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학적 특성으로 알아보는 '첼로'에 대한 이해

매니아의 음악 서재

음향학적 특성으로 알아보는 '첼로'에 대한 이해

2020.12.09
Special

'첼로'라는 악기에 대한 이해

불면증 환자에게 불면의 밤은 고통스러운 시간입니다. 힘들게 잠들었는데 한 두 시간 정도 자고 새벽 세 시쯤에 깨면 그 때부터는 대략 난감한 시간의 시작이고요. 오래 전에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침대에서 밍기적거리다가 아침을 맞이하곤 했는데요. 언제부터인가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유를 데워 밀크티를 만들고, 읽던 책을 꺼냅니다. 그리고 첼로 음악을 듣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해가 뜨고 좋은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하게 됩니다. 네, 오늘의 이야기는 첼로 음악입니다.

첼로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우선 첼로의 음향학적 특성에 관해 알아야 되겠죠? 많은 분이 알고 계시는 게 첼로는 비올라와 콘트라베이스 사이에 있는 음역대를 표현하는 악기로 알고 있고 그래서 주로 낮은 음 위주로 연주가 펼쳐진다고 생각하십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첼로는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음역대가 넓습니다. 오케스트라에 쓰이는 악기 중에서도 음역대로만 본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넓은 악기가 첼로이고, 바이올린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높은 음을 표현할 수 있는 악기 또한 첼로입니다. 실제로 크로아티아 출신의 크로스오버 듀오인 2CELLOS의 곡을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듣는다면 첼로 연주곡이라기보다는 비올라나 바이올린 연주곡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위의 곡을 잘 들어보시면 바이올린이나 비올라 소리와는 음색이 확연히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음역대를 연주하더라도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소리는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꽤 많은데 비해 첼로 소리는 누구나 구별해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음색의 차이는 왜 생기는 걸까요? 바로 크기의 차이입니다.

바이올린은 1/16 사이즈부터 4/4 사이즈까지 있지만(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1/16 사이즈는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1/8 사이즈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필자 주) 바이올린의 풀사이즈인 4/4 (체구가 작은 여성의 경우 7/8) 사이즈의 경우 비올라와 크기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실제 바이올린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비올라를 바이올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저처럼 체격이 큰 사람이 비올라를 들고 있다면 그 비올라가 바이올린처럼 보일 수도 있겠죠.

그렇기 때문에 울림통의 크기에 큰 차이가 없고 그런 이유로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음색이 비슷합니다. 애초에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모두 바이올린족의 찰현 악기이고, 소리를 내는 메커니즘이 모두 같으니 소리의 차이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라면 울림통의 크기일 텐데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울림통의 크기가 거의 같은데 비해 첼로는 앞의 두 악기와는 크기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니 음색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울림통이 크고 바이올린과 비올라에 비해 저역을 담당하니 당연히 배음이 더 많이 나와서 소리가 훨씬 웅장하게 들리지요. 물론 콘트라베이스와도 크기 차이는 확연하고요. 게다가 콘트라베이스는 주로 연주되는 음역대도 훨씬 낮으니 누가 들어도 첼로의 소리는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첼로 소리"하면 어떤 느낌이 떠오르시나요? 보통 첼로는 바이올린에 비해 훨씬 부드럽고 평화로운 이미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렇기에 아기가 등장하는 광고에는 배경 음악으로 첼로 소리가 많이 쓰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다른 찰현 악기와 마찬가지로 첼로 역시 가까이에서 실제 연주를 듣는다면 생각했던 소리와는 너무 다른, 거친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실 겁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레코드를 통해 들었던 첼로 소리는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나 파블로 카잘스, 자클린 뒤 프레나 미샤 마이스키 같은 외계인의 연주인데 비해 가까이서 들을 수 있는 연주는 클래식 음악 전공자가 아니고서는 윗집, 아랫집, 옆집, 심지어는 트럭 후진할 때마저 들리는 '엘리제를 위하여' 수준의 연주이니 경우에 따라서는 첼로 소리가 음악이 아니라 고문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죠. 실제로 앞에서 언급한 외계인 중에서도 끝판왕 급으로 꼽히는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와 벤저민 브리튼이 함께 한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귀 기울여 들어보면 평소에 생각했던 소리와는 다른 느낌의 소리가 날 겁니다.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다른 악기와의 관계 내지는 첼로라는 악기의 위상입니다. 첼로는 오케스트라에서는 현악의 저음파트를 담당하는 악기이지만 대부분의 저음파트를 담당하는 악기가 그렇듯이 오케스트라에서 현악의 멜로디파트인 바이올린에 비해 눈에 띄는 악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실내악으로 시선을 옮긴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팝음악이나 록 음악, 재즈에서 기타 없이는 곡을 쓸 수 있어도 베이스 기타나 콘트라베이스 없이는 곡을 쓰기 어렵듯이 실내악에서는 빠질 수 없는 존재감을 보여주는 악기가 첼로이고, 그렇기 때문에 첼로는 소나타나 콘체르토 위주로 곡이 써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첼로가 메인인 녹음은 악기 수가 많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 볼까요? 첼로는 1) 생각보다 음역대가 넓고, 2) 현악 파트의 저역을 담당하고, 3) 2)의 이유와 함께 악기의 울림통이 커서 배음이 많이 나오고, 4) 그러면서 녹음할 때 다른 악기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5) 유니크한 음색을 가지고 있다 정도가 될 것 같은데요.

악기 수가 많지 않으니 스피커의 유닛 수도 많을 필요가 없으며, 저역을 담당하면서 배음이 많이 나오니 우퍼 유닛이 크면 좀 더 자연스러운 소리로 표현할 수가 있겠죠. 유니크한 음색을 잘 표현하려면 첼로 음역대, 다시 말해 오디오에서 말하는 중음역대의 소리가 좋으면 더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굳이 재생 주파수 대역이 넓은 것보다는 중음역대의 소리가 좋아서 소리의 온도감을 표현하는데 좋은 시스템에서 더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오디오 시스템이 이런 조건을 만족할까요?

우퍼의 사이즈가 10인치 이상인 풀레인지 유닛이나 2웨이 스피커에 진공관 앰프를 사용하면 위의 조건 중 거의 대부분을 만족시킵니다. 물론 최첨단 하이테크 기술로 무장해서 DSD 방식으로 녹음한 요즘 녹음이라면 요즘의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에 더 잘 어울리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명반이라고 꼽는 앨범들은 미샤 마이스키나 요요마의 앨범 정도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오래된 앨범이 많으니 그 시절의 오디오가 더 잘 어울리겠죠.

제 책이나 여러 다른 기고 글을 통해 제 인생의 마지막 오디오는 탄노이 모니터 블랙 유닛이 들어간 스피커와 그 스피커에 어울리는 앰프라고 밝혔습니다. 제가 쓴 책 때문에 미친 듯이 가격이 올라 이번 생에는 안 될 것 같고, 이번 생에 나라를 구한 다음에 다음 생을 노려야 할 것 같은데요. 바로 그런 빈티지 탄노이 스피커나 로더 TP-1A 같은 풀레인지 스피커가 첼로를 위한 스피커입니다.

그렇다면 "돈 없는 사람은 첼로 소리도 못 듣냐?" 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우리가 쓰는 PC용 스피커의 대부분은 풀레인지 스피커입니다. 적당한 컴퓨터에 D/A 컨버터 하나만 달아도 누군가에게는 인생 첼로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첼로라는 악기의 소리입니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