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전설이 된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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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전설이 된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를 추모하며

202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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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전설이 된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를 추모하며

지난 3월 23일.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Maurizio Pollini)가 향년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였던 폴리니가 세상을 떠나며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간 것이죠. 전 세계의 클래식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에게도 우상과 같은 존재였던 폴리니의 죽음에 세계 각지에서 추모 메시지가 이어졌습니다. 지난 2022년에는 폴리니의 사상 첫 내한 공연이 예정되어 있기도 했죠. 하지만 건강 문제로 인해 연기되었고, 결국에는 한국 관객들을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되어 한국 애호가들에게는 그의 영면이 더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1942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난 폴리니는 1960년에 불과 18세의 나이로 제6회 쇼팽 콩쿠르를 우승을 거머쥐며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킨 그야말로 슈퍼스타였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인 피아니스트에 비유하자면 임윤찬이나 조성진처럼 어린 나이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은 '원더키드'인 셈이죠. 1970년대부터는 도이치 그라모폰(DG) 레이블을 통해 다양한 앨범을 발매하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의 첫 DG 앨범은 1971년에 녹음된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프예프, 베베른 등 20세기 음악 모음집입니다. 이 앨범을 통해 폴리니는 20대 피아니스트가 보여줄 수 있는 힘과 패기로 다소 난해하게 들릴 수 있는 20세기 음악을 마법처럼 풀어내며 화려한 청각적 쾌감을 선사했습니다. 특히 이 앨범에 수록된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는 전설적인 명연이자 '페트루슈카'라는 작품 자체의 대중적 인지도를 끌어올린 중요한 기점이기도 했죠.

곡리스트 13

오랜 세월에 걸쳐 뛰어난 녹음을 많이 남긴 폴리니지만, 그래도 그의 최고 명반을 고르라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쇼팽의 에튀드를 언급할 겁니다. 쇼팽 에튀드는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거쳐가는 아주 중요한 레퍼토리죠. 그만큼 옛 거장부터 오늘날의 젊은 스타 연주자들까지 수많은 피아니스트가 끊임없이 에튀드를 연주합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폴리니의 에튀드는 가장 뛰어난 연주로서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탁월한 테크닉과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표현력의 조화는 그 누구라도 이 앨범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죠.

곡리스트 24

폴리니는 그와 같은 이탈리아 출신이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함께 수많은 협주곡 앨범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특히 베토벤, 브람스, 슈만 등 18, 19세기 작곡가들부터 20세기 모더니즘의 대표주자 쇤베르크에 이르기까지 독일어권 작곡가들의 협주곡을 많이 녹음했는데요. 폴리니와 아바도가 함께한 협주곡 앨범은 두 사람 모두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90년대 무렵에 녹음되어 아주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지니고 있죠.

곡리스트 7

최근까지도 폴리니는 비교적 활발하게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최근의 앨범은 노거장의 원숙함과 관조적 아름다움이 돋보입니다. 젊은 시절의 폴리니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죠. 쇼팽의 후기 작품을 녹음한 2017년 앨범은 쇼팽으로 큰 명성을 얻은 폴리니가 말년에 이르러 쇼팽의 후기 작품을 다시금 돌아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곡리스트 14

폴리니의 마지막 관심사는 베토벤이었습니다. 2020년대 이후 발매한 앨범에는 베토벤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를 받는 피아노 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를 포함해 베토벤 후기 소나타가 집중되어 있죠. 아마도 폴리니는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 다시금 베토벤을 마주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특히 베토벤의 깊은 예술적, 인간적 고뇌가 담겨있는 후기 피아노 소나타를 보며 폴리니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지 않았을까요? 그래서인지 폴리니가 말년에 남긴 베토벤 앨범에는 더없이 깊음 음악과 통찰이 느껴집니다. 젊은 연주자들의 베토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베토벤인 것이죠.

곡리스트 11

폴리니는 영원한 안식을 찾아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여전히 우리의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기억될 그의 음악을 들으며, 우리 곁에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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