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코텍이 필요없는 음악, Tool [10,000 Days]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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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코텍이 필요없는 음악, Tool [10,000 Days] (2006)

2020.12.10
Special

별도의 코텍이 필요없는 음악, Tool [10,000 Days] (2006)

정확하게 기억한다. 2006년 8월 15일이었다. 광복절을 맞이해 나는 친한 형과 잠실로 향했다. 그 이름도 위대한, 메탈리카(Metallica)의 내한공연을 보러 가기 위함이었다. 내가 누군가. 이후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방송에 출연해 잊히지 않을 명언을 남긴 바로 그 배순탁 아닌가. 당시 방송에서 나는 "누군가 나에게 '음악이란 무엇입니까?' 물어보면 형이상학적으로 포장하는 허세 따위 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처럼 대답한다고 강조했다. "음악은 메탈리카죠."

글ㅣ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사진 출처ㅣ@toolmusic 인스타그램


Album

Tool [10,000 Days] (2006)

10,000 Days


그럼에도 중요한 태도가 하나 있다. 나는 메탈리카"만" 음악으로 치지 않는다는 거다. 이게 웬 말장난이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06년 8월 15일의 풍경은 그랬다. 메탈리카"만" 음악으로 인정해 상대방의 취향은 고려조차 하지 않는 인간들이 내 주변에 득실댔다. 기실 내가 이 공연에 목맨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메탈리카만큼이나 내가 애정하는 밴드 툴(Tool)이 오프닝을 장식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지금 툴이라는 글자를 보고 흥분했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내 친구가 될 자격 충분하다. 불행히도 8월 15일에는 내 친구가 될 수 있는 관객이 별로 없었다. 면전에서 툴이 끝내주는 라이브를 뿜어내고 있는데도 "메탈리카 빨리 나와"라면서 야유를 보냈다. 그렇다. 툴은 이런 밴드다. 아는 사람들은 열광하고, 모르는 사람은 끝까지 모를 확률이 높다. 요컨대 그들은 마니악한 밴드다.

야유 보낸 자들을 원망하진 않는다. 다만 그들의 태도를 조금은 탓하고 싶다. 툴은 극강의 라이브 실력으로 유명하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각각의 연주는 완벽했고, 밴드 하모니에 흠잡을 구석이라곤 없었다. 아니, 생각해보라. 천하의 메탈리카가 "아무나" 자신의 오프닝에 세우겠는가 말이다. 당시 툴은 통산 4집에 해당되는 [10 ,000 Days]를 막 발표한 상태였다. 이 음반은 전작인 [Lateralus](2001)와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매체와 팬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고, 25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 정도 성취를 거둔 밴드가 무대 위에서 그런 푸대접을 받은 건 전 세계를 통틀어 대한민국이 유일했을 것이다. 그 날의 목격자로서 이것은 추측 아닌 확신이다.

[Lateralus]와 [10,000 Days] 둘 중 뭘 택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장고 끝에 [10,000 Days]를 고른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이 음반이 그나마 좀 더 대중적인 만듦새를 지닌 까닭이다. 확실히 그렇다. 툴의 최고 걸작 투표를 하면 [Lateralus]가 정상에 오를 게 뻔하다. 이걸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10,000 Days]에는 이런 유의 음악을 선호하지 않는 팬이 듣더라도 매력을 느낄 곡이 가득하다. [Lateralus]와는 달리 별도의 코덱을 따로 설치하지 않아도 접속 가능한 음악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 넘실대는 카리스마로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어주는 1번 곡 'Vicarious'에 이어 바닥을 박박 갈면서 포복하듯 전진하는 'Jambi'의 연결구간이 압도적이다.

싱글로 단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The Pot'이 제일이다. 이 곡은 정말이지 어나더 레벨이다. 멜로디는 툴의 디스코그라피를 통틀어 가장 대중적인데 본연의 드라마틱한 기세를 조금도 잃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기어를 체인지하면서 험준한 산맥을 등반하듯 전진하는 4분 25초 이후의 구간이 빼어나다. 과연 "롤링 스톤"의 찬사 그대로 툴이라는 밴드는 "메탈 신에서 장인정신과 기술적 완성도 모두 비교불가"인 것이리라.

이 외에 툴의 음악적인 특성을 11분이라는 러닝 타임에 집대성한 싱글 'Rosetta Stoned'는 제목 그대로 툴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를 제공해준다. 그들의 음악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개 다음처럼 압축해 정리할 수 있다. "연주는 단단하고, 구성은 복잡하며, 주제는 현학적이다." 그들의 음악은 그래서 듣는 이에게 미답지로의 여행 비슷한 감각을 던져준다. 툴은 헤비메탈 역사상 가장 성공한 탐미주의 밴드이고, 듣는 이는 그들의 탐미를 탐미하는 데서 희열을 누린다.

이제 결론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역설이 존재한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나는 이 글의 첫 단락에서 툴의 음악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2006년의 경험을 묘사했다. 나처럼 메탈리카와 툴 모두의 팬이었던 공연장의 누군가도 무척 분노했을 것이다. 메탈리카의 현현을 요청하는 다수의 괴성에 완전히 묻혀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한데 툴 음악의 신봉자들 중 "일부"는 거꾸로 "툴의 음악이야말로 진짜"라고 주장하곤 한다. 이런 측면에서 툴을 둘러싼 열광에는 록 우월주의와 진정성에 대한 찬미가 교묘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아무런 근거도 없는, 헛된 믿음이다. 뭐, 누군가 진정성 탐지기 개발에 극적으로 성공하면 또 혹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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