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들어본 클래식 - TV 광고 속의 클래식
어디선가 들어본 클래식 - TV 광고 속의 클래식
클래식 음악만큼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많이 사용되는 것도 없을 것이다. 클래식 음악의 폭넓고 풍부한 표현력이 지닌 매력 때문에 고급스러운 이미지부터 차분하고 감성적인 이미지,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이미지, 힘과 에너지가 넘치는 열정적인 이미지 등 소비자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부터 현재까지 많은 제품의 광고음악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광고와 여기에 사용된 클래식 음악을 살펴보자.
글| 김경수 (음악칼럼니스트)
사진 출처| 유튜브 광고
하이든은 관악기를 위한 협주곡을 그리 많이 작곡한 편이 아닌데, 그중에서도 트럼펫을 위한 협주곡은 이 작품이 유일한 것이다. 그리고 이 협주곡은 그의 협주곡들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작곡된 작품이다. 그런 탓에 이 트럼펫 협주곡은 하이든의 협주곡 양식의 집합체이자 그의 완성된 형식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비엔나의 궁정 트럼펫 주자인 안톤 바이딩거를 위해 작곡한 것으로, 당시 바이딩거는 유건 트럼펫을 발명했는데, 이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 바로 이 협주곡이다. 총주와 독주 악기가 교대로 주제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통해 개량된 트럼펫의 기능을 과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과거 장학퀴즈라는 TV 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으로 사용되어 우리에게도 친숙한 곡으로, 초등학생을 위한 온라인 학습 프로그램인 엘리하이의 광고음악에 이 곡이 사용된 이유도 과거 장학퀴즈와의 연관성 때문일 것이다.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전편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등장인물도 동일하다. 아름다운 로지나를 사랑하는 알마비바 백작을 위해 활약을 펼치는 이발사 피가로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노래는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자 바리톤 레퍼토리 중에서도 가장 인기 높은 곡이다. 재기 넘치는 이발사 피가로가 자신은 이 거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이며 모든 일에 해결사라고 자신을 치켜세우며 부르는 노래로, 백작은 피가로를 알아보고 이후 그에게 로지나와의 사랑을 위해 도와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경쾌하고 활기찬 노래의 분위기 때문에 각종 CF의 배경음악으로 자주 사용되는 곡이다.
로베르 플랑케트는 프랑스의 작곡가로 피아노 연주에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파리 음악원을 졸업한 그는 처음에는 오페라를 피아노로 편곡하는 일로 시작해 그 뒤 오페레타를 비롯해 대중적인 노래와 경음악을 발표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는 군가를 많이 작곡했는데 1871년에 작곡한 그의 대표작인 '상브르와 뫼즈 연대'는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담고 있는 파울 세자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국내에서는 '즐거운 우리 연대'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스포츠 경기의 중계방송 때 배경음악으로도 자주 사용되는 곡이다.
라흐마니노프는 모두 4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는데, 이 작품들은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그의 연주 기교와 음악 세계를 그대로 반영한 명작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곡은 다름 아닌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라흐마니노프는 20대 중반에 첫 번째 교향곡이 실패하자 한동안 신경쇠약에 걸려 힘든 기간을 보냈다. 결국 정신과 의사의 도움으로 이를 극복하게 되는데, 이후 자신감을 가지게 된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작곡한다. 그리고 이 작품을 자신을 치료해 준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 박사에게 바쳤다. 꿈을 꾸는 듯이 자유로운 형식의 환상곡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움과 서정성이 넘치는 악장들로 꾸며진 이 협주곡은 아름답고 풍부한 피아노 음악의 정수를 보여주는 곡이다. 이 아름다운 선율은 영화의 배경음악은 물론이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지닌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자주 사용되는데 LG의 시그니처 가전제품 광고나 태양광 발전과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한화그룹의 이미지 광고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곡은 원래 사티가 1897년에 카바레의 가수였던 폴레트 다르티를 위해 앙리 패코리의 노랫말에 왈츠풍의 멜로디를 붙여 작곡한 노래로, 나중에 피아노 독주곡인 "피아노를 위한 왈츠"로 편곡했다. 카바레 음악답게 가벼운 형식에 감미로운 선율과 편안한 리듬을 지닌 곡으로 느린 왈츠의 특징 또한 잘 나타낸 곡이다. 한편 이 곡은 사티가 그의 유일한 사랑이었던 수잔 발라동을 생각하며 쓴 곡으로도 알려져 있다. 몽마르트의 카페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가난한 음악가 사티와 "몽마르트의 여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화가들의 모델 일을 하던 발라동은 뜨거운 사랑을 나눴지만 그만큼 빨리 사랑이 식었다. 하지만 이후 사티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다른 여자는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곡은 롯데캐슬의 광고음악과 한화그룹의 친환경 에너지 사업 이미지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다.
[마술피리]는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던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1791년에 만든 최후의 오페라로 밤의 여왕의 딸과 이집트 왕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노래는 [마술피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유명한 '밤의 여왕의 아리아'이다. 내용은 밤의 여왕이 딸 파미나에게 단검을 주며 자라스트로를 찌르라고 명령하는 노래이다. 모차르트는 이 아리아 속에서 아주 높은 고음을 이용해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이 부분이 바로 그 유명한 화려한 콜로라투라 기교가 등장하는 부분이다. 격정적인 긴장감 넘치는 곡의 분위기 때문에 각종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음악은 물론이고 막힌 속을 시원하게 뻥 뚫어주는 활명수나 모바일 게임인 쿠키런 킹덤의 광고음악으로 사용되고 있다.
"빨간 머리의 사제"로 불렸던 비발디는 성직자인 동시에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음악사에 길이 남는 명곡들을 만들어 냈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바이올린 협주곡집인 [사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원래 [화성과 창의에의 시도]라는 제목으로 된 협주곡집에 속해 있던 것으로 각 계절의 분위기를 표제음악으로 묘사한 뛰어난 협주곡들이다. 누구나 쉽게 친근감을 갖게 하는 쉽고 감미로운 선율에 바이올린 특유의 음색이 가미되어 모든 클래식 음악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명작이 되었다. 이 작품은 일 년의 사계절을 생동감 넘치는 생생한 소리의 회화로 묘사해 내고 있는데, '협주곡 제4번 "겨울"'에서는 겨울철의 얼어붙을 듯한 추위와 매서운 바람을 묘사하고 있다. 삼진제약의 게보린 정의 광고에서는 빠르게 나타나는 약효의 이미지를 위해 비발디의 [사계] 속에 나오는 바이올린의 빠른 속주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이든이 잘로몬의 초청으로 영국에서 연주여행을 하던 시기에 작곡한 일련의 작품들 가운데 하나로 "시계"라는 제목은 '제2악장'에서 단조롭게 반복되는 스타카토가 시계의 기계적인 리듬과 비슷하다 하여 19세기 초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다지오의 서주를 가진 '프레스토', '안단테', '미뉴에트', '비바체'의 4악장은 각기 공통된 동기를 지닌 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묘하고 조화된 수법이 주목됨과 동시에 그 후 낭만주의 음악에 있어서 순환 형식을 의식하지 않고 사용한 것으로 흥미 깊다. 음악적인 내용에서 하이든의 성숙된 음악 기법이 나오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하이든의 [교향곡 "시계"]가 사용된 메디톡스의 뉴라미스 광고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 컨셉트를 위해 시계 모양의 이미지와 하이든의 [교향곡 "시계"]가 사용되었다.
모두 6곡으로 이루어진 슈베르트의 [악흥의 순간]은 짧았던 그의 생애 가운데 후기에 탄생한 피아노 작품으로 즉흥곡 성격의 소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6개의 소품들은 각각 다양한 음악적 순간들을 표현하며, 이들이 모여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각각의 소품들은 자유로운 형식에 낭만적인 정서와 아름다운 선율을 추구하며 기쁨과 슬픔, 분노, 격정 같은 감정들을 표현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3번 "러시아 춤곡"'은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멜로디와 춤곡에서 따온 흥겨운 리듬으로 악흥의 즐거운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이 곡은 음악의 리듬과 선율 등에 따라 안마기의 기능이 변하는 휴테크의 뮤직싱크 기술 편 광고에 등장한다.
1888년에 작곡된 사티의 [3개의 짐노페디]는 그의 작곡활동의 1기에 해당하는 대표곡으로 플로베르의 소설 "살랑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제목인 "짐노페디"는 고대 그리스의 제례의식에서 소년들이 옷을 벗은 채 몸짓으로 행하던 춤에서 유래된 용어이다. 사티는 이런 고대의 장면들을 상상하듯 음악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진지하고 단조롭게 반복되는 리듬과 단순한 선율을 사용하는 사티 특유의 작풍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잔잔하면서 나른한 느낌을 주는 선율의 이 곡은 자장가로도 자주 사용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숙면을 유도하는 시몬스 침대의 광고에 이 음악이 사용된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샤콘느'는 본래 춤곡이었지만 하나의 선율 패턴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진행을 모색하는 일종의 변주곡으로, 바로크 시대에 인기를 얻었던 음악 형식이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제2번]은 5개의 춤곡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바로크 모음곡 형식의 작품으로 '샤콘느'는 이 가운데 마지막 악장이다. 아무 반주 없이 바이올린만으로 15분가량을 연주하는 동안 30여 개의 변주를 통해 바이올리니스트가 자신이 지닌 모든 기교를 펼치는 곡으로 바흐의 작품뿐 아니라 바이올린 역사상 가중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아모레퍼시픽의 고급 브랜드인 설화수의 "아름다움은 자란다"라는 광고 캠페인에는 배우 이정은, 밴드 보컬리스트 황소윤, 모델 송경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모델로 등장하는데, 각기 다른 연령과 직업의 여성들을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편에서는 정경화의 바이올린 연주와 인터뷰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정경화가 연주하는 곡이 바흐의 '샤콘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