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Piotr Anderszewski가 연주하는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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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Piotr Anderszewski가 연주하는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2021.02.17
Special

피아니스트 Piotr Anderszewski가 연주하는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선명하고 정교한 피아니즘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폴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 Piotr Anderszewski(표트르 안데르체프스키)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으로 우리에게 찾아왔다.

(글| 김경수 (음악칼럼니스트))


1. Piotr Anderszewski (표트르 안데르체프스키)

안데르체프스키라고 하면 많은 음악 애호가들의 기억 속에 1990년 리즈 음악 콩쿠르의 준결승 무대에서 있었던 사건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피아니스트로 떠오를 것이다. 그는 바르샤바 음악원 재학 시절 21살의 나이로 리즈 콩쿠르에 참여한다. 준결승까지 진출한 그는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을 연주한 뒤 베베른의 [변주곡]을 연주할 예정이었지만 연습 때만큼 충분히 잘 연주할 수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무대를 그냥 내려왔다. 당시 대회의 우승은 포르투갈 출신의 피아니스트 Artur Pizarro(아르투르 피사로)에게 돌아갔는데 이 대회에서 Lars Vogt(라르스 보그트)가 2위, Eric Le Sage(에릭 르 사쥬)가 3위에 입상했으며, 우리나라의 백혜선이 5위로 입선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대회의 우승자보다 안데르체프스키의 이름이 더 유명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가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그의 대범한 행동뿐만 아니라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완벽주의에 가까운 예술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사람들에 크게 각인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리즈 콩쿠르의 사건이 있은 지 6개월 뒤에 런던의 위그모어홀에서 데뷔 공연을 가지면서 이후 본격적인 피아니스트로 활동한다. 당시 가디언지는 그의 연주를 "영감이 깃든 화려함"이라고 평했다. 바르샤바 음악원과 잘츠부르크 음악원을 졸업한 안데르체프스키는 나중에 Murray Perahia(머레이 페라이어)와 Fou Ts'ong(푸총), Leon Fleisher(레온 프라이셔) 등에게 개인 레슨을 받았다.

음악 애호가들의 인지도에 비해 안데르체프스키는 그리 많은 앨범 활동을 하고 있는 아티스트는 아니다. 그가 실질적으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각인된 것은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 앨범을 발매한 뒤부터라고 할 수 있다. 2000년 버진 레코드와 계약한 안데르체프스키는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을 녹음해 발매한다. 이 앨범으로 그는 에코 클래식 상을 비롯해 여러 음반상을 수상했으며, 이 녹음 과정은 여러 음악가들의 다큐 필름을 제작했던 영화감독 Bruno Monsaingeon(브뤼노 몽생종)에 의해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몽생종은 이후 안데르체프스키에 대한 또 다른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2.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평균율"이란 서양음악에서 장단음계의 음정을 12개로 균등하게 나누는 방법으로, 악기를 조율하는 방법을 의미하기도 한다. 음률은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8음계로 나뉘었는데, 정밀한 수학적 계산에 의해 음정과 음정 간의 비율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인물이 바로 천재적인 수학자 피타고라스였다. 이런 피타고라스의 조율법을 순정률이라고 한다. 16세기 이후 순정률이 지닌 반음계 사이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평균율이 탄생하게 된다. 수학적이고 예술적인 이 결과물은 바흐의 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바흐는 평균율의 원리에 따라 두 권의 모음집을 작곡했는데, 전주곡과 푸가가 한 쌍을 이루는 48곡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이다. 이 두 권의 모음집에 포함된 방대한 곡들은 바흐가 젊은 연주자들이 연주의 기교를 배우고 다듬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으로, 그래서 바흐의 평균율을 흔히 "건반악기의 구약성서"에 비유한다.

[제1권]은 바흐가 괴텐의 궁정에 있었던 1722년경에 완성되었으며, [제2권]은 그로부터 20년 뒤 라이프치히 시절인 1740년경에 완성되었다. 이 작품들의 출판은 그의 사후인 1801년에 여러 출판사에 의해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 한 명이었던 짐록은 당시 광고 문구에 "최고의 대위법 교본이자 독일 예술의 걸작"이라고 소개했다. 이후 30년 동안 20차례 이상 출판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바흐의 평균율은 당시 큰 인기를 얻었던 것이 틀림이 없다. 실제로 모차르트의 경우 [제2권]의 4성부 푸가들을 가지고 '현악 사중주(K.404a, K.405)'로 편곡하기도 했으며, 베토벤 또한 살롱 연주회에서 자주 연주하곤 했다. 바흐 부흥이 일어났던 낭만주의 시대에는 슈만이 바흐의 평균율을 바탕으로 '네 개의 푸가(Op.72)'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작곡하기도 했는데, 그는 편지에서 바흐의 평균율 곡집을 "나의 문법이자 최고의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주의 활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슈바이처는 뛰어난 오르간 연주자이기도 했는데 그는 매일 아침 바흐의 평균율을 연주했다고 하며 그는 이 작품을 가리켜 "음악의 가장 위대한 사건들 가운데 하나이자 바흐 음악언어의 사전"이라고도 했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2권]은 [제1권]을 완성하고 20년이 지난 뒤에 만든 것으로, 당시 유행하던 양식을 이용한 것이 큰 특징이다. 구성면에서 [제1권]과 [제2권]의 가장 큰 차이점은 2권의 전주곡들 중 상당수는 소나타 형식의 초기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순환 2부 구조로 되어 있거나 소나타 형식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바흐가 당시에 유행하던 양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제1권]에서는 같은 형식이 마지막 곡인 B단조에서만 나타난다. 그 외에도 이전의 양식과 새로운 스타일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는데('전주곡 21번, 23번'), 바흐 자신의 초기 작품들과 이전 시대 작곡가들의 작품에서 사용되었던 과거의 형식과 당시에 새롭게 유행하던 소나타 형식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제2권]의 특징이다.

3. 안데르체프스키의 평균율

지금까지 안데르체프스키가 선보인 바흐 레퍼토리로는 파르티타와 영국 모음곡, 프랑스 모음곡을 연주한 앨범이 있다. 한 가지 특징적인 점은 안데르체프스키는 음악 애호가들이 좋아할 만한 전곡 연주를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형적이고 이어지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단편적이고 순서도 자신의 편의에 맞춰 뒤바꾼 프로그램으로 앨범을 내놓고 있다. 이번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에서도 이런 특징은 또다시 반복되는데, 일반적인 연주자들이 [평균율의 제1권]부터 순서대로 녹음을 하는 반면 안데르체프스키는 [제2권]으로 바로 넘어갔다. 그리고 작품의 순서도 자신이 연주하기 편하고 자신만의 흐름에 맞는 순서로 재구성해서 바흐의 작품들을 들려주고 있다.

그는 평소 바흐의 평균율을 순서대로 연주하는 것에서 큰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2시간 이상 반음계 순으로 이어지는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은 다르게 연주하고 싶고 이것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논리적으로는 반음계적 순서로 연주를 하는 것이 연습곡의 목적으로는 맞지만 연주회용으로는 맞지 않으며, 대신 감성의 흐름을 맞게 새롭게 구성한다면 작품이 지닌 뛰어난 구성력과 놀라운 표현력은 폭발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안데르체프스키는 이번 앨범에서 [평균율 제2권]의 전곡이 아닌 12개의 전주곡과 푸가, 즉 모두 48곡으로 이루어진 제2권 가운데 그 절반인 24곡만을 골라 자신의 연주 프로그램으로 삼았다. 처음에 그는 6개의 전주곡과 푸가를 골라 연주회 프로그램에 포함시켰는데, 이후 여러 차례 공연을 통해 이런 구성에 대한 만족과 확신이 들었고 이후 6개의 전주곡과 푸가를 추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고른 이유에 대해서는 어릴 때부터 [제2권]이 항상 자신에게 친숙한 곡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바흐가 작곡할 당시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잘 짜인 구성으로 [제2권]을 완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자유롭게 순서를 바꾸더라도 마음이 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안데르체프스키는 건반악기의 구약성서 가운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골라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가지고 서사적인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그의 평균율 연주를 들으면 많은 연주자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기술적인 표현만을 강조하는 기계적인 해석과는 무척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로는 마치 쇼팽의 [연습곡]이나 [야상곡]과 같이, 때로는 차이콥스키의 [사계]와 같이, 때로는 슈만의 여러 소품들에서 느껴지는 낭만적인 감성이 풍부하게 전해진다. 이렇게 한 곡씩 이어서 듣게 되면 안데르체프스키가 말하고자 하는 하나의 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그려지며 우리를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로 인도하게 된다. 우리는 왜 지금까지 바흐의 이 위대한 작품을 기계적인 순서대로 들어야만 했던 것일까? 이 오래된 도그마에서 해방시킨 안데르체프스키의 이번 앨범 속 연주는 그야말로 찬양받기에 마땅하다.


Album

Piotr Anderszewski [Bach : Well-Tempered Clavier Book 2 (Excerpts)]

Bach : Well-Tempered Clavier Book 2 (Excerp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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