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주관적인 취향으로 고른 2020년 재즈 앨범 8장

매니아의 음악 서재

완전히 주관적인 취향으로 고른 2020년 재즈 앨범 8장

2020.12.21
Special

완전히 주관적인 취향으로 고른 2020년 재즈 앨범 8장

어느덧 2020년도 저물어 갑니다. 코로나로 한 해가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 지경입니다. 객관적인 통계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2020년 재즈 앨범 발매가 양적으로 줄어든 것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앨범을 내고도 공연과 홍보활동을 못 할 상황이었기 때문에 많은 음반사들, 아티스트들이 녹음을 해놓고도 음반 발매를 미루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몇몇 재즈 앨범들은 재즈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심지어 경이로운 체험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어쩌면 음악이 더욱 갈급했던 시간이었기에 이러한 음반들이 더욱 반갑고 소중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올해 이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보내는 칼럼에서는 2020년 재즈 앨범 가운데서 비록 주관적인 취향의 선택이지만 함께 듣고 싶은 음반 8장을 골라 봤습니다. 넉 장은 해외 뮤지션의 음반들, 그리고 나머지 넉 장은 국내 재즈 뮤지션들의 음반들입니다.


John Scofield [Swallow Tales]

1977년 데뷔 앨범을 발표한 이래로 40장이 넘는 자신의 앨범을 발표한 John Scofield이지만 올해 발표한 [Swallow Tales]는 그중에서도 특별한 앨범입니다. 버클리 음대 시절부터 스승으로 만나 50년 동안 인연을 맺어온 Steve Swallow의 작품들만을 담은 이 앨범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을뿐더러 음악의 성과 역시 탁월했기 때문입니다. Scofield의 말대로 이 앨범에 실린 Swallow의 곡들은 학창시절부터 그가 꾸준히 연주해온 곡이었으며 Scofield, Swallow와 함께 트리오 편성으로 늘 연주해온 드러머 Bill Stewart는 이 곡들을 한두 번의 리허설로 완전히 습득했습니다. 그래서 이들 트리오는 Swallow 작품의 독특한 매력을 여유있게 십분 들려줍니다. Swallow의 작품은 그의 곡 'Awful Coffee'라는 제목처럼 달콤하거나 친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씁쓸하게 밀려오는 은은한 맛이 감상자를 사로잡습니다. 그래서 이 앨범은 반복해서 다시 듣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음반입니다. 저는 Scofield의 여러 앨범 가운데서 이 앨범을 몇 손가락 안에 꼽게 되었습니다.

Immanuel Wilkins [Omega]

코로나로 스산했던 한 해였지만 Immanuel Wilkins라는 혜성 같은 신인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재즈계의 수확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97년생, 그러니까 2020년 기준으로 23세의 Wilkins는 이미 기량적으로 탁월한 색소포니스트일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현실을 소화하고 그것을 예술적으로 표현해 낼 줄 아는 안목과 기량을 갖췄다는 점에서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스스로 밝혔듯이 그는 2014년 미주리주 퍼거슨시 경찰이 18세의 흑인 소년의 목숨을 총격으로 빼앗는 현실을 목격했고 그것이 당시로부터 96년 전이었던 1918년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흑인 여성 매리 터너 린치 살해사건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됩니다. 그는 이 사실을 "미국적 전통"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음악을 통해 마냥 분노하지 않습니다. 이 참담하고 어두운 현실을 음악을 통해 슬프게, 하지만 격렬하게 전달합니다. 그리고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20대의 젊은 재즈 사중주단이 남긴 이 앨범은 "Black Lives Matter"란 구호가 퍼져나갔던 2020년 미국의 가장 생생한 음악적 기록 중 하나입니다.

Charles Lloyd [8: Kindred Spirit]

2018년 3월 15일 샌타바버라시에 있는 로베로 극장. 색소폰의 거장 Charles Lloyd는 이날 자신의 여든 번째 생일을 자축하는 공연을 이 한 장의 음반에 담았습니다. Gerald Clayton(피아노), Reuben Rogers(베이스), Eric Harland(드럼)로 짜인 화려한 그의 사중주단에 기타리스트 Julian Lage까지 가세한 이 라이브 앨범은 기존에 Lloyd가 남긴 여러 장의 탁월한 실황 음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팬이라면 결코 놓칠 수 없는 또 한 장의 걸작입니다.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음색의 Lloyd의 연주는 더욱 확장된 즉흥의 경지를 들려주었으며 탁월한 멤버들이 들려주는 치밀한 상호작용은 재즈의 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Keith Jarrett, Michel Petrucciani 등 최고의 연주자들을 발굴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즈의 주류에서 벗어나 활동해 온 Lloyd는 이 한 장의 음반으로 재즈 역사에서 그의 가치를 다시 평가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Pat Metheny [From This Place]

이 앨범은 Pat Metheny가 아주 오랜만에 자신의 "본령"으로 돌아온 작품입니다. [The Orchestrion Project](2013년)에서 보자면 7년 만의 일이고 [The Way Up](2005)에서 보자면 무려 15년 만의 복귀입니다. 다시 말해 Metheny 사운드의 이상은 오케스트라 사운드입니다. 그는 1978년 Pat Metheny Group을 결성하면서부터 소규모 밴드를 통해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추구해 왔습니다. 이 사운드는 갈수록 진화해 갔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과도한 완벽주의를 추구함으로써 재즈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연주자 각각의 자발성, 즉흥성을 너무 제약하는 상황에 이릅니다. PMG의 해산 후 그가 프로그래밍 악기들과 홀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리온 프로젝트"를 추구한 것도 완벽성의 추구가 낳은 결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 선보인 새로운 사중주단과 오케스트라의 협연은 그러한 강박관념이 사라진, 훨씬 자연스럽게 음악의 완급을 들려주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Metheny 자신의 작곡과 편곡의 변화에서 온 결과입니다. 오래전 Pat Metheny의 팬이라면 틀림없이 이번 앨범을 반길 것입니다.

oZo Trio [물거품]

첫 앨범 [우물]을 발표한 뒤 3년 만에 내놓은 오조 트리오의 앨범은 재즈에 입장에서 보자면 훨씬 더 경계를 넘어선 파격적인 면모를 보입니다. 앨범의 첫 곡인 'Code M'이 이 점을 대변하는데 연주가 시작되고 나서 대략 3분이 넘을 때까지 화성은 제자리걸음을 하며 마치 베이스는 모스 부호처럼 반복적인 신호만을 송출합니다. 그 긴장이 끝나면 음악은 세 사람의 즉흥적인 상호작용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이 전체적인 구성은 연주자들의 즉흥적인 팀워크에 크게 의존합니다. 그럼에도 음악은 방만하게 흩어지지 않고 단단한 구성을 유지합니다. 그것은 리더인 오지호(기타), 양영호(베이스), 김정훈(드럼)의 개인적인 기량과 음악에 대한 구체적이며 공통적인 이미지가 정립되어 있지 않다면 아마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결국 오조 트리오는 팀으로서의 "색채"를 갖고 있으며 그것은 매우 독보적입니다. 이는 어느 음악에서든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 앞으로 이들의 음악을 더욱 기대하게 만듭니다.

Avant [Avant]

올해 새롭게 결성된 밴드 "아방"은 송남현(베이스)을 주축으로 이미 여러 장의 앨범을 발표한 바 있는 이한얼(피아노), 조규원(드럼)으로 짜인 트리오입니다. 오조 트리오가 그렇듯이 이들 역시 기존 재즈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데 여기에는 인위적이며 추상적인 이론이 작용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취향, 그들 세대의 음악적 환경이 자연스럽게 베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송남현이 밝힌 대로 'Last of Us'는 새로운 게임에서 영감을 얻었고 'Everything'은 검정치마의 노래를 이들의 재즈 스타일로 새롭게 해석한 것인데 이러한 모습들에서 Brad Mehldau Trio의 '90년대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송남현이 곡을 쓴 'Season'에서는 게스트 색소포니스트 박기훈의 매력적인 발라드를 듣게 되지만 이어지는 'Jazz'에서는 일반적인 재즈에서는 전혀 들을 수 없는 거친 전기 사운드의 굉음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이 음악은 무척이나 즉흥적이란 점에서 과거 E.S.T.의 음악처럼 새로운 재즈의 풍경을 선사합니다. 디지털 음원으로는 네 곡만이 공개되었으나 CD에는 또 다른 일곱 개의 즉흥곡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김수경 [Lilac Hill]

음반으로 처음 만난 피아니스트 김수경이 이끄는 퀸텟의 연주는 우선 그 기량이 듣는이를 놀라게 합니다. 정확한 정보는 없으나 이들은 모두 뉴욕에서 함께 공부한 동료들로 생각되는데 음반을 듣자마자 현재 뉴욕 재즈의 언어를 잘 습득한 젊은 연주자들이란 인상이 금세 다가옵니다. Ethan Helm(알토 색소폰), 이주봉(기타), 김수경(피아노), Luca Alemanno(베이스), 김종국(드럼) 이렇게 다섯 사람의 이름 중 그 누구의 이름을 앞으로 해외 유명 밴드 안에서 발견한다고 해도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 매력적인 것은 김수경의 곡들입니다. 이 곡들은 학교에서 금방 나온 논문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한 젊은 음악인의 내면의 감정(고독 그리고 설렘?)을 조심스럽게 내보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첫 음반의 특권일지도 모릅니다. 훗날 모든 것이 익숙해지면 사라질 수도 있는. 그래서 이 음반은 소중하고 매력적인 데뷔 앨범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김오키 [Yun Hyong-Keun]

이젠 한국 재즈의 대표적인 아방가르드 재즈 색소포니스트로 자리 잡은 김오키의 최근작은 뜻밖에도 한국 단색화의 명인 윤형근(1928~2007)의 작품을 음악으로 옮겨 놓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음악에서 김오키에게 도발적이거나 키치스러운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는 그 어떤 허세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진정성의 결과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김오키는 베이스클라리넷 독주로 혹은 피아노(진수영), 더블베이스(정수민)와의 이중주로 윤형근 화백 특유의 암갈색, 군청색 그리고 그 어두운 빛깔 뒤에서 번져 나오는 후광을 그려냅니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소리로 표현한 음악들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이처럼 솔직하고 담담한 작품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아울러 윤형근 화백의 그림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은 김오키와 같은 한국의 음악인 아니면 불가능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것 같은 무위의 자연스러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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