트랙을 통해 앨범에 담긴 그의 음악과 이야기를 파악해보도록 하자.


Underdog

지난해 Alicia Keys는 Grammy Awards의 호스트를 2년째 연달아 맡아 깔끔하면서도 멋진 진행을 선보였다. 그는 무대에서 Alabama Shakes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Brittany Howard와 함께 'Underdog'을 어쿠스틱 라이브로 선보이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Underdog'은 세상의 모든 이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는 노래다. Alicia Keys는 생존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도 바쁘게 살아가는 거리의 사람들과 싱글맘에게 용기를 불어넣는다.

곡의 메시지가 더욱더 많은 이들에게 와 닿는 건, Alicia Keys 역시 이들과 비슷한 시절을 보냈기 때문일 거다. 뉴욕의 빈민가에서 자라난 그는 세상의 편견을 이겨내고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 끝내 원하는 걸 성취해냈다. 'Underdog'의 송라이터와 코러스로 참여한 영국의 팝스타 Ed Sheeran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런던과 미국으로 건너와 본인의 길을 개척했던 아티스트다. 이렇듯 'Underdog'은 두 예술가의 인생이 맞물리며 많은 감흥을 안겨주는 트랙이다.

3 Hour Drive

많은 아티스트와 호흡을 맞추며 넓은 음악 스펙트럼과 동시에 확고한 자신의 보컬 색을 드러낸 Alicia Keys. "더 보여줄 게 있을까?"라는 의문은 가지지 말자. 왜냐면 [ALICIA]는 색다른 참여진과의 조합은 물론, 이전보다 더욱 방대해진 음악 세계를 볼 수 있어 흥미로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이번 앨범의 음악을 "Genre-less"로 칭했다. 그런 만큼 앨범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려 한 그의 노력을 앨범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Hour Drive'가 대표적이다. 곡의 프로듀서 겸 피처링에는 전자음악과 R&B의 경계를 자유롭게 가로지르는 Sampha가 참여했다. 그는 트랙에서 무드 있는 신스 사운드와 공간감 있는 비트를 도입했다. 덕분에 Alicia Keys의 팬들은 전자음악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던 [The Element Of Freedom] 시절을 머릿속에 떠올릴 듯하다. 곡의 포인트는 두 번째 벌스 이후부터 시작되는 듀엣 부분으로, Sampha의 슬픔을 머금은 듯한 보컬과 Alicia Keys의 감정을 절제한 보컬이 함께 쌓이며 마음속 깊이 잔향을 남긴다.

Me x 7

앞서 말했듯이 이번 앨범은 Alicia Keys의 다양한 면을 다 담아내려 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앨범에서 그는 여러 장르를 아우를 뿐만 아니라 곡마다 프로덕션의 무드에 걸맞은 보컬을 구사한다. 특히 'Me x 7'는 여러모로 Alicia Keys의 이런 노력을 엿볼 수 있는 트랙으로 느껴진다. 우선 그는 두려움과 공포 같이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여 밤을 지새우는 자신을 가사로 표현한다. 또한, 숨소리를 한가득 섞어낸 섬세한 보컬을 통해 이런 본인의 모습을 청각적으로도 그려낸다.

이 밖에도 Tricky Stewart를 비롯한 프로듀서진이 트랙에 담아낸 미니멀한 악기 소리 역시 곡의 무드를 한층 배가한다. 곡의 피처링으로는 참신한 뮤직비디오와 음악으로 평단의 찬사를 끌어낸 Tierra Whack이 참여했다. 그는 유연한 플로우로 여러 생각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한 가사를 선보이며 Alicia Keys의 이야기에 힘을 실어준다.

So Done

'So Done'을 언급하기 앞서서 곡의 크레딧부터 가만히 살펴보자. 피처링으로는 따스하면서도 푸근한 보컬을 통해 요즘 세대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Khalid가 참여했다. 또한, 곡의 프로듀서는 다름 아닌 Childish Gambino와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장르를 두루 섭렵한 Ludwig Göransson이다. 그 때문에 음악 팬이라면 보기 힘들었던 이들의 조합이 어떤 시너지를 발휘했을지 기대하고 트랙을 재생했을 거 같다.

그런데 사실 'So Done'은 미니멀하고도 잔잔한 기타 사운드로 채워져 있는 곡이다. 왜 이런 곡이 나왔는지 이유를 알기 위해선 빌보드지에 올라온 그의 인터뷰를 참고하면 좋을 거 같다. Alicia Keys와 Khalid는 남의 시선에 맞춰 살아온 지난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영감을 얻어 곡을 작업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둘은 곡에서 남의 시선에 의존했던 이전의 자신을 던져버리고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되찾았다고 함께 노래한다. 이렇듯 'So Done'은 미니멀한 기타 사운드에 얹어진 두 아티스트의 자기 확신 과정을 발견할 수 있는 곡이다.

Love Looks Better

지금까지 앨범을 차근차근 순서대로 들어 본 팬들이라면 다양한 Alicia Keys의 음악과 좀 더 확신에 가득 찬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반가울 거다. 반면에 Alicia Keys의 가슴 뻥 뚫어지는 보컬과 시원시원한 사운드를 별로 듣지 못해 일말의 아쉬움도 남았을 터.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일말의 아쉬움은 'Love Looks Better'에서 완전히 털어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곡의 공동 프로듀서로는 팝 록 사운드로 메인스트림 음악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OneRepublic의 Ryan Tedder가 참여했다. 그와 프로듀서진은 본인들의 장기를 십분 발휘 해 팝과 록의 요소를 아우른 경쾌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에 Alicia Keys는 시원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보컬을 구사할 뿐만 아니라 고음에서 쇳소리를 섞어내며 팬들에게 안도감을 선사한다. 이 밖에도 트랙은 앨범 속 이야기의 흐름으로도 주목하면 좋을 거 같다. 내면에 집중해 자기 확신을 되찾은 Alicia Keys가 이 트랙을 기점으로 외부로 시선을 돌려 자기 생각과 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Jill Scott

Alicia Keys는 데뷔 시절인 2000년대 초에 네오 소울이란 장르를 구사하며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네오 소울은 90년대 중반 D' Angelo와 Erykah Badu, Lauryn Hill, 그리고 Maxwell과 같은 음악가들의 걸출한 앨범으로 인해 음악계에 거대한 움직임을 일으킨 바 있다. 2000년대에 넘어가서는 Alicia Keys를 비롯해 Jill Scott과 Musiq Soulchild 등 여러 아티스트들이 이를 구사하며 음악 팬의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Jill Scott'은 2000년대 네오 소울의 흐름을 만든 두 아티스트의 협업이자 Jill Scott에 대한 헌정곡이기도 하다. 곡의 작업기가 꽤 흥미로운데, 이 곡은 온라인 스트리밍 선곡 배틀 방송인 VERZUZ를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5월 Alicia Keys는 차에서 Erykah Badu와 Jill Scott의 방송을 들으면서 많은 감흥을 느꼈다고 한다. 방송이 끝난 뒤에는 주최자이자 남편인 Swizz Beatz에게 Jill Scott의 전화가 왔고, Alicia Keys는 전화를 넘겨받아 Jill Scott에게 작업을 바로 제안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그 바이브를 고스란히 담아 곡을 만들어 보냈고, 이렇게 'Jill Scott'이란 트랙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Good Job

Alicia Keys는 'Perfect Way to Die'에서 무분별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찰을 비판하며, 역설적인 곡 제목처럼 흑인의 삶도 소중하다고 설파한다. 그리고 앨범의 마지막 트랙 'Good Job'을 통해 코로나바이러스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곡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평범하지만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 "Good Job"이란 격려의 말을 건넨다.

더 나아가 세상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타인에 대한 찬사를 마음 가득 담은 목소리로 노래한다. 피아노 소리 가득한 트랙 속에서 Alicia Keys의 목소리는 세상에 퍼지듯 울려 청자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든다. 이처럼 'Good Job'은 힘든 세상살이 속에서 그저 "넌 잘하고 있어"란 단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위로를 안겨주게 되는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만드는 트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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