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와 음질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매니아의 음악 서재

LP와 음질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2020.09.23
Special

LP와 음질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제가 글을 쓰는 시점으로 어제(9월 21일) 이소라 씨의 6집 앨범이 LP로 발매되었고, 발매되자마자 3천 장이 매진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무려 135,000원에 이르는 LP가 순식간에 매진되었다니 요즘 다시 부는 아날로그의 열풍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는데요. 오늘은 이소라 씨의 LP를 가지고 이야기해볼까요?

저도 그쪽 업계에 한쪽 발을 담그고 있다 보니 이소라 씨의 LP가 출시된다는 건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이소라 씨의 완벽주의적인 성향 때문에 제작자가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고요. 그래도 [눈썹달] 같은 앨범이 LP로 출시되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될 것이고, 이런 일들이 모여 우리나라 음반 시장도 다시 활성화될 것이라는 생각에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그 결과물을 보고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이번 LP는 45rpm으로 제작된 LP입니다. 원래 45rpm 디스크는 1949년 RCA에서 제정한 EP 스펙으로 디스크의 크기가 일반적인 LP의 사이즈인 12인치가 아닌 7인치였습니다. 그런 EP가 LP 사이즈로 개량되면서 이소라 씨의 이번 앨범 같은 LP가 나올 수 있던 것이지요.

Album

이소라 [눈썹달]

눈썹달

45rpm이라... 이소라 씨다운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일반적으로 45rpm 디스크는 33⅓rpm 디스크에 비해 음질이 좋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는데요. 같은 크기의 디스크를 빨리 회전시켜 더 짧은 시간 동안 재생한다면 회전 속도의 차이, 즉 1.36배만큼 소릿골을 넓고 깊게 팔 수 있기 때문입니다. 턴테이블은 카트리지가 소릿골을 긁으며 나는 소리를 증폭시켜 듣는 방식이니 당연히 소릿골이 넓고 깊어지면 그만큼 소리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다이내믹스를 표현하는데 장점이 있죠.

문제는 가격입니다. 33⅓rpm으로 제작한다면 디스크 한 장에 담을 수 있는 앨범을 45rpm으로 제작한다면 대부분 두 장에 담아야 합니다. 즉 프레싱 비용이 두 배가 드는 거죠. 하지만 음질을 위해서 45rpm 디스크를 제작했다는 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고개를 갸우뚱했던 것은 그 45rpm 디스크를 반투명 컬러반으로 만들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가 LP라고 부르는 바이닐 디스크는 PVC로 제작합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 드리면 마스터 테이프 또는 마스터링 된 음원을 가지고 음각으로 스탬프를 파서 그 스탬프로 열을 가한 PVC를 찍어내는 거죠. 오래된 판이 아닌데도 판이 휘어져 있는 경우는 대부분 찍은 판을 식히며 굳힐 때 문제가 발생한 판입니다. 이렇듯 디스크를 찍어낼 때에는 그 디스크의 재료, 즉 PVC의 색에 따라 음질이 차이 납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검은색이 가장 음질이 좋고, 그 다음이 컬러 바이닐, 그 다음이 글리터 바이닐(은박가루 같은 점들이 반짝이는 바이닐. 필자 주) 순으로 음질이 안 좋아지는데요. PVC에도 재료의 배합 비율이나 염료의 유무에 따라 강도와 경도가 달라지면서 음질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제가 의아했던 것은 45rpm 디스크로 제작한다는 건 음질 외에는 선택의 이유가 없는데 음질을 위해 더블 LP 앨범을 제작하면서 컬러 바이닐로 제작했다는 것이죠.

자, 그렇다면 LP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음질이 뛰어날까요? LP는 어떤 사람이 LP 마스터링을 하느냐, 음원을 보낼 때의 포맷이 어떻게 되느냐, 스탬프를 제작할 때 래커 커팅이냐 DMM 커팅이냐에 따라 소리가 천차만별입니다. 요즘 LP를 사서 들어보신 분 중에는 음질이 너무 안 좋아 "대체 이걸 왜 이 돈을 주고 사지?"하는 생각을 하신 분이 꽤 있을 겁니다. 이유는 치찰음 때문인데요.

LP에서 치찰음이 생기는 이유는 음원의 대역폭을 LP라는 매체에 맞게 넣으니 대역폭이 줄어들면서 소리 에너지가 뭉쳐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LP의 스펙은 CD의 스펙보다도 훨씬 못한데 요즘 작업하는 음원들은 PCM의 경우 대부분 24bit/96㎑의 스펙이거나 아니면 DSD 음원으로 보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하죠.

문제점을 알고 있으니 해결책도 간단합니다. 프레싱 할 때에 좋은 장비를 사용하여 대역폭을 넓히거나, 그게 아니라면 애초에 프레싱을 위한 음원을 보낼 때 대역폭을 낮춰 보내면 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아닌, 프로툴 같은 음원 에디팅 프로그램에서 치찰음을 지우고, 디에싱을 하고 하다 보니 소리가 뒤죽박죽 들리게 되는 거죠. 물론 디에싱을 해야 하긴 하지만 디에싱이 정답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음질이 안 좋게 들은 LP는 대부분 디에싱만 한 LP이거나 이도 아니면 CD의 음원을 그대로 프레싱만 한 경우죠. 그중에서도 마스터 음원 없이 CD를 가지고 LP로 프레싱한 판을 들어보면 정말 끔찍한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LP는 미디어의 제작 단계에서부터 음질에 관한 변수가 너무 많고, 이를 플레이하는 턴테이블의 경우 어떤 턴테이블을 쓰느냐는 턴테이블의 구동 방식에서부터 침압, 수평, 오버행, 안티스케이팅, 카트리지 선택 등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CD의 경우 5만 원짜리 DVD 플레이어든 1억 원짜리 스위스제 하이엔드 CD 플레이어든 음질에는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소리가 납니다. 물론 1억 원짜리 CD 플레이어에서 좋은 소리가 나겠지만요. 하지만 턴테이블과 LP는 그렇지 않습니다. 세팅하기에 따라 500만 원짜리 턴테이블에서 1억 원짜리 턴테이블보다도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오디오의 구성 요소 중에서 유일하게 자본주의의 원리를 따르지 않는 장비가 턴테이블입니다.

자, 그렇다면 모든 조건이 완벽하다는 가정 하에 LP와 음원의 음질을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음질이라는 말 자체에 워낙 개인적인 편자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 단어이기에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라 "미디어에 담겨 있는 원래 소리"의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LP는 음원과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 특히 DSD 음원이라면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턴테이블이 유행이고 LP의 판매량이 CD를 넘어선 건 예전에 턴테이블로 음악을 들었던 세대에겐 향수를, 요즘 턴테이블을 처음 접한 젊은 세대에겐 레트로 감성을 플렉스 할 최고의 아이템이기 때문일 겁니다.

어쨌든 음원 시장이, 그리고 음반 시장이 활성화되는 건 반가운 일입니다. 다만 너무 과열된 양상으로 진짜 음악을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지 못하는, 음악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