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A 연말결산 Pt. 14 | 2020년 올해의 힙합 키워드는?

MMA 2020

MMA 연말결산 Pt. 14 | 2020년 올해의 힙합 키워드는?

2020.11.24
[MMA 2020]

2020년 올해의 힙합 키워드는?

Intro

그 어느 때보다 다사다난했던 2020년도 벌써 마지막 달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힙합 아티스트들은 멋진 앨범을 발표하며 팬들에게 위안을 안겨줬으며, 특히 해외의 경우에는 각종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며 힙합 음악의 인기를 많은 이들에게 체감케 했다. 아직은 이른 시점일 수도 있지만 힙합엘이는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2020년의 힙합신을 되짚어보며 한 해를 간단히 정리하고자 한다.

글 | 힙합엘이

#1

포스트 000

올해 힙합 아티스트들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줬다. 이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건 아무래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닌가 싶다. John Legend와 Alicia Keys와 같은 아티스트들은 음악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를 안겨줬다. Kiana Lede와 Kehlani 등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모습을 뮤직비디오에 담아냈다. 이 밖에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음악가들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수익 모델을 찾고 있다. 일례로 투어 중심의 기성 아티스트들은 VERZUZ라 온라인 라이브 스트리밍 선곡 방송에 출연하고 있으며, Travis Scott은 Epic Games와 손을 잡고 가상 콘서트 투어를 열어 유의미한 상업적 성과를 거뒀다.

특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디럭스 앨범과 리믹스 트랙 발표는 아티스트에게 일종의 성공 공식으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이는 수없이 많은 음원이 발표되는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꾸준히 자신의 이름을 상위권에 노출하기 위한 전략으로도 여겨진다. 우선, Doja Cat이 Nicki Minaj와 함께 'Say So'를, Megan Thee Stallion이 Beyonce와 'Savage'의 리믹스 버전을 발표해 빌보드 차트 1위를 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에서도 하이어뮤직이 밈으로 떠오른 비의 '깡'을 리믹스 해 멜론 차트 1위란 결과를 이뤄낸 바 있다. 또한, Lil Baby는 [My Turn]을, Lil Uzi Vert는 [Eternal Atake]의 디럭스 버전을 한 주 간격으로 발표하면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식케이, ZENE THE ZILLA가 정규 앨범의 디럭스 버전을 공개해 팬들의 관심을 다시 환기했다.

한국 힙합 신에만 초점을 맞춰보자면, 포스트 쇼미더머니 시대란 말로 이를 묶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올해 래퍼들은 "쇼미더머니"를 통해 얻은 성공에 대한 고민과 자신의 속내를 솔직히 풀어 놓은 앨범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딥플로우는 [FOUNDER]를 통해 한국 힙합 레이블의 CEO로서 겪었던 경험담을 밴드 사운드에 풀어냈다. 또한, 레디는 [500000]에서 스트릿 샵 직원 일을 병행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이전 크루와의 불화, 미래에 대한 고민 등 개인적인 속내를 드러냈다. 부정적인 내면을 가사와 사운드로 그려낸 넉살의 [1Q87] 역시 일련의 궤를 같이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밖에도 빌 스택스, 최엘비, BLNK, 스월비, JJK, 던말릭 등 많은 아티스트들이 대거 자신의 매력을 드러낸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2020년은 앨범다운 앨범을 통해 "쇼미더머니" 이후를 준비하는 래퍼들의 움직임을 볼 수 있어 반가운 한 해였다.

#2

경계

현시대의 리스너들은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다양한 음악을 접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올해 역시 국가, 장르, 시대 등 기존의 경계를 뛰어넘은 음악들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었다. 우선 Pop Smoke로 대표되는 NY 드릴은 국가의 장벽을 허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시카고의 드릴이 영국으로 넘어가 UK 드릴이 되었고, 인터넷을 통해 다시 미국 브루클린으로 넘어가 뉴욕 드릴이란 흐름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드릴은 Drake, Travis Scott을 통해 유행의 징조를 보였지만, Pop Smoke의 죽음 이후 장르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졌다. 올해 한국에서도 하이어뮤직의 아티스트들과 창모가 드릴을 구사하며 힙합 커뮤니티에서 높은 관심을 얻었다.

시대의 경계를 허물어 낸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이미 1980년대 즈음의 AOR, 퓨전재즈 트랙들이 뉴트로 혹은 시티팝이란 이름으로 현대의 음악 팬들에게 재조명받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에는 1980년대의 포스트 디스코 사운드가 The Weeknd, Dua Lipa와 같은 아티스트에게 재해석되면서 세계의 차트를 쥐락펴락 하는 실정이다. 포스트 디스코 사운드의 재유행은 우선 틱톡에서 불어닥치고 있는 챌린지 댄스 열풍, 두 번째로 몇 해 전부터 유튜브에서 레트로 풍 리믹스 트랙이 인기를 끌었다는 점을 주목해볼 만하다. 여기에 한 가지 첨언을 해보자면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시대적, 사회적 흐름이 마침내 대중에게도 설득력을 얻지 않았냐는 생각을 가져본다.

1980년대의 포스트 디스코 시대를 상징하는 음악가들은 LGBTQ 문화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비주얼과 음악에 녹여내며 성이라는 기존의 경계를 허물어 낸 바 있다. 수민과 비비를 비롯한 한국과 해외의 아티스트 역시 사회의 시선과 편견에 억눌렸던 자신의 모습을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표현하는 LGBTQ 문화를 작품 속에 반영하며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Cardi B와 Megan Thee Stallion의 'WAP'이 빌보드 싱글 차트를 1위를 달성한 건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렇듯 요즘의 래퍼들은 기존 사회에서 터부시되던 개인의 이야기와 성적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내며 편견이라는 장벽을 적극적으로 허물어 내고 있다.

#3

레이블

2010년대의 한국 힙합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있으니. 바로 "쇼미더머니"와 힙합 레이블이다. 이 중에서도 AOMG를 비롯한 레이블은 "쇼미더머니"를 통해 얻은 자본과 대중의 관심을 토대로 한국 힙합의 부흥기를 이뤄내는 데 큰 역할을 해냈다. 특히 2010년대 중반에는 일리네어, VMC, 하이라이트, 저스트뮤직이 레이블과 구성원의 존재감을 아로새기기 위해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의 [11:11], [RUN VMC], [Hi-Life], [파급효과]는 레이블 각각의 개성을 드러낸 건 물론, 트랩 음악을 본격적으로 구사하며 한국 힙합신의 트렌드를 송두리째 뒤바꿔 버리게 된다. 이후 기존 CEO와 수퍼비, 비와이를 비롯한 래퍼들은 앰비션 뮤직과 인디고 뮤직, 하이어뮤직, 영앤리치 등 새로운 레이블을 설립하면서 한국 힙합 레이블의 춘추전국시대를 활짝 열었다.

올해는 한국 힙합의 대표 레이블들이 대거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표하며 팬들의 마음을 즐겁게 만들었다. 일례로 하이라이트 레코즈는 10주년을 맞아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Legacy]를 발표하며 레이블의 지난 역사를 되돌아봄과 동시에 새로운 음악적 행보를 그려냈다. 내로라하는 허슬력을 자랑한 박재범의 하이어뮤직 역시 두 장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통해 구성원들의 이름을 신에 널리 알렸다. 특히 이들은 [H1GHR : RED TAPE]에서 타이트한 랩 스킬을, [H1GHR : BLUE TAPE]에서는 부드럽고도 팝적인 음악들을 선보이며 대중의 취향까지 한 데 사로잡았다. 이 밖에도 아메바컬쳐는 15주년을 맞아 "THEN TO NOW"라는 프로젝트로 다이나믹듀오의 히트곡을 재즈로 편곡한 앨범과 함께 '나 오늘'이라는 단체 곡을 발표했다.

반면에 2010년대 한국 힙합을 상징하는 레이블 일리네어 레코즈의 해체 소식은 많은 음악가와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아무리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라지만, 일리네어는 한국 힙합에 거대한 파급력을 일으킨 레이블이기에 신에서도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아쉬워함을 알았던 걸까? 더콰이엇은 염따와 함께 'BENTLEY 2'를 발표하며 일리네어의 지난 10여 년을 멋지게 마무리했다. 이렇듯 2020년은 세월을 함께 보낸 한국 힙합 레이블의 지난 역사와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던 해로 기억될 거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