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와 비교해보는 '하프시코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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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와 비교해보는 '하프시코드'의 매력

2020.12.16
Special

피아노와 비교해보는 '하프시코드'의 매력

현미 선생님이 부른 '밤안개'와 Eddie Higgins Quartet이 연주한 'It's A Lonesome Old Town'은 "표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트로 부분이 똑같습니다. 물론 가사가 나오는 부분부터는 살짝 달라지긴 하지만요.

반면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사운드트랙 앨범 중에서 Sting이 부른 'It's A Lonesome Old Town'은 앞의 두 곡과 비교해보면 "같은 노래 맞나?" 싶을 정도로 느낌이 다릅니다.

*Sting의 'It`s A Lonesome Old Town'은 현재 국내 서비스가 불가합니다.

이처럼 제목은 다르지만 거의 같은 곡처럼 느껴지는 곡도 있고, 같은 제목이지만 다른 곡처럼 느껴지는 곡들도 있습니다.

악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비슷하게 생긴 악기는 비슷한 소리를 냅니다. 지난주에도 이야기했지만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생김새도 비슷하고 울림통의 모양이나 크기도 비슷해서 비슷한 음색의 비슷한 소리를 냅니다. 첼로는 줄의 굵기와 튜팅의 텐션 그리고 울림통의 크기 때문에 느낌이 조금 달라지는 것이고요. 그에 비해 오늘 소개할 악기는 피아노와 정말 비슷하게 생겼지만 음색은 전혀 다릅니다. 마치 Eddie Higgins Quartet의 'It's A Lonesome Old Town'과 Sting의 그것처럼요. 오늘의 주인공은 하프시코드입니다.

하프시코드를 실물로 보신 분은 많지 않으실 겁니다. 실제로 피아노처럼 구하기 쉬운 악기도 아니고요. 그런데 실물 하프시코드를 보면 피아노의 건반 색이 반대로 배치되었고(요즘에는 피아노처럼 아래 건반이 흰색인 하프시코드도 많습니다. 필자 주), 2단으로 구성된 것(반드시 2단으로 구성되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1단이나 3단 하프시코드도 있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하프시코드는 2단이라는 의미입니다. 필자 주) 외에는 피아노와 별 다를 것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건반 뚜껑까지 덮어 놓으면 마치 연습용으로 제작한 작은 피아노처럼 피아노와 정말 비슷하게 생겼죠. 하지만 건반 하나만 눌러봐도 두 악기는 완전히 다른 악기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음색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인데요.

생물을 "종-속-과-목-강-문-계"로 분류하듯이 악기를 분류한다면 피아노는 타현악기에 해당됩니다. "피아노는 건반악기 아닌가요?" 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네, 건반 악기도 맞습니다. 건반을 누르면 건반에 연결된 해머가 그 건반에 해당되는 줄을 때려서 소리를 내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피아노는 유건타현악기(건반이 있으면서 줄을 때려 소리를 내는 악기라는 의미. 필자 주)입니다. 여기까지는 많은 분이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다면 피아노와 비슷하게 생긴 하프시코드도 같은 원리일까요? 아니요, 같은 원리라면 제가 굳이 이번 주에 하프시코드에 관한 글을 쓰지 않았겠죠. 이 둘은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음색은 전혀 다릅니다. 소리를 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하프시코드는 건반을 누르면 건반에 해당되는 피크(plectrum)가 건반에 해당되는 줄을 뜯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실제 모습은 아래 그림처럼 생겼고요.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피아노는 솜뭉치 해머로 때려 소리를 내는데 비해 하프시코드는 피크로 줄을 뜯는 구조이기에 음색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피아노가 부드러우면서도 정적이고 울림이 적은 소리라면 하프시코드는 찰랑거리고, 피아노보다 가벼우며, 훨씬 더 울림이 많은 소리입니다. 음색만 놓고 본다면 통기타나 일렉트릭 기타를 나일론 피크가 아닌 스테인리스 피크로 연주하는 느낌? 아니면 거문고를 연주할 때의 느낌? 적어도 피아노보다는 기타 소리에 훨씬 가깝습니다. 그리고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피아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리가 예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리가 좋은데 왜 하프시코드는 일반인이 보기 힘든 악기가 되었을까요? 하프시코드는 연주에 두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가장 치명적인 약점으로 볼륨 조절이 안 되고, 그 다음으로 볼륨이 작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피아노는 세게 치면 큰 소리가 나고 살살 치면 작은 소리가 납니다. 이는 비단 피아노뿐만이 아니라 여러분이 아는 대부분의 악기가 다 이렇습니다.

그런데 하프시코드는 세게 치나 살살 치나 볼륨이 같습니다. 즉 하프시코드로는 셈여림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셈여림을 표현할 수 없다는 건 리스트나 라흐마니노프 그리고 쇼팽의 곡은 연주할 수 없다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즉 연주할 수 있는 작곡가가 바흐, 헨델, 비발디, 여기에 스카를라티 정도로 한정됩니다. 또한 그렇기에 피아노 연주하는 것만 보다가 하프시코드 연주를 보면 연주를 하는 건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유자 왕처럼 액션이 화려한 연주자의 연주를 보다가 하프시코드 연주를 보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로 피아노에 비해 볼륨이 압도적으로 작습니다. 대부분의 공연장에서 사용하는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나 뵈젠도르퍼의 그랜드 피아노는 굳이 마이크를 설치하지 않아도 웬만한 공연장에서 연주가 가능하지만 하프시코드는 마이크를 설치하지 않고는 공연이 불가능한 악기이고, 모차르트나 베토벤, 슈베르트가 살았던 시절에는 마이크가 없었습니다. 즉 그들은 하프시코드의 좋은 대체재인 피아노가 있었고 굳이 공연이 불가능한 하프시코드 곡을 쓸 이유가 없었으니 자연스럽게 하프시코드는 도태되어 갈 수밖에 없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크 시절의 음악에는 하프시코드가 빠지면 짜장면 없는 중국집 같은 느낌입니다. 그중에서도 바흐와 스카를라티의 작품에는 빠질 수 없는 악기이죠. 특히 Pierre Hantai가 하프시코드로 연주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어보시면 글렌 굴드의 연주가 최고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가치관이 흔들리는 걸 느낄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오디오 시스템에서 하프시코드 연주를 들으면 좋을까요?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프시코드의 소리는 높은 주파수의 배음이 아주 많은 소리이고, 바로 이런 소리를 – 정확히 말하자면 소리보다는 느낌 –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닛이 슈퍼트위터입니다. 본인의 스피커에 슈퍼트위터가 달려있다면 지금 바로 하프시코드 연주 음악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내 스피커가 이렇게 좋은 스피커였어?"라고 깜짝 놀라실지도 모릅니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