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소리=좋은 소리'라는 공식은 성립할까?

매니아의 음악 서재

'비싼 소리=좋은 소리'라는 공식은 성립할까?

2020.12.02
Special

'비싼 소리'와 '좋은 소리'에 대한 단상

십 여 년 전이었습니다. 용산의 모 오디오 샵 사장님과 식사에 반주 한 잔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질문을 했었죠. "사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소리는 어떤 소리인가요?" 그 샵은 우리나라의 오디오 역사와 그 궤를 함께 했고, 우리나라에서 오디오를 하려면 그 샵에서 물건을 안 사고는 오디오를 할 수 없던 시절이 있는 그런 샵입니다. 그 샵에서의 판매순위가 우리나라 오디오 판매순위인 그런 샵이었죠. 그렇게 많은 오디오를 거래한 샵 사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소리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이 세상에 좋은 소리는 없습니다. 좋은 음악만 있을 뿐이죠."

우문현답이랄까요? 한 방 세게 맞았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니 그 이후로 누군가 제게 제가 했던 질문을 하면 살며시 눈을 감고 잠깐 생각하는 척 한 다음에 샵 사장님이 했던 말을 그대로 해줍니다. (...) 이렇듯 "좋다"라는 느낌은 정량적으로 표현할 수 없죠. 하지만 "비싸다"는 정량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오디오든 가격이 없는 오디오는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비싼 소리"라는 건 있을까요? 만약 있다면 "비싼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요?

몇 년 전, 지인 덕분에 마이바흐 S 클래스 뒷좌석에 앉아 며칠 간 여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리를 다 펼 수 있고, 다리를 꼬고 앉아도 앞좌석에 발이 닿지 않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보다 더 신기한 것은 그 차의 오디오 소리였습니다. 저야 오디오 소리 듣고 그 소리에 대한 글을 쓰는 게 직업인 사람이지만 그 차의 카오디오 소리는 웬만한 집 오디오 소리를 동네 전파상 라디오 소리로 만드는 그런 소리였습니다. 제가 심사위원으로 몇 년 간 참여했던 카오디오 경진대회에 그 차 가지고 나가면 그대로 1등 하겠더라고요. 그런 그 차에는 옵션 가격이 웬만한 중고차 한 대는 살 수 있는 오디오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 차에선 다른 차에서는 듣기 힘든 "비싼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비싼 소리는 대체 어떤 소리일까요?

"비싼 소리"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비싸다"의 기준부터 정의해야 될 것 같은데요. 이런 문제는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굳이 기준을 제시한다면 더 이상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즉 같은 가격대가 2~3년 이상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 프리앰프 기준으로 천만 원 이상의 앰프가 제가 생각하는 비싼 앰프입니다. 그 프리앰프와 매칭이 되는 소스 기기나 파워앰프, 그리고 그 파워앰프에 어울리는 스피커 정도가 비싼 오디오가 되겠죠.

이 정도면 중고가 기준으로 1억 원 언저리부터 그 이상의 시스템이 만들어집니다. 굳이 브랜드로 설명하자면 MBL이나 버메스터, 에어, 나그라 정도의 브랜드가 이 정도의 브랜드이고, 그 정도가 제가 생각하는 "비싸다"의 기준입니다. 주변에 오디오 좀 했다는 분들이 "내가 오디오에 쏟아 부은 돈 다 모으면 지금 강남에 아파트 한 채는 살 거예요." 하는 분들이 종종 보이지만 실제로 그럴 분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디오는 계속 사는 게 아니라 샀던 제품을 팔면서 다른 제품을 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정도 시스템에서 나오는 소리는 어떨까요? 각 브랜드별로 자기만의 색이 있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브랜드와 상관없이 극한의 해상도를 보여줍니다. 마치 녹음할 때의 연주자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손에 잡히는 듯할 정도로요. 재생 주파수 대역 또한 매우 넓죠. 또한 재생 주파수 대역이 넓어서인지 소리가 끈적끈적하게 나오기보다는 이온 음료 광고처럼 맑고 투명하게 느껴집니다. 여기에 시원시원하게 나오는 소리를 들으려면 "더 비싼 소리"의 시스템으로 돈을 더 쓰면 됩니다. FM 어쿠스틱스나 골드문트 정도가 이에 해당됩니다. 가만히 보니 비싼 시계를 만드는 국가 순서대로 비싼 오디오도 만드네요. (...)

또 하나 비싼 소리의 특징은 위에서도 간략하게 언급했지만 자기만의 소리가 있고, 이는 아름다운 단어로 포장하면 그 브랜드만의 아이덴티티가 되는 것이고, 비판적인 입장에서 표현하면 착색이 되는 겁니다. 제가 아는 한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앰프를 만드는 FM 어쿠스틱스이지만 FM 어쿠스틱스 앰프 소리를 들으면 소리만으로도 "돈 많은 사람인가보다. FM 앰프네."라고 알 수 있습니다. FM어쿠스틱스만의 고유한 착색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FM 어쿠스틱스만의 특징이 아니라 그 정도 급의 하이엔드 브랜드라면 어떤 브랜드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착색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에어(Ayre)사의 앰프는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중에는 주파수 대역이 리니어하기로 유명하고 실제로도 매우 정직한 소리가 나는 것처럼 들리지만 에어 사의 앰프 역시 대략 5kHz 대역을 살짝 부스트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 대역을 부스트시키면 녹음할 때 컴프레서를 사용한 것처럼 해상도가 올라가는 느낌이 있는데 에어의 앰프가 딱 그런 느낌이죠. 정리를 하자면 제가 생각하는 비싼 소리는 1) 해상도가 높고, 2) 재생 주파수 대역이 넓으며, 3) 해상도가 높고 재생 주파수 대역이 넓으니 당연히 소리의 굵기는 가늘 수밖에 없고, 4) 그러면서 고유한 착색이 있는 소리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말씀 드려야 할 것이 있는데요. "착색"이라는 단어의 어감 때문에 "그럼 안 좋은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바로 그 착색 때문에 가격표에 "0"이 하나 더 붙어있는 앰프를 사는 겁니다. 정말로 정직한, 다시 말해 착색이 없는 소리를 듣고 싶다면 이런 오디오가 아니라 프로용 모니터 스피커를 사야죠. 누구나 "정직한 소리"를 들을 이유는 없고, 바로 그 "정직한 소리"라는 것이 결코 듣기에 좋은 소리는 아니니까요. 비슷한 예로는 얼굴에 하는 화장이나, 사진에 들어가는 필터를 들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의 진짜 주제, "비싼 소리 = 좋은 소리"라는 공식은 성립할까요? 저는 이 문제야말로 흔히 말하는 "케바케", 즉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대편성 관현악곡, 그중에서도 베토벤 9번이나 말러 5번, 브루크너 8번처럼 대편성 중에서도 특히 많은 악기가 등장하는 대편성 관현악곡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저는 비싼 소리가 좋은 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일 겁니다. 위에서 말한 저 "비싼 소리"가 바로 대편성 관현악곡을 현장감 있게 즐기기에 가장 맞는 소리이니까요. 게다가 현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해상도는 보너스고요.

그런데 제가 김광석의 목소리나 요요마의 첼로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생각이 다를 것 같습니다. 김광석의 목소리나 요요마의 첼로처럼 하나의 악기(목소리)가 주가 되는 음악이라면 그 주가 되는 대역의 소리가 잘 들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극강의 해상도와 넓은 재생 주파수 대역보다는 재생 주파수 대역은 좁더라도 중역에 몰려있는 게 훨씬 더 소리의 온도감이나 밀도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중에서도 하드밥이나 웨스트코스트 재즈 스타일의 재즈를 좋아하는 분이시라면 비싼 소리의 맑고 투명한 느낌보다는 소리는 투박하더라도 시원하게 쭉쭉 뽑아주는 소리에 더 쾌감을 느끼지 않을까요? 저 같으면 맑고 투명한 Lee Morgan의 트럼펫 소리보다는 거칠더라도 시원하게 뽑아내는 Lee Morgan의 트럼펫 소리를 훨씬 더 좋아할 것 같습니다.

물론 오늘의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는 비싼 소리라는 소리는 존재하고, 그 비싼 소리는 어울리는 장르가 따로 있는, 그렇기에 "비싼 소리 = 좋은 소리"는 누구에게나 성립하는 공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은 이겁니다. 자동차는 비싼 차가 빠르고, 편하며, 안전하죠. 하지만 오디오는 비싸다고 모든 장르에서 좋은 소리가 나는 건 아닙니다. 남의 비싼 오디오를 부러워할 시간에 본인이 원하는 장르에 어울리는 오디오를 찾고 세팅하는 게 훨씬 더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뭐... 클래식 대편성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겠지만요.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