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s 국내 힙합] 한국에 상륙한 새로운 소리
에디션m
'이런 노래를 뭐라고 하지?'
'이 노래는 어떻게 유행하게 됐을까?'
우린 종종 음악을 들으며 장르, 아티스트, 혹은 노래의 이면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궁금해하죠. 또는 최애곡과 비슷한 노래, 최애 밴드와 비슷한 가수에 목말라 하기도 하고요. 하나의 음악을 접하면 다섯 가지의 질문을 하게되는 독창적 탐구형 리스너를 위해, 멜론과 전문가가 힘을 모아 대중음악 지침서를 발행합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을 에디션m에서 즐겨보세요.
음악을 탐구하는 멜로너를 위한 대중음악 지침서, 에디션m
한국에 상륙한 새로운 소리, '힙합'
1973년 미국 브롱크스에서 시작한 힙합이라는 지진파는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바다 건너 한국에 도달했지만, 팝 시장에서 떨친 위력을 곧바로 행사하지는 못했다. 당시 한국은 신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신문은 힙합에 대해 '해외에 새롭게 등장한 청년문화 흐름' 정도로 간략하게 소개할 뿐이었고, 블랙 뮤직을 듣고자 해도 주한미군을 대상으로 탄생한 AFKN 라디오 방송과 이태원의 클럽 문나이트 등지에서나 접할 수 있었다.
선율이나 화성 없이 빠르게 말을 내뱉는 창법인 '랩(rap)'을 처음으로 활용한 1989년 홍서범의 '김삿갓'이 곡에 음정이 없다는 이유로 방송 금지 처분을 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해외 동향에 밝았던 신해철과 015B, 이현우 같은 선구적인 뮤지션들도 일찍이 본인 노래에 랩을 넣는 시도를 하기도 했으나 이들은 모두 사회상을 반영해 영어로 된 랩을 택했다.
본격적으로 힙합이 한국에서 에너지를 드러내고 태동을 알린 건 1990년대다. 당시 미국에서도 유행하던 스타일인 뉴 잭 스윙(new jack swing) 작법을 가져온 현진영과 샘플링 기법과 브레이크 댄스를 전면에 내건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기본적인 플로우와 라임 체계를 제시하고 블랙 뮤직의 요소를 현지식으로 다듬은 듀스(DEUX)의 등장이 결정적이었다.
컬러TV의 보급으로 시각적 요소가 대두되고 박남정과 김완선 같은 스타를 필두로 가요계에서 점차 주목받기 시작한 '댄스 음악' 시장에 이들은 랩을 가미한 독특한 양식, 일명 '랩 댄스'를 내놓으며 미디어와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물론 이 시기를 작법 상 온전한 힙합의 등장으로 점치기는 어렵다. 대신 생소할 수도 있는 랩이 하나의 독자적 방식으로 인정받고, 세간의 인식에도 친근하게 자리 잡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음악과 함께 선보인 춤과 패션은 X세대로 불리는 신세대에게 곧바로 전파되었고, 힙합의 하위 요소는 차례차례 청년문화의 일부로 침투한다. 신드롬은 곧 랩 자체의 파급력으로도 이어졌다. 이내 터보와 R.ef, H.O.T. 등 래퍼 포지션을 가진 아이돌과 댄스 그룹이 나타나며 입지를 공고히 다진 것. 그러나 아직 가요 전반에는 힙합이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으며, 랩은 여전히 댄스 음악에 곁들이는 감미료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변화의 단초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랩의 비중이 조금씩 늘어났고, 사랑과 이별 이야기 위주의 가사는 어느덧 사회 비판과 저항성을 담기 시작했으며, 블랙 뮤직 연구에 착수하는 뮤지션이 늘어남에 따라 아예 힙합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창작자도 생겨났다. 지누션과 원타임 등 힙합 그룹이 점차 늘어났으며, 이 당시 패닉의 멤버 김진표는 1997년 솔로 데뷔에 앞서 전곡이 랩으로 이뤄진 최초의 앨범 [열외]를 선보이기도 했다.
드렁큰 타이거, 솔리드, 업타운 등 힙합의 본고장 미국에서 나고 자라며 장르의 배경과 특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체득한 재미 교포 출신 아티스트의 등장으로 본격적인 판도가 바뀐다. 다소 어색한 한국어 랩이 대부분이던 시장 가운데 이들은 음악 매체에 활발하게 모습을 비추며 영어 기반의 플로우와 라임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모습을 선보였고, 정통 힙합에 가까운 비트와 음악 구성을 적극 차용해 본토 힙합의 재현 의지를 드러냈다.
수면 위에서 대형 주류 음반사를 등에 업은 뮤지션이 활약하는 동안, 그 아래에서는 PC 통신을 중심으로 힙합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의 출범을 알렸다. 소모임에서 감상 동호회로 발전해 정기 모임까지 도모한 하이텔의 '블렉스(BLEX)', 감상과 비평 중심으로 성장한 나우누리의 '돕 사운즈(Dope Soundz)'와 여기에서 파생한 창작 지향 모임 '쇼 앤 프루브(SNP)', 방대한 힙합 음원과 영상 자료를 보유한 천리안의 '캠프 그루브(Camp Groove)' 등이 대표적이다.
점차 그들은 단순히 듣는 행위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소리를 뱉고 음악을 만들며 공연에 서고 싶다는 열망을 내비쳤다. 레코드나 전문 인력의 도움, 고가 장비 없이 수작업으로 자체 제작한 기념비적 작품 [검은 소리, 첫 번째 소리(BLEX VOL 1)]가 가능성을 열었고, 당대 실력자들이 총집합해 쟁쟁한 라인업을 구성한 [1999 대한민국]이 파격을 불러 일으키며 훗날 컴필레이션 열풍을 가져오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신촌의 헤비메탈과 모던 록 공연장을 인수해 재개장한 전설적 클럽 '마스터 플랜'과 제휴를 맺어 활발하게 공연을 열기도 했다. 가리온, 다 크루, 주석, 개코와 최자 등 수많은 1세대 힙합 뮤지션이 아마추어 시절 여기를 거쳐 실력을 키운 것으로 유명하며, 이후 마스터 플랜은 2002년 레이블화 되어 장르 음악의 초석을 닦는 음반을 내놓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