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s 클래식] 콩쿠르를 통해 발굴된 인재들

에디션m

[70s 클래식] 콩쿠르를 통해 발굴된 인재들

2024.08.01
Special

에디션m

'이런 노래를 뭐라고 하지?'
'이 노래는 어떻게 유행하게 됐을까?'


우린 종종 음악을 들으며 장르, 아티스트, 혹은 노래의 이면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궁금해하죠. 또는 최애곡과 비슷한 노래, 최애 밴드와 비슷한 가수에 목말라 하기도 하고요. 하나의 음악을 접하면 다섯 가지의 질문을 하게 되는 독창적 탐구형 리스너를 위해, 멜론과 전문가가 힘을 모아 대중음악 지침서를 발행합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을 에디션m에서 즐겨보세요.

음악을 탐구하는 멜로너를 위한 대중음악 지침서, 에디션m

Story

아티스트의 시대

음악회가 열리는 장소에 가서 티켓을 사고, 예정된 시간 동안만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던 음악 예술은, 이제 오히려 음악회에 직접 가서 음악을 듣는 일이 번거로운 일이 될 정도로 오디오 시스템이 빠르게 가정에 보급되게 된다. 웬만한 집에서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전축이 구비되기 시작했고, 먼 나라의 연주자의 연주도 레코드를 통해 집안에서 간편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실제로는 만나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지만 레코드를 통해 뛰어난 연주자들이 세계적으로 큰 명성을 얻게 된다.

콩쿠르를 통한 인재 발굴

1960년대에 이어 1970년대 역시 최고의 LP 황금기였다. 이미 웬만한 레퍼토리들은 거의 다 앨범으로 발매되었는데, 이제는 녹음을 하지 않은 레퍼토리들을 찾는 게 더 힘들 정도였다. 따라서 이제는 이미 존재하는 녹음이라도 새로운 연주자를 찾아 다시 녹음하는 일이 중요한 일이 되었다. 그래서 음반사들은 새로운 레퍼토리들을 개발함과 동시에 새 연주자를 찾는 일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이 콩쿠르다. 사실 음악은 스포츠와 달라서 기록으로 순위를 매기거나 경기력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한데도, 이런 콩쿠르가 만연하게 된 데에는, 새로운 연주자를 발굴하고 새 음반을 녹음해서 산업을 발전시키려는, 음악계의 숨은 의도가 깔려 있는 셈이다.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세계대전 이후 더욱 치열해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1955년 아담 하라시비츠(우승)와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2위)를 배출하며 인기를 얻더니, 1960년 마우리치오 폴리니, 1965년 마르타 아르헤리치, 1970년 게릭 올슨 1975년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등 우승자를 배출했는데, 이들이 콩쿠르 이후에도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이 콩쿠르의 권위를 최고로 높여 놓았다. 이후 2005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임동민, 임동혁 형제가 나란히 공동 3위에 올랐고, 2015년 조성진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대한민국도 쇼팽 콩쿠르 우승자 보유국이 되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다비드 오이스트라흐(1937), 레오니드 코간(1951), 기돈 크레머(1967) 등을 배출하며 최고의 바이올린 콩쿠르로 유명했던 '이자이 콩쿠르'는 전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로 개명하면서 벨기에 왕족의 지원을 받는 종합 콩쿠르로 확장한다. 다른 콩쿠르와는 다르게 매년 개최되는데, 매 해마다 바이올린, 피아노, 성악, 첼로 부문의 한 분야만 심사한다. 따라서 악기별로 보면 4년마다 대회가 열리는 셈이다. 2015년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바이올린 부문에서 우승했다. 피아노에서는 에밀 길렐스(1938), 레온 플라이셔(1952),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1956) 등의 연주자가 등장했으며, 이미주, 백혜선, 박종화, 임동혁 (수상거부), 임효선, 김태형, 김다솔, 한지호 등 한국 피아니스트가 입상자에 합류했다. 뒤늦게 1988년 신설된 성악 부문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소프라노 홍혜란이 우승을 차지했으며(2011), 2014년 소프라노 황수미가 연달아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2017년 신설된 첼로 부문에서는 2022년 한국의 첼리스트 최하영이 우승을 차지한다. 동양의 작은 나라인 한국에서 수많은 우승자가 쏟아져 나오자, 한 벨기에 영화감독은 '한국 클래식의 수수께끼'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차이콥스키 국제 음악 콩쿠르

1957년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에 성공하면서, 미국과의 우주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소련은 그 기세를 몰아 이듬해, 제1회 국제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개최하는데, 예상과는 딴판으로 미국의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이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미국의 기세를 꺾으려다가 오히려 미국의 피아니스트 영웅을 만들어주고 만다. 하지만 이후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와 존 오그돈(1962), 그리고리 소콜로프(1966), 안드레이 가브릴로프(1974), 유리 에고로프(1974), 미하일 플레트네프(1978), 피터 도노외(1982), 보리스 베레조프스키(1990), 다닐 트리포노프(2011) 등 피아니스트들을 배출하며 그나마 자존심을 회복했다. 한국인으로는 1974년 정명훈이 피아노 부문에서 2위를 차지했으며, 이후 백혜선(1994)과, 임동민(2002), 임동혁(2007), 손열음, 조성진(2011)이 뒤를 이으며 입상했다. 바이올린 부문에서는 기돈 크레머(1970), 빅토리아 뮬로바(1982), 아키코 스와나이(1990) 등이 스타로 떠올랐으며, 우리의 연주자들도 2007년 이후 입상 소식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윤소영, 신지아, 이지혜, 클라라 주미 강, 김봄소리, 김동현 등이 바이올린 부문에서 입상했으며 2023년 최초로 김계희가 우승했다. 첼로 부문에서는 문태국(2019), 박상혁, 이동열이 입상했으며 이영은이 최초로 우승했다.(2023) 그리고 성악 부문에서는 1990년 최현수를 필두로 박종민, 서선영, 김기훈, 정인호, 손지훈 등이 입상 및 우승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전통의 콩쿠르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의 책임을 물어, 2022년 세계 콩쿠르 연맹에서 퇴출당하고 만다.

우주로 간 클래식

1977년 미 항공우주국(NASA)는 외계 탐사선 보이저호를 우주로 발사했다. 이 우주 발사체에는 지구를 대표하는 음악을 녹음해 금으로 도금한 골든 레코드인 LP에 함께 실어 보냈다. 혹시라도 이 우주선을 외계인이 발견하게 된다면 그들에게 지구에 대한 정보와 우리의 문명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예술과 음악에 대한 정보를 주기 위함이었다. 이 골든 레코드에는 115개의 이미지와 지구 자연의 소리, 55개 국어로 된 인사말 ('안녕하세요?'라는 한국어 인사말도 들어있다), 그리고 90분가량의 음악이 실려있었다. 그중 클래식 음악은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 1악장 (카를 리히터 지휘),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3번 중 '가보트와 론도' (아르투르 그뤼미오 바이올린),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의 아리아' (소프라노 에다 모저),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중 '희생의 춤' (스트라빈스키 지휘),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2권' 중 1번 (글렌 굴드 피아노),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1악장 (오토 클렘페러 지휘) 그리고 베토벤 현악 4중주 13번 중 '카바티나' (부다페스트 현악 4중주단) 등 이었다. 과연 외계의 누군가가 이 지구의 음악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혹은 이해할 수 있을까? 아무튼 70년대 클래식 음악은 과학의 힘을 빌려 최초로 우주로 나아가게 된다.

대한민국의 클래식

대한민국에게도 1970년대는 빛나던 시기였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제발전의 성공으로 더 큰 희망을 가지게 됐으며,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상승하던 시기였다. 1977년 수출 100억불을 달성하면서, 10억불 수출에서 100억불까지 가장 단기간에 돌파한 나라가 되었고, 마침 한국의 산악인 고상돈 대원은 세계 8번째로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에 성공했으며, 권투선수 홍수완은 4번 다운됐음에도 4전 5기의 역전 KO승을 거두면서 국민 영웅으로 탄생했다.

거기에 더해 문화적 자신감까지 심어준 계기는 어느 정도 정트리오(정명훈, 정경화, 정명화)가 일궈낸 성과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특히 그 어떤 정부의 지원이나 뒷받침 없이 개인적으로 일궈낸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특이하다고 할 만하다. 공산주의의 총본산이던 소련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정명훈은 김포국제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일 정도로 큰 환영을 받았다. 오직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대한민국에도 거의 모든 동네마다 음악학원이 생겨나고 옆집 담 너머로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마침내 1978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복합문화공간인 세종문화회관이 광화문에 문을 열었다. KBS 클래식 FM이 전파를 송출하며 스테레오 음악방송을 최초로 시작한 것도 1979년의 일이었다.

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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