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함을 마주하다 – 임윤찬이 연주하는 쇼팽의 연습곡

스포트라이트

위대함을 마주하다 – 임윤찬이 연주하는 쇼팽의 연습곡

2024.04.19
Album

임윤찬 [Chopin: Études]

지난 2023년 10월 19일.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전통의 레이블 데카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어느덧 반년이 흐른 2024년 4월. 많은 분들이 이 피아니스트의 첫 앨범에 과연 어떤 곡이 담길지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의 피날레를 함께 했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 위그모어홀에서의 리사이틀 프로그램, 점차 연주 횟수를 늘려가고 있는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등등. 이런저런 작품들이 그동안 이 피아니스트 주변을 감싸고 있었는데요. 임윤찬의 선택은 프레데리크 쇼팽의 '연습곡 Op. 10'과 'Op. 25'. 그는 피아니스트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작품을 선택해 이를 마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의 뒤를 잇다

이제 커리어를 시작하는 피아니스트에게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의 뒤를 잇다'는 말은 너무 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번 앨범을 소개하기 위해 이런 수식어를 쓴 것은 아닙니다. 임윤찬은 클래식 음악의 오랜 전통을, 깊고 깊은 뿌리에 진심으로 기대는 음악가입니다. 알프레드 코르토와 이그나츠 프리드만, 그리고 요제프 레빈의 연주를 들으며 성장했던 이 피아니스트는 이들처럼 근본 있는 음악가가 되고 싶었다고 하며 그렇기에 그 뿌리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에 쇼팽 연습곡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이 쇼팽의 연습곡을 녹음하고 발표하게 된 소감은 남다릅니다. 임윤찬은 '쇼팽 연습곡 안에는 대지의 신음, 나이 든 이의 회한, 사랑의 편지, 그리움과 먹먹함 그리고 자유 같은 여러 감정이 있다. 연습곡을 연습하지 않았던 시기에도 연습곡의 노래들이 내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깊어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데카 레이블에서 쇼팽 연습곡을 녹음하고 발표하는 것은 큰 영광'이라고 덧붙입니다. 과거를 향한 그의 크나큰 존경에 화답이라도 하듯 데카 레이블은 이번 앨범의 커버를 1960년대 스타일로 꾸며 이 젊은 피아니스트를 커버에 담아주었네요.

이제껏 만나지 못했던 쇼팽을 만나다

물론 그렇습니다.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포부도, 디자인도 아닌 바로 음악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이번 임윤찬의 쇼팽 연습곡 연주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소름 끼치도록 지독한 연주를 들려줍니다.

임윤찬의 이번 쇼팽 연습곡 앨범은 모든 음악의 순간을 전에 없던 선명함으로 담아내고자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전에 발매된 앨범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성부의 미세한 움직임, 이 작품에 이런 음표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도드라지게 들리는 음들이 이 앨범에서는 특히 많이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그의 연주를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필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뿐. 아래에 간단하게 쇼팽 연습곡 안내서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임윤찬의 연주와 함께 쇼팽이 피아노를 위해 남긴 걸작을 경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만의 부제를 붙여보세요 - 감상에 앞서

본격적인 작품 소개에 들어가기에 앞서 쇼팽 연습곡에 따라붙는 부제에 대해 살짝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쇼팽의 연습곡에 사실 원작자인 쇼팽은 이 작품에 그 어떤 부제도 붙이지 않았음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부제가 이야기해 주는 주제에 함몰되면 이 연습곡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들을 닫아버리게 될지도 모르니 오늘 이 자리에서는 임윤찬의 연주를 감상하고, 그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본 뒤 여러분만의 부제를 붙여보시기를 추천해 드리는 바입니다.

피아노는 이런 악기였다 - '연습곡 Op. 10'

곡리스트 12

'연습곡 Op. 10'은 쇼팽의 경력 초기인 1833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이 작품집은 여러모로 독특합니다. 연습곡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지독하게 연주하기 어려우면서도, 한 곡 한 곡이 독립된 예술 작품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1번 다장조: 왼손의 당당한 옥타브 위를 빠르게 움직이는 오른손 아르페지오 연습곡입니다. 연주하기 대단히 난처한 구간들이 많아 고통스러운 작품이지만, 한편으로 피아노라는 악기가 이렇게 반짝이는 소리를 낼 수 있는지에 경탄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2번 가단조: 오른손의 3,4,5번 손가락으로 반음계를 연주해야 하는, 연습곡 내에서도 지독하게 어려운 곡으로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어렵게 보이는 것은 금물. 이 곡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3번 마장조: '이별의 곡'으로 알려져 있는 이 작품에서는 오른손으로 연주되는 윗성부 멜로디의 강조, 중간 부분에서 마치 소용돌이처럼 전개되는 반음계 화성의 처리를 연습하게 됩니다.

4번 올림다단조: 오른손, 왼손 가리지 않고 빠르게 진행되는, 그리고 이 모든 음표를 정확하고 명료하게 처리해야 하는 작품입니다. 잘 연주된다면 그 효과가 그 어떤 곡보다 확실한 연습곡이죠.

5번 내림사장조: 오른손이 검은 건반만을 연주하게 되어 '흑건'이라는 부제로 알려진 작품입니다. 연주하게 되는 건반의 색깔은 검은색이지만 음악은 무슨 일인지 하얗게 빛나고 있습니다.

6번 내림마단조: 이 느린 작품에서 피아니스트는 무엇을 연습하게 될까요? 오른손의 유려한 표현이 중요하게 들리는 이 작품을 실제로 연주해 보게 되면 왼손의 움직임이 상당히 독특하게, 마치 손가락이 이상한 방식으로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어쩌면 이 작품, 손가락과 손가락이 교차하는 기묘한 감각을 연습하는 곡일지도 모르겠습니다.

7번 다장조: 토카타 스타일로 준비된 오른손 화음과, 음악이 그리 많지는 않아 보이지만 생각만큼은 많아 보이는 왼손. 이 양손의 밸런스를 잘 맞춰줘야 하는 연습곡입니다.

8번 바장조: 오른손이 어마어마한 음역대를 빠르게 오르내리는 연습곡입니다. 사실 이 작품, 오른손의 움직임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지지하는 왼손이 하는 일도 상당히 즐거우니 여유가 되신다면 왼손의 움직임에도 귀를 기울여주시기를.

9번 바단조: 이 멜랑콜리한 작품에서는 왼손의 유연하면서도 부드러운 움직임과 체념한 듯한 악상을 연주하는 오른손의 표현을 연습하게 됩니다.

10번 내림가장조: 오른손은 화성과 멜로디, 왼손은 윗성부가 제 일을 할 수 있도록 폭넓은 화성을 연주하게 됩니다. 중간 부분에서는 조옮김에 탁월한 솜씨를 보여주었던 쇼팽의 전조 실력을 만나 볼 수 있겠습니다.

11번 내림마장조: 아르페지오 연습곡입니다. 실제 이 곡의 악보를 보면 지렁이들이 모여 있는 듯한, 아르페지오 지시들로 빼곡한데요. 연주를 들어보면 그저 한없이 아름다운 선율만이 흐르는 게 참으로 신기한 작품입니다.

12번 다단조: 이 연습곡집에서 가장 유명한, '혁명'이라는 부제로 잘 알려져 있는 이 작품. 나라 잃은 슬픔과, 그 사실에도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과 분노. 이러한 복잡한 심경이 격렬한 파도를 만들어내는 연주에 뒤섞여 전해집니다.

보다 풍부해진 표현력 - '연습곡 Op. 25'

곡리스트 12

첫 연습곡집의 출판으로부터 4년 뒤인 1837년. 쇼팽은 두 번째 연습곡집인 '연습곡 Op. 25'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앞서 소개해 드렸던 '연습곡 Op. 10'과 마찬가지로 12곡이 한 세트를 이루는 이 'Op. 25'는 여전히 대단한 기술력을 시험하면서도 보다 풍부한 표현력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1번 내림가장조: 아르페지오 연습곡. 양손을 부드럽게 펼치면서 오른손 가장 윗성부의 멜로디, 그리고 중간중간 강조되는 내성의 멜로디를 부드럽게 표현해 주어야 합니다.

2번 바단조: 빠르게 움직이지만 왜인지는 모르게 슬프게 흘러가는 오른손과, 이를 지지해주는 왼손의 협응을 시험하는 연습곡입니다.

3번 바장조: 전반적으로 폴짝거리는 듯한 리듬으로 채워져 있는 이 작품에서는 꾸밈음을 연주하는 듯한 오른손을 재빠르고 확실하게 처리해야 하겠습니다.

4번 가단조: 왼손의 빠른 도약과, 그에 리듬을 맞추는 오른손의 기민한 움직임을 시험하는 연습곡. 전에 없던 템포로 이 작품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연주에 어지럼증이 생길지도 모르니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5번 마단조: 쇼팽만이 쓸 수 있는 우울이 한껏 담긴 연습곡. 중간 부분에서 장조로 전개되는 선율과의 대비가 이 작품의 슬픔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줍니다.

6번 올림사단조: 연습곡 전체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다고 평가되는 3도 연습곡입니다. 연주는 어려운 가운데 슬픔을 한껏 머금은 음악을 만날 수 있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죠.

7번 올림다단조: 왼손을 풍부하게 사용하는, 왼손의 깊은 표현을 연습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대체로 느리고 정적으로 진행되지만 중간 지점에서는 꾹 눌러진 감정이 터지는 부분을 지나게 됩니다.

8번 내림라장조: 6도 연습곡입니다. 손이 작은 연주자들의 눈물을 부르는 곡이지만 일단 잘만 연주된다면 아주 아름다운 화성의 조화를 경험할 수 있겠습니다.

9번 내림사장조: 산뜻한 리듬 감각이 중요한 연습곡. 일단 음악을 몸에 제대로 새겨 놓은 연주자라면 즐겁게 연주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10번 나단조: 옥타브 연습곡입니다. 어마어마한 에너지로 옥타브 덩어리를 처리한 뒤 만나게 되는 중간 지점에서는 아주 부드럽게 옥타브들을 연결해 주어야 합니다.

11번 가단조: 잠잠한 인트로로 시작해 미칠듯한 속도로 쏟아지는 음표를 쉼 없이 처리해야 하는 곡입니다. 주로 바쁘게 움직이는 손은 오른쪽이지만 중간중간 왼손에게도 상당한 수준의 과제가 부여됩니다.

12번 다단조: 대망의 마지막 곡은 양손의 아르페지오 연습곡. 처음에는 당당하게 들리지만 우리는 어느덧 이 작품이 품고 있는 멜로디가 거대한 슬픔을 머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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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 [Chopin: Études]

Spotlight Interview

임윤찬 [Chopin: Études]

Q&A

  • 앨범 준비 기간 중 가장 Spotlight 하고 싶은 순간은?

    앨범 준비 기간이 길지 않았습니다, 물론 쳤었던 곡들이었지만 다른 협연 무대도 준비했어야 했고 제 연습 스타일이 하루에 한 페이지를 못 넘어가는 성격이라서 이 24곡을 2주 안에 준비하는 것은 저에겐 꽤 힘들고 지치는 일이었습니다. 녹음이란 건 수많은 가능성들을 열어놓고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연습했죠.

    연습하면서 느낀 것은 무슨 곡을 치든 간에 그 특정 부분을 연습할 때에 그 부분에서 나름대로의 심장을 찾고 '나는 그 무엇보다 더 높은 퀄리티를 원한다'는 의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영혼이 담겨있는 음악이 무엇인지, 살아있는 음악은 무엇인지 한 두음만 틀렸는데도 무너지는 음악을 할 것인지, 모든 음을 틀리더라도 무너지지 않는 살아있는 음악을 할 것인지. 이런 고민들이요.

Q&A

  • 이번 앨범 중 가장 Spotlight 하고 싶은 트랙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습니다, 산모가 아기를 낳으면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내 아이는 가장 소중하고 예뻐 보이는 법인데 저는 당연히 평소에 제 음악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제 녹음이 어떻든 간에 다 예뻐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Q&A

  • 데뷔 앨범에 쇼팽 에튀드를 Spotlight 한 이유는?

    피아니스트라면 언젠간 넘어야 할 산이 쇼팽 에튀드라고 생각했고 가장 어려운 레퍼토리이면서도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지금 빨리 넘고 싶었습니다. 꼭 첫 앨범은 이 레퍼토리로 할 거야! 해서 한 건 절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전 7살 때부터 '첫 앨범은 난 죽어도 바흐의 골드베르크를 하고 싶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지만 사실 그 저만의 약속은 고등학교 1학년 나이에 깨졌어요. 그때 좋은 기회로 베토벤 소나타 14번 그리고 리스트 순례의 해 2권 이탈리아 전곡을 녹음했거든요.

Q&A

  • 이번 자켓 이미지에 대해 Spotlight 하고 싶은 점은?

    저는 어릴 때부터 많은 음반들을 수집해왔는데 항상 살 때마다 의문이 드는 것은 왜 다들 곡의 분위기와 스토리와는 상관없는 잘 나온 프로필 사진을 커버로 쓸까?라는 궁금증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왜 음악가의 얼굴이 나와야 하는지부터 의문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사진만으로도 어떻게 이 쇼팽 에튀드를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오다가 쇼팽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단어들 : 그리움, 향수, 사랑 이런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피아노 앞에 앉은 나의 모습과는 다른 가장 사적일 때 나오는 나의 감정들도 표현하면서 어두운 내 인생에서 희망처럼 보이는 한 줄기의 빛 이런 거요.

    이번엔 표현 방법이 좀 어색했더라도 앞으로 다른 앨범들을 내면 커버로 표현하는 법이 점점 더 무르익어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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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는 뭘 듣니' 임윤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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