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향과 녹음의 상관관계

매니아의 음악 서재

잔향과 녹음의 상관관계

2020.11.25
Special

잔향과 녹음의 상관관계

"가오"로 일평생을 살아온 제 가오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노래방에 갈 때인데요. 제 나름대로는 진지하게 부르는데 제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다들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다가 누구 하나가 웃기 시작하면 다들 숨 넘어가게 웃습니다. 속된 말로 "확 깬다"고 하더군요. 더구나 노래방에 갔을 때에는 다들 술을 한 잔씩 한 상태이니 그 웃음소리는 더 커지기 마련이죠. 그래서 저는 술 마시고 노래방에 가는 걸 아주 싫어합니다. (...)

그런데 저처럼 특별하게 노래를 못하지 않는 한 대부분 노래방에 가면 본인이 노래를 잘 한다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에코"라고 부르는 이펙터 때문인데요. 에코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메아리가 울리는 듯한 효과를 내는 이펙터입니다. 여기에 딜레이나 리버브를 섞으면 메아리에 공간감이 생기면서 소리가 풍성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음정, 박자를 무시해도 노래를 잘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죠. 물론 저처럼 이펙터의 효과를 무시할 만큼 노래를 못하지 않는다면 요. 그렇다면 우리가 녹음을 하는 공간도 이렇게 에코를 넣은 듯한 공간에서 하면 소리가 더 좋지 않을까요?

보통 레코딩 엔지니어가 녹음을 해야 할 공간에 가면 마치 가수가 리허설을 하기 전에 '마이크 테스트'나 '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아!' 소리를 내보거나 박수를 치는 것인데요.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 공간의 잔향의 길이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당연하겠지만 잔향은 공간마다 다릅니다. 공간의 크기에 따라, 벽체의 재질에 따라 잔향은 달라지죠. 공간이 클수록, 천정이 높을수록, 벽체의 재질이 딱딱하고 매끄러울수록 잔향은 길어집니다. 문제는 각 악기마다 가장 좋은 소리가 나는 잔향의 길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제가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의 [서촌] 앨범을 제작할 때의 일이었는데요.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재즈는 다른 장르와는 달리 각 파트별로 녹음을 하기 보다는 라이브 연주를 그대로 녹음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야 그 라이브 연주에서 각 멤버간의 호흡이나 주고받는 인터플레이, 앙상블 등이 더 잘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재즈 연주는 정확한 악보가 있고 그 악보대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코드만 적어놓은 상태에서 즉흥 연주를 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라이브 연주가 더 결과물이 좋기도 하고요. 물론 보컬이 들어간다면 MR을 먼저 녹음한 다음에 보컬을 따로 녹음하기는 하지만요.

어쨌든 그런 식으로 녹음 준비를 하고 리허설을 하는데 콘트라베이스의 소리가 너무 튀는 겁니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녹음을 진행할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요. 이유는 바로 공간의 잔향 때문이었습니다. 앨범을 녹음했던 스튜디오는 우리나라에서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잔향이 긴 녹음실이었고, 그렇게 잔향이 긴 공간에서 현의 울림을 녹음하니 울림이 너무 길어져서 소리가 엉키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 것이었죠. 결국 부랴부랴 흡음 패널로 간이 부스를 만들고 마치 인디언 천막처럼 카펫으로 지붕까지 덮으면서 겨우 녹음을 할 수 있었습니다. 녹음을 했던 날이 날씨가 더워 프란스가 고생을 많이 했었죠.

이처럼 같은 공간에서 녹음을 하더라도 각 악기에 따라 세팅이 달라집니다. 그렇기에 라이브 연주의 녹음이 더 어려운 녹음이기도 하고요. 당연히 연주자에 따라 선호하는 스튜디오도 따로 있습니다. 일례로 사운드 엔지니어의 능력이 좋다고 알려진 스튜디오가 있는데 많은 연주 자들이 그곳에서의 녹음을 기피해서 왜 그런가 물어봤더니 그 곳에서 녹음을 하면 잔향이 너무 길어서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지 않아서 그렇다고 주로 현악기 연주자들이 말하더군요.

그렇다면 어떤 악기에 어떤 공간이 좋을까요? 일반적으로 드럼은 드럼 부스에서 따로 녹음을 하고 드럼 부스는 잔향이 거의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일인데요. 드럼은 기본적으로 심벌만 세 종류(하이햇, 크래쉬, 라이드)가 필요하고 여기에 장르에 따라 차이나 심벌이 추가되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 우리의 징처럼 생긴 공이 추가되기도 하고요.

문제는 이런 심벌은 음정이 있는 소리라기보다는 타격음이 주가 되기 때문에 잔향이 길어지면 소리가 섞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소리가 지저분하게 들립니다. 게다가 드럼에서 심벌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비중이 큽니다. 세션맨들이 연주를 하러 다닐 때에도 드럼 세트를 모두 챙겨 다니지는 않지만 적어도 스네어와 심벌들은 자기 것을 챙겨 다닐 정도로요. Loudness의 전설적인 드러머인 히구치 무네타카는 "심벌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로 드러머의 가치는 결정된다."는 말을 할 정도였죠. 그러다 보니 드럼은 잔향이 거의 없는 드럼 부스에서 최대한 드럼의 직접음만을 포집하는 방식으로 녹음합니다.

반면 보컬의 경우 보컬의 성향에 따라, 장르에 따라, 그리고 레코딩 엔지니어의 성향에 따라 각기 다릅니다. 이펙터를 쓰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엔지니어는 자연스러운 울림이 있는 공간에서의 녹음을 선호합니다. 보컬 부스에도 잔향이 없다면 소리는 메마르고 앙상하게 들리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이펙터를 써야 할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컬 스타일이겠죠. 양희은 씨나 이소라 씨처럼 목소리 자체에 울림이 많은 목소리라면 그런 목소리를 잔향이 없는 부스에서 녹음한다면 목소리의 매력이 사라지게 되니까요.

악기의 경우는 어쿠스틱 악기이냐, 일렉트릭 악기이냐에 따라 다릅니다. 일렉트릭 악기를 다이렉트로 연결해서 녹음한다면 공간이 어떤 공간이든 상관없지만 일렉트릭 악기를 마이크에 연결해서 녹음한다면, 이를테면 일렉트릭 기타 – 이펙터 – 앰프 & 스피커 – 녹음 마이크 방식으로 녹음한다면 공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피아노나 바이올린의 독주를 연주한다면 악기에 바로 마이크를 부착하고 녹음하는 방식도 있고, 조성진의 녹음 스타일처럼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위치에 피아노를 세팅하고 비교적 먼 거리에서 여러 대의 마이크를 세팅하고 녹음하는 방식도 있죠. 이런 방식으로 녹음을 할 경우 소리가 매우 자연스럽게 들리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녹음 비용이 많이 올라간다는 단점도 있지만요.

합창은 또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합창곡은 피아노나 오르간 정도로만 반주를 하고 반주보다는 목소리가 주가 되기 때문에 소리가 풍성하게 들리기 위해 잔향이 긴 곳에서 녹음하는 것이 좋습니다. 종로에 있는 성공회 성당이나 대형 교회 같은 곳이 그런 곳이죠.

이렇듯 공간의 잔향에 따라 녹음하는 방식은 각기 다릅니다. 재미있는 것은, 소리를 잘 들어 면 어떤 공간에서 어떤 식으로 녹음 했는지가 들린다는 것이죠. 요즘의 클래식 음반, 그중에서도 SACD 음반 중에는 아예 스테이지의 레이아웃을 설명하는 앨범도 있습니다. 이런 것에 신경 쓰면서 음악을 듣는다면 그 전까지는 몰랐던 재미를 느끼실 수도 있고, 안 들리던 소리가 들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게 음악 듣는 재미죠.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