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상상하지 못한다 - Christian Loffler의 [Parall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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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상상하지 못한다 - Christian Loffler의 [Parallels]

2021.02.23
Special

인류는 상상하지 못한다 - Christian Loffler의 [Parallels]

역사를 바꾼 몇몇 발명을 생각해봅니다. 바퀴, 종이, 증기기관... 위대한 발명의 공통점은 그 이전을 상상하기 어렵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에어컨 없는 삶이 과연 가능이나 할까요?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겠지만 역시 과거를 상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축음기의 발명 또한 인류의 역사를 바꾼 발명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소리는 휘발되는 현상이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위대한 연설과 음악의 운명 또한 그래서 일회성에 그칠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축음기의 발명과 함께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전설 속의 인물로 여겨지는 Leo Tolstoy(레프 톨스토이)의 목소리가 실제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요? 축음기를 시작으로 발전한 녹음 기술은 인류를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1. 과거의 소리를 디지털로 복원하다 - 셸락 프로젝트

인간이 목소리는 물론, 음악까지도 녹음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음반은 탄생했습니다. Deutsche Grammophon(도이치 그라모폰)은 음반의 가능성에 빠르게 눈 뜬 회사였습니다. 1898년 창립 이래로 도이치 그라모폰은 꾸준히 거장들의 연주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담아오며 고전음악의 자존심이라는 평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18년, 도이치 그라모폰은 쉼 없이 달려온 길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바로 과거 녹음의 디지털화 작업이었죠. 창립 초기, 도이치 그라모폰은 금속제 원반인 셸락 디스크에 녹음 정보를 기록했습니다. 1930년대까지 이용되던 셸락 디스크는 2차 세계대전 등으로 다수가 파손되었지만 운 좋게 보존된 몇몇 레코딩은 여전히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도이치 그라모폰은 구글 아트 앤드 컬처와 함께 과거 녹음되었던 셸락 디스크를 디지털화하는 공동 복원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비록 디스크 자체에 남아 있는 잡음을 완전하게 제거하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100년 전 녹음을 영원히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은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1930년대의 베를린을 상상했다 - Christian Loffler의 [Parallels]

그런데 도이치 그라모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우리 시대의 시선으로 과거를 재조명하는 시간 또한 가져야 한다는 마음은 이내 음반의 형태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도이치 그라모폰이 이번에 발매한 앨범, [Parallels]는 말 그대로 과거와 현재를 평행의 상태로 두는 음반입니다. 앨범 [Parallels]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와의 만남이라는 진부한 수사가 필요합니다. 이번 작업을 맡은 독일 출신의 DJ이자 프로듀서인 Christian Loffler(크리스티안 뢰플러)는 도이치 그라모폰이 준비한 과거 음원 위에 자신의 음악을 쌓았습니다. 이번 작업의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 뢰플러는 먼저 1930년대의 베를린으로 간 자신을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콘서트홀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작품을 들었죠. 상상만으로는 많은 것이 부족하기에 뢰플러는 당시의 사진과 녹음 기술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확보해 상상의 부족분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확신을 과거의 투영해 일련의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먼저 앨범의 타이틀곡인 'Dir Jehova'를 들어보겠습니다. 본래 장조로 구성된 밝고 희망찬 Helmut Walcha(헬무트 발하)의 오르간과 Thomanerchor Leipzig(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의 목소리는 뢰플러의 음악을 입고 계시적인 분위기를 띄게 됩니다.

앨범에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작업된 바그너의 'Parsifal'과 스메타나의 'Moldau', 그리고 쇼팽과 비제의 작품이 담겨 있습니다. 과거 유산에 기죽지 않는 뢰플러의 태도가 인상적이지요.

앨범의 후반부는 선발매되었던 EP에 수록된 4곡으로 채워졌습니다. 제목에서 넌지시 알려주듯 'Pastoral', 'Fate', 'Freiyheit', 'Funebre'는 모두 베토벤의 교향곡에서 음원을 가지고 온 작품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베토벤의 작품을 잘 안다 할지라도 뢰플러의 작업에서 베토벤을 느끼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귀를 더욱 기울여 과거를 들어보라는 메시지의 전달일까요? 그렇게 마지막 트랙 'Funebre'에서 [교향곡 3번 "영웅"]의 2악장 '장송 행진곡'을 겨우 들어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이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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