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s 클래식] 세계 최초의 레코딩

에디션m

[~40s 클래식] 세계 최초의 레코딩

2024.08.01
Special

에디션m

'이런 노래를 뭐라고 하지?'
'이 노래는 어떻게 유행하게 됐을까?'


우린 종종 음악을 들으며 장르, 아티스트, 혹은 노래의 이면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궁금해하죠. 또는 최애곡과 비슷한 노래, 최애 밴드와 비슷한 가수에 목말라 하기도 하고요. 하나의 음악을 접하면 다섯 가지의 질문을 하게되는 독창적 탐구형 리스너를 위해, 멜론과 전문가가 힘을 모아 대중음악 지침서를 발행합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을 에디션m에서 즐겨보세요.

음악을 탐구하는 멜로너를 위한 대중음악 지침서, 에디션m

Story

레코딩의 여명기

1877년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은 '포노그래프'라는 원통형 축음기를 만들었고, '에밀 베를리너'는 원반형 축음기를 만들어 '그라모폰사'를 설립했다. 이후 음반산업을 이끈 쪽은 에디슨이 아니라 베를리너 쪽이었는데, 그의 그라모폰 축음기 레코드는 대량 복제가 매우 용이했다. 이 레코드가 비로소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한 건, 1902년 테너 '엔리코 카루소'의 레코딩에서부터 비롯된다. 이른바 레코드산업과 음악시장이 드디어 개화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벨르 에포크

유럽에는 '벨르 에포크 (Belle Époque)'로 불리는 아름다운 시절이 있다. 말하자면 '화양연화 (花樣年華)'에 해당하는 시대다. 꽃이 피듯 아름다운 때를 뜻하는 이 시기는 학자마다 시대구분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19세기 후반에서 1914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 때는 삶을 위협하는 큰 전쟁도 없고, 평화가 지속되면서 인류의 문명과 과학이 급속하게 발전하던 시기였다.

메트로폴리탄 레일웨이라는 회사가 역사상 최초로 런던에 지하철을 건설했으며, 에디슨은 백열전구를 발명해 인류에게 제2의 빛을 선사했다. 독일의 벤츠는 최초로 내연기관 자동차를 발명했고,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는 역사상 최초로 영화를 상영했다. 그리고 20세기 초, 미국의 라이트 형제는 인류 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하며 비행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아름답고 풍요롭던 '벨르 에포크' 시대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종말을 맞았다.

에디슨의 축음기 포노그래프

에디슨이 제2의 빛으로 평가받는 백열전구를 발명하기 2년 전, 사실은 지금 모든 음악산업의 기초 토대가 되는 가장 중요한 발명품을 만들었다. 그건 바로 소리를 녹음할 수 있는 축음기 '포노그래프'였다. 목소리는 물론 모든 소리를 녹음할 수 있는 이 장치는 즉각적으로 음악산업을 견인할 수도 있었지만, 사실 음악이 상품으로 주목받는 산업의 시작은 이때로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더 흐른 뒤였다.

에디슨은 뛰어난 발명가이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자신의 발명품이 미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 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듯하다. 그는 우선 자신의 축음기가, 위조하기 쉬운 문서를 대신해서 직접 유언을 녹음하고, 속기사의 일을 대신하며,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유명 인사들의 연설을 녹음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물론 이 축음기로 음악이나 노래 역시 녹음할 수 있었지만, 초창기 축음기의 조악한 음질을 감안해보면 음악을 전문적으로 녹음할 생각은 그다지 없었던 듯하다.

에밀 베를리너의 축음기 그라모폰

하지만 에디슨에 이어 원반형 축음기 '그라모폰'을 발명한 '에밀 베를리너'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축음기를 통해 유명 가수들의 노래를 녹음해 판매한다면 훌륭한 비즈니스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 에디슨이 하드웨어에 몰두하는 동안, 베를리너는 소프트웨어에 더 집중한 것이다. 그는 녹음기사 겸, 유사시 가수들의 반주를 담당할 수 있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직원을 영국으로 파견해 최초의 음반사라고 할 수 있는 '그라모폰사'의 운영을 맡긴다.

그가 바로 최초의 음악 프로듀서로 불리는 '프레드 가이스버그'다. 그는 지금 우리의 음악책에 등장하는 그리그, 사라사테, 생상스, 크라이슬러, 세고비아 같은, 당시에 생존해 있던 작곡가와, 브람스의 절친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제프 요하임', '아델리나 패티', '표트르 샬리아핀', '베냐미노 질리', '넬리 멜바', '존 맥코맥' 같은 당대 최고의 가수들의 노래를 녹음했으며, 카스트라토인 '알렉산드로 모레스키'의 귀중한 목소리를 후대에 전해주기도 했다. 모레스키는 카운터테너가 아닌 실제 거세가수로 현재 유일하게 목소리가 남아있는 카스트라토이기도 하다.

테너 엔리코 카루소의 등장

가이스버그는 20세기의 문이 열리는 1902년 이태리의 한 신인 테너와 녹음 계약을 체결한다. 당시만 해도 녹음을 하면 목소리를 잃는다는 미신마저 떠도는 때여서, 유명 성악가들은 녹음을 꺼려했고, 심지어는 레코딩을 우스꽝스러운 짓으로 치부하던 시대였다. 당연히 이 테너 또한 처음에는 완강히 레코딩을 거부했다. 하지만 당시 일반적인 개런티의 20배가 넘는 100파운드를 제시하자 마음을 바꿔 녹음을 허락했다. 하지만 미국 본사에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유럽의 무명 테너에게 그런 거액을 줄 수 없다고 버티자, 가이스버그는 사재를 털고 지인에게 도움을 얻어 겨우 비용을 마련한 뒤, 그가 머물고 있던 이태리 밀라노의 호텔 방으로 찾아가서,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 10곡을 녹음한다.

두어 시간 만에 모든 녹음을 마친 그는 저녁식사 약속에 늦겠다며 총총히 방을 떠났다고 한다. 그 테너가 바로 20세기 최고의 가수로 불리는 '엔리코 카루소'였다. 이 카루소의 레코딩은 이후 무려 100만장 이상 팔려 나가며, 레코드음반의 새로운 시대를 불러왔다. 레코드가 발명되기 전, 음악은 시간 예술이어서 음악이 재생되는 동안 그곳에 있지 않으면 다시는 감상할 수 없는 찰나의 예술이었다. 하지만 그라모폰사가 녹음을 시작하고 카루소의 레코드가 불티나게 팔리게 된 이후, 음악은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음악 소비자는 비싼 공연대신 집에서 최고 가수의 노래를 감상하는 기쁨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후 레코딩과 음반은 음악산업을 대표나는 주춧돌로,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음악산업을 견인하게 된다.

전기녹음의 시작

카루소의 녹음부터 1925년 이전 까지의 녹음은, 마이크의 도움 없이 직접 육성이나 가공되지 않은 그대로의 소리를 녹음하는 어쿠스틱 녹음의 시대였다. 하지만 1920년대 중반 전기녹음이 시작되고 마이크로 녹음이 가능해지면서, 음량이 커지고 작고 세밀한 소리까지 명확하게 녹음이 가능해졌다. 바야흐로 음악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은 인간의 목소리나 단출한 악기로 연주되는 기악곡이 레코딩의 주된 결과물이었으나, 전기녹음이 시작된 후 저음악기는 물론이고 복잡하고 다양한 편성의 오케스트라 녹음도 가능하게 되었다. 최초의 오케스트라 전기녹음으로 알려진 것은 1925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인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녹음한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당시 최고의 연주자로 명성을 떨치던 프랑스의 '알프레드 코르토' 역시 전기녹음의 수혜자로 무수한 레코딩을 최초로 녹음하며 전설적인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세계 최초 레코딩의 시대

이 시기에는 레코딩의 발달로 인해 비약적으로 많은 다양한 녹음이 이루어졌는데, 당연하게도 무수히 많은 최초 레코딩이 쏟아져 나온 시기이기도 하다. 최초의 신동으로 이름을 날린 '예후디 메뉴인'은 1932년 영국의 작곡가 엘가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당시 생존해 있던 작곡가의 지휘로 역사상 최초로 녹음했으며, 연이어 1935년 '바이올린의 구약성서'로 일컬어지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최초로 녹음하기도 했다.

사실 음악계에 메뉴인 이전에 신동 음악가가 없었을 리 만무하지만, 메뉴인 이전의 신동들은 문서로만 이야기가 전할 뿐 레코딩을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 천재성을 확인할 수 없었고, 메뉴인에 사람들은 신동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예후디 메뉴인 이야말로 우리가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신동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최초의 전기녹음을 경험했던 '알프레드 코르토'는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를 최초로 녹음했으며(1929), 쇼팽의 '전주곡' 전곡을 최초로 녹음(1949)하기도 했다. '피아노의 신약성서'로 불리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 32곡의 녹음을 인류 최초로 녹음한 영예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에게 돌아갔다. 그는 무려 3년여에 걸쳐 전곡 녹음을 완성했는데, 단순히 전곡을 녹음한 최초의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베토벤 소나타의 가치를 미래에 계승한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평가받는다.

'첼로의 성자'로 불리는 스페인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13살 때 바르셀로나의 한 헌책방에서 악보를 발견한 뒤, 12년 넘도록 연주법을 익혀 연주회에서 최초로 소개하고, 이후 35년을 더 기다려 나이 60에 이르러 비로소 처음으로 전곡을 녹음했는데, 그 곡이 바로 '첼로의 구약 성서'로 불리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었다.

이외에도 피아니스트 '에드빈 피셔'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최초로 완성하였고, 바이올리니스트로도 활동했던 지휘자 '아돌프 부쉬'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전곡'을 최초로 녹음하였다. 말러의 제자였던 '부르노 발터'는 '대지의 노래'를 최초로 레코딩했으며, 젊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을 녹음하면서 천재성을 드러냈다. 이 역사적인 레코딩들은 모두 LP가 등장하기 전인 1940년대 말 이전에, SP음반으로 처음 녹음되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명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