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은 어떻게 바다를 건넜을까?
K-POP은 어떻게 바다를 건넜을까?
대한민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인공들과
그들의 무대를 기록하기 위해 모인
"전설의 무대 - 아카이브K"
대망의 마지막 주제는
전 세계를 물들이고 있는
K-POP 이야기였습니다.
바다를 건넌 K-Pop Ⅰ
오늘날, K-POP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대중음악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여러분은 K-POP이 무엇인지
정의 내릴 수 있으신가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더라도
우린 이 질문에 대해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겠죠?
K-POP이란?
: 2010년 전후 세계 젊은이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한국 아이돌 음악을 말합니다.
K-POP 전에는 한류로
통용되던 한국 대중음악.
과연 그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요?
1997년 시청률 49%를
기록할 만큼 엄청난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당시 주인공이었던
안재욱은 드라마 인기와
함께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었는데요.
중국의 작은 위성방송에서
송출된 이 드라마의 인기가
커지면서 중국 전역까지
방영되게 되었고, 중국에도
안재욱 열풍이 불게 되죠.
이러한 인기 속에 2000년
베이징에서 열린 안재욱의
첫 콘서트에는 무려
1만 6천 명이라는 많은
팬들이 모이기도 했답니다.
뿐만 아니라 외국 연예인
최초로 중국 영어시험문제에
등장하는 등 안재욱은
중화권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최초의 한류 스타로,
한류의 초석을 다지게 되죠.
안재욱이 드라마로 인해
중화권 진출에 성공했다면,
전혀 다른 경로로 중화권에
진출한 가수가 있었으니,
바로 대만의 국민 가수로
활동했던 클론입니다!
98년 대만 가수 "유키"가
클론의 '도시탈출'을
리메이크하면서 클론의
노래가 대만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요.
번안곡이 대만에서 12주간
1위를 차지하면서
클론의 인기도 함께
높아지기 시작했죠.
뜨거운 인기로 대만 투어까지
개최하게 된 클론은
특유의 파워풀한 댄스와
신나는 노래로 대만을
사로잡았으며,
98년 대만 인터내셔널
차트 전체 1위 차지,
대만 정식 데뷔 후
40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하는 등 성과를 보였죠!
그리고 바다를 건넌 최초의
아이돌 그룹, NRG도 있습니다.
98년 북경에서 열린
한중 수교 6주년 기념 공연에
NRG가 국내 아이돌 최초로
참여하게 되면서 중국 미디어의
큰 관심을 받게 되는데요.
중국 최고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쾌락대본영"에 한국 가수
최초로 출연하는 등 NRG의
중국 진출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그들은 그렇게 한류 열풍을
일으킨 첫 아이돌이 되었답니다.
뒤를 이어 국내 인기의 절정이었던
H.O.T도 신인의 마음으로
대만으로 진출하게 되는데요.
팬덤이 없는 신인의 자세로
도전해 차근차근 중화권 내
인지도를 쌓아간 H.O.T.
이때 처음으로 중국에서
"한류"라는 신조어가 등장했고,
H.O.T는 중국에서 정식으로
유통된 최초의 한국 음반
발매까지 이르게 됩니다.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
격려 금일봉을 전달할 만큼
H.O.T의 인기는 남달랐으며,
단순한 가수를 넘어
외교사절단의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게 되죠.
H.O.T는 음악뿐만 아니라
춤, 패션 등 모든 것을
유행시키며 새로운
문화 현상을 주도했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죠!
이렇게 중화권 내 불었던
한류 바람은 당시 세계 2위의
시장이었던 일본으로 번지게 되는데요.
그 중심에 치밀한 전략으로
일본 현지화에 성공한
최초의 아티스트 BoA가 있습니다.
보아의 일본 점령기는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최대 장벽인 언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아나운서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일본의 문화와 언어를
배웠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죠.
어린 나이에 일본에서직접 발로 뛰며 자신을알리기 시작한 BoA.하지만 BoA의 노력에도
초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던 중,
2002년 일본 정규 1집
'Listen To My Heart'가
일본 광고에 사용되면서
오리콘 데일리 차트 3위에
오르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한국인 최초로 오리콘 주간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게 됩니다.
BoA는 실력과 신선한 음악,
퍼포먼스로 일본 음악시장과
공연장을 점령해나갔으며,
이후 20년간 정말 많은
기록들을 세우며 한국 가수로선
최초로 정점에 오르게 되었죠!
BoA를 시작으로 한류의
주무대가 중국에서 일본으로
바뀌게 되었고, 이후에
동방신기, 2PM, 빅뱅 등
다양한 가수들이 일본 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답니다.
(보아짱 보아짱)
2004년 한국을 휩쓸었던
드라마 "풀하우스"를
모르는 분들은 없겠죠?
풀하우스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죠.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비 또한 드라마의 인기로
아시아 전역에서 뜨거운
인물로 자리 잡게 되는데요.
아시아 투어를 개최하고,
2005년 아시아 MTV 시상식
그랜드 슬램 달성에 이어
2006년 미국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되는 등
당시 비는 범아시아권을
점령하며 존재감을 드러냈죠.
하지만, 여기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한류 가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루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큰 사랑을
받은 이루의 과정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데요.
인도네시아 영화에
이루의 '까만 안경'을
사용하고 싶다는 요청 후,
이루에게 카메오 요청이
들어오게 되고, 이후
현지 프로모션 제의까지
받게 되면서 이루는
인도네시아에 진출하게 되죠.
다만 이루의 인기보단
K-POP 신드롬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팬들이
많았기에, 그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친숙함을
무기로 현지 가수처럼
활동하려 엄청난
노력을 했다고 하네요!
그 결과 인도네시아 최초로
한국어 음반을 발매하였고,
한국 가수 최초 인도네시아
8개 지상파 음악 방송 출연은 물론,
외국인 가수 최초 지상파
음악방송 1위를 거머쥐었으며
이루의 이름으로 드라마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라고 하니,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이렇게 K-POP은 한류를
시작으로 한 단계씩
크기를 키워가게 되는데요.
아시아를 넘어 미국,
유럽까지 건너간 스토리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겠죠?
다음 주 아카이브K도 본방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