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는 '현장의 감동'을 대체할 수 있을까

매니아의 음악 서재

오디오는 '현장의 감동'을 대체할 수 있을까

2020.11.18
Special

오디오는 '현장의 감동'을 대체할 수 있을까

돈이 많이 드는 취미인 오디오에 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그 오디오 살 돈이면 평생 공연장 다니겠다. 오디오가 아무리 좋아도 현장에서 직접 듣는 것보다 좋을 리는 없을 테니까."입니다. 제 생각에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우선 하이엔드 오디오를 살 돈이면 평생 공연장에 다닐 수 있는 건 맞습니다. 만약 집에 있는 오디오가 진정한 의미의 하이엔드 오디오라면 1년에 공연 보는 비용으로 천만 원씩만 쓴다고 해도 최소한 30~40년 동안은 볼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현장에서 듣는 게 음질이 나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단 다른 걸 다 떠나서 내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마이크가 있는 위치에 앉아서 들을 수는 없을 것이고, 내 귀가 아무리 예민해도 고감도 마이크보다 좋을 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녹음 및 후처리 과정에서 노이즈나 주변의 잡소리, 안다 박수, 기침 소리 등은 제거가 되기 때문에 대가의 연주를 직접 눈으로 본다는 감동은 있을 수 있겠지만 현장에서 공연을 직접 보는 것이 음질적으로도 더 뛰어나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못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현장의 감동"이라는 것도 오디오를 통해 느낄 수 있을까요? 저는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스테레오 시스템이라면 양쪽 스피커의 보강 간섭에 의해 소리의 상(像)이 맺히기 마련이고, 그렇기에 세팅만 제대로 되어있다면 20만 원짜리 PC용 스피커든 20억 원짜리 하이엔드 스피커이든 눈앞에 가수가 서서 노래를 부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밤에 불 꺼놓고 음악을 듣는다면 바로 이런 느낌이 인기척처럼 느껴질 때도 있기 때문에 음악 듣다가 흠칫흠칫 놀랄 때가 있죠. 제 작업실에는 Billie Holiday 귀신이 그렇게 자주 찾아오더라고요.

이렇듯 오디오에 취미가 있는 분들에게 오디오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공통적으로 나올 대답 중의 하나가 "현장의 소리를 느끼기 위해서"일 겁니다. 그런데 제가 오디오를 하면서 정말 궁금했던 게 있었는데요. "왜 우리나라에서는 B&W나 ATC 계열의 모니터 스피커가 인기가 없을까?" 이었습니다. 현장의 소리를 느끼기 위해서라면 현장의 엔지니어들이 많이 사용하는 이 스피커들이 인기가 많아야 하지 않을까요? B&W 스피커는 클래식 쪽에서는 거의 업계 표준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이 쓰이는 스피커이고, ATC 스피커역시 그 어디에도 빠지지 않을 강력한 모니터 성향으로 녹음 현장의 먼지 소리까지 표현할 것 같은 느낌의 스피커인데요.

꽤 오랜 시간 동안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 이유는 이런 것 같습니다. 우선 이런 모니터 계열의 스피커는 다른 하이엔드 스피커에 비해 저역이 좀 덜 나오는 느낌이 듭니다. 저역이 덜 나오니 소리가 풍성하지 않은 느낌이 들고, 그러다 보니 소리가 풍성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아니라 딱딱하고 앙상한 느낌이 들게 되죠.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습니다. 실제 우리가 듣는 음악은 그렇게 저역이 많지 않습니다.

클럽이나 록 그룹 공연장에서 음악을 듣는다면 온몸을 휘감는 저역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느낌을 받게 되지만, 그건 클럽이나 락그룹 공연장에서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하기 위해 그렇게 세팅한 것이고 실제 음악은 그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정말 많은 분이 저역과 부밍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부밍은 공간의 특성 때문에 생길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부밍의 이유는 앰프가 저역을 제어하지 못해서 풀어지는 소리가 나는 것인데 오디오를 수십 년 했다는 사람들 중에도 저역과 부밍을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이 정말 많죠.

실제로 앰프가 우퍼를 제대로 제어하면 저역의 양감은 줄어들고 소리가 딱딱해지면서 저역의 타격감이 살아납니다. 부드럽게 퍼지는 저역 중에는 스피커의 우퍼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우퍼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생기는 진동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모니터 계열의 스피커들은 부밍이든 아니든 저역이 딱 나올 만큼만 나오다 보니 저역이 많은 소리에 익숙해져 있고 저역이 많은 소리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인 소리가 나는 스피커가 아닌 거죠.

중음역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디오에서 말하는 중음역대의 소리는 사람의 목소리나 악기의 소리처럼 우리에게 실제로 들리는 대역의 소리를 말하는 것으로 중음역대가 넓으면 사람의 목소리나 악기 소리에 윤기가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 대표적인 브랜드가 다인오디오나 소너스 파베르, 윌슨오디오, 빈티지 브랜드 중에는 알텍, 탄노이 등이죠.

그중에서도 다인오디오의 2웨이 북쉘프 스피커는 여자의 목소리를 듣기엔 이 세상 그 어떤 스피커에도 꿀리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에 비해 모니터 스피커는 중역이 넓지 않기 때문에 사람 목소리나 악기 소리가 무미건조하게 들립니다. 드라마 속 캐릭터에 비유하자면 "비밀의 숲"의 황시목 같은 느낌이랄까요? 일은 정말 잘하지만 사람의 느낌이 나지 않는 황시목처럼 나와야 할 소리는 다 내주지만 감동은 덜합니다. 그게 모니터 스피커의 중음역대입니다.

이번엔 고음역대를 생각해볼까요? 인간의 가청주파수는 20~20,000Hz로 알려져 있지만 그건 아기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이고, 실제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높게 잡아봤자 악기 중에서 가장 높은 음역대에 위치한 피콜로의 한계인 4kHz 정도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대역에서 가청주파수의 한계 영역까지의 소리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음질"을 좌우하는 영역입니다. 중음역대처럼 잘 들리지는 않지만 소리의 해상도를 결정하는 구간이 바로 이 구간이고, 배음의 영역 또한 이 구간이기 때문입니다.

앰프의 A 클래스 증폭방식과 A/B 클래스 증폭방식의 소리의 차이를 만드는 것 역시 이 구간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스피커 유닛 역시 고음역대를 담당하는 트위터가 저역을 담당하는 우퍼보다 훨씬 비쌉니다. 저는 오디오 책을 두 권 썼고 지금 세 권 째 쓰고 있지만 지금까지 오디오를 하면서 천만 원이 넘는 우퍼 유닛은 본 적이 없지만 천만 원이 넘는 트위터나 슈퍼트위터는 숱하게 많이 봤습니다.

이토록 음질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고음역대이기에 각 스피커 브랜드들은 이 고음역대를 잡기 위해 실크부터 플라스틱, 티타늄, 알루미늄, 마그네슘, 심지어는 베릴륨과 다이아몬드까지 원소 주기율표에 있는 모든 금속은 다 써볼 기세로 별의별 트위터를 만듭니다. 소재가 딱딱하고 가벼울수록 반응성이 빠르고 댐핑을 얻기 쉽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트위터는 자기만의 색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베릴륨 트위터를 사용하는 포칼의 스피커는 누가 들어도 포칼의 스피커처럼 들리는 것이지요.

자기만의 색이 있다는 게 결코 나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바로 그런 자기만의 색이 그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이고 장점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모니터 용도로는 자기만의 색이 있다는 것이 장점이 될 수는 없죠. 그렇기에 B&W는 다이아몬드 트위터를 채택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ATC는 아직도 전통적인 트위터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고요.

글쎄요, 저는 소리는 자기만족의 영역이기 때문에 본인만 만족하면 그게 천상의 소리이고, 그렇기에 굳이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마치 모니터 스피커의 단점처럼 보인 이야기들이 듣는 장르를 클래식 대편성 관현악에 대입하면 단점이 장점으로 변합니다. 그렇기에 굳이 B&W나 ATC가 아니더라도 클래식 대편성 관현악 곡을 좋아하신다면 모니터 스피커를 써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다면 대편성 관현악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면 이런 모니터 계열의 스피커는 쓰면 안 되는 걸까요? 오늘 글을 잘 읽어보시면 모니터 계열의 스피커는 특별히 장점이 있는 장르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게 맞습니다. 모니터 계열의 스피커는 제대로 세팅한다면 특별한 장점이 없어야 합니다. 오늘 클래식 대편성을 녹음하다가 내일 힙합을 녹음하고 모레 데스 메탈을 녹음할 수도 있으니까요. 자, 힌트가 되셨나요? 특별한 장점이 없다는 말은 특별한 단점이 없다는 말도 됩니다. 저처럼 댄스부터 데스까지 듣는 분이라면 서브 시스템으로 모니터 스피커만큼 좋은 스피커도 없습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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