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여러 개의 삶을 살 듯 다양한 활동을 동시에 펼쳤던 열정적 연주자, Chick Corea (1941.06.12 ~ 2021.02.09)

장르 인사이드

한 번에 여러 개의 삶을 살 듯 다양한 활동을 동시에 펼쳤던 열정적 연주자, Chick Corea (1941.06.12 ~ 2021.02.09)

2021.03.02
Special

한 번에 여러 개의 삶을 살 듯 다양한 활동을 동시에 펼쳤던 열정적 연주자, Chick Corea (1941.06.12 ~ 2021.02.09)

지난 2월 9일 피아노 연주자 Chick Corea(칙 코리아)가 세상을 떠났다. 너무나도 뜻밖의 소식이었다. 지난해 말 솔로 앨범 [Plays]를 발매할 정도로 꾸준한 활동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매년 공연을 이어가고 새로운 앨범을 녹음했다. 아플 시간도 없겠다 싶을 정도로 바쁜 삶이었다. 또한 그는 이러한 바쁜 일정을 즐겼다. 그에게 연주는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심지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든 일정을 중지하고 집에 머무를 때도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며 실시간 연주를 펼치기도 했다. 그것도 약 한 달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 갑작스레 발견된 희귀 암이 사망 원인이었다지만 실질적으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2020년 이전처럼 세계 곳곳을 돌며 매일 같이 연주하고 새로운 앨범을 녹음하며 살았다면 암에 걸리지 않았을 것만 같다.

본명이 Armando Anthony Corea(아르만도 앤서니 코리아)로 1941년 6월 12일 미국 매사추세츠의 첼시에서 태어난 칙 코리아는 1960년대 초반부터 Mongo Santamaria(몽고 산타마리아), Hubert Laws(휴버트 로우), Blue Mitchell(블루 미첼), Herbie Mann(허비 맨) 같은 유명 연주자의 사이드 맨으로 활동하며 두각을 보였다. 그 결과 1966년 첫 리더 앨범을 녹음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앨범이자 첫 번째 트리오 앨범인 [Now He Sings, Now He Sobs]을 통해 재즈의 미래를 책임질 연주자로 주목받았다. 이 앨범에서 그는 기존 하드 밥을 보다 현대화한 연주를 펼쳤다. 그중 자작곡 'Windows'같은 곡은 지금 들어도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앨범 이후 그는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음악적 삶을 개척했다. 보통의 연주자가 하나의 스타일을 확립하고 이를 다듬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칙 코리아는 하나가 아닌 여러 스타일을 동시에 추구했다. 먼저 그는 당시 전자 악기와 록을 수용해 퓨전 재즈로 나아가려 했던 Miles Davis's Band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에 합류해 키보드를 연주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퓨전 재즈 그룹 Return To Forever(리턴투포에버)를 결성했다. 그런데 이 그룹은 록처럼 거칠고 강렬한 질감을 추구했던 다른 퓨전 재즈 밴드와 달리 라틴적 질감으로 부드럽고 화사했다.

리턴투포에버의 두 번째 앨범 [Light As a Feather(1973)]에 담긴 'Spain'을 들어보자. 스페인 작곡가 Joaquin Rodrigo(요아킨 로드리고)의 'Concierto de Aranjuez'를 전반부에 차용한 이 곡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전자 사운드 속에서 라틴의 정열을 유감 없이 드러낸다. 영롱한 칙 코리아의 키보드, Flora Purim(플로라 푸림)의 허밍, 나비처럼 유영하는 Joe Farrell(조 패럴)의 플루트의 숨 막히는 어울림이 그대로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을 그리게 한다.

리턴투포에버는 최고의 퓨전 재즈 그룹으로 높은 인기를 얻으며 1970년대를 장식했다. 그리고 2000년대에 잠시 재결성 되어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다. 리턴투포에버가 높은 인기를 얻는 순간에도 칙 코리아는 다른 음악적 욕구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룹 활동과 별도로 어쿠스틱 피아노 연주 활동을 병행했다. 비브라폰 연주자 Gary Burton(개리 버튼)과의 듀오 활동은 그중 단연코 빛났다. 그와 개리 버튼은 듀오 연주의 기본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각각 비브라폰과 피아노를 연주했지만 마치 한 사람이 하는 것처럼 완벽하게 어울렸다.

리턴투포에버의 앨범 [Light As A Feather]와 같은 해에 발매된 [Crystal Silence]의 타이틀곡을 들어보자. 피아노의 투명함과 비브라폰의 영롱함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신비하기까지 한 음악은 그대로 수정처럼 빛나는 침묵을 느끼게 한다.

개리 버튼 외에도 칙 코리아는 평생에 걸쳐 Herbie Hancock(허비 행콕), Friedrich Gulda (프리드리히 굴다), Nicolas Economou(니콜라스 이코노모), Hiromi(히로미), Stefano Bollani(스테파노 볼라니) 등의 피아노 연주자들, 플루트 연주자 Steve Kujala(스티브 쿠얄라), 밴조 연주자 Bela Fleck(벨라 플랙), 보컬 Bobby McFerrin(바비 맥퍼린) 등과 듀오 활동을 했다. 그 가운데 2010년 이탈리아 움브리아 재즈 페스티벌 공연을 담고 있는 스테파노 볼라니와의 듀오 앨범 [Orvieto]를 들어보자.

칙 코리아는 미국인이지만 이탈리아 혈통이다. (한국-코리아-과는 상관없다. ㅎ) 그래서 이탈리아 출신의 스테파노 볼라니와의 협연은 또 다른 라틴적 매력을 발산했다. 두 연주자는 수 많음 음을 부단히 누르며 즐거운 연주를 펼쳤다. 마치 쉴 새 없는 이야기로 웃기는 만담 듀오 같았다. 그중 'Armando's Rhumba'는 두 연주자의 어울림의 절정을 느낄 수 있다.

칙 코리아는 솔로 연주 활동 또한 매우 활발하게 했다. 그의 솔로 앨범들은 재즈의 즉흥성과 클래식적인 감각이 동시에 느껴지곤 했다.

1972년 4월에 가졌던 이틀간의 스튜디오 연주를 정리한 두 장의 앨범 [Piano Improvisations Vol.1], [Piano Improvisations Vol.2]가 대표적이다. 이 앨범에서 그의 연주는 스윙감 가득한 전통적인 피아노 솔로와는 달랐다. 때로는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고 때로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풀어내는 것 같았다. 그중 [Piano Improvisations Vol.1]에 담긴 'Song For Sally'를 들어보자. 긴장 속에 이어지는 연주에서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는 여정의 정서가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이 곡은 후에 개리 버튼에 의해 'Sea Journey'란 제목으로 다시 연주되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에도 퓨전 재즈 성향의 연주 또한 잊지 않고 선보였다. 정규 밴드를 결성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음악이 궁금하다 싶을 때 리턴투포에버나 일렉트릭 밴드를 근원에 둔 새로운 밴드 앨범을 발표하곤 했다.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결실을 맺지 못하긴 했지만 새로운 밴드를 결성해 이끌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2019년에 발매된 앨범 [Antidote]가 그 증거였다.

그는 이 앨범을 녹음하기 위해 The Spanish Heart Band(마이 스패니시 하트 밴드)를 결성했다. 1976년도 앨범 [My Spanish Heart]에서 이름을 가져온 이 밴드의 음악은 칙 코리아의 다른 어느 앨범보다 라틴적인 연주를 펼쳤다. 1976년에 이어 다시 연주한 'My Spanish Heart'를 들어보자 Ruben Blades(루벤 블래이드)의 서정적 보컬과 화려한 밴드 연주가 춤을 추듯 어우러지며 칙 코리아가 라틴 혈통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칙 코리아의 마지막 앨범 [Plays]는 솔로 앨범이었다. 지난해에 발매된 이 앨범은 2019년 공연을 정리한 것이었다.

2018년 내한 공연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듯이 칙 코리아가 말년에 펼친 솔로 공연은 자신의 음악을 정리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자신에게 영향을 준 클래식과 재즈 작곡가들의 곡과 자작곡을 연주하고 관객을 선정해 그 인상을 즉흥 연주로 표현하곤 했다. 앨범 [Plays]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모차르트, 스카를라티, 쇼팽 등의 클래식 곡과 Bill Evans(빌 에반스), Thelonious Monk(몽크)의 스탠더드 곡을 연주하는 한편 자작곡 'Children's Song'을 연주했다. 그리고 관객을 불러 연주로 초상화를 그리더니 아예 함께 연주하면서 정겨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가운데 스탠더드 곡 'Yesterday'를 들어보자. 예의 반짝이는 연주가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는 곡을 오늘의 추억을 쌓는 곡으로 바꾼다.

칙 코리아는 여러 갈래의 길을 앞에 두고 고민하는 대신 그 모든 길을 선택했다. 마치 어느 포지션이건 소화할 수 있는 축구 선수, 단거리와 마리톤은 물론 높이 뛰기와 창던지기까지 할 수 있는 육상 선수 같았다. 게다가 그 결과물 또한 훌륭했다. 그의 사망이 더욱 큰 상실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하나가 아닌 여러 방향으로 펼쳐졌던 그 모든 음악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 동시에 세상을 떠난 느낌이랄까? 물론 그가 남긴 음악은 영원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움 또한 영원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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