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뮤지션에서 영화음악가로 성공적으로 안착한, Radiohead의 프론트맨 Thom Yorke

비하인드 컷

록 뮤지션에서 영화음악가로 성공적으로 안착한, Radiohead의 프론트맨 Thom Yorke

2024.04.26
Special

Thom Yorke [Confidenza]

결성한 지 30여 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Radiohead는 여전히 신선하며 또한 첨단을 달리는 밴드였다. Radiohead는 90년대 후반 무렵에는 세기말, Y2K에 걸맞은 가사와 전자 음향들로 무장했고, 21세기 이후에는 다시금 밴드 사운드 중심으로 활약하더니 아예 클래시컬한 요소들 또한 적극 활용하면서 종잡을 수 없는 급진적 시도를 매회 이어 나갔다. 이는 급변하는 시대에 따른 뛰어난 적응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대를 읽고 한 발짝 앞서 나가고 있다는 인상에 가까웠다. 그러면서 수많은 후발주자가 Radiohead의 뒤를 따랐다.

미치 주문을 외우는 듯, 혹은 꿈을 꾸는 듯한 목소리로 어두운 비전을 노래했던 Thom Yorke는 Radiohead에서도 가장 중추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독을 넘어서는 그의 몰입감 넘치는 노래들은 평면적으로 두려움을 소모하는 것이 아닌, 보다 넓은 의미의 불안을 다각적으로 표현하려는 듯 보였다. Bob Dylan이 기차에 관한 노래를 잘했고, Bruce Springsteen이 고속도로에 관한 가사를 많이 썼듯 Thom Yorke의 경우 재난을 편안하게 묘사하는 데에 재능이 있었다.

Thom Yorke의 첫번째 영화음악 [Suspiria]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포영화 중 하나인 Dario Argento의 1977년 작 [Suspiria]의 리메이크 프로젝트에 [Call Me By Your Name]의 감독 Luca Guadagnino, 그리고 Radiohead의 Thom Yorke가 합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결국 영화는 물론 사운드트랙 또한 사람들의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킬만한 결과물로 완성됐고 Thom Yorke는 성공적인 영화음악 감독 데뷔를 완수해냈다.

물론 여기에도 확실히 어둠이 존재했지만 기존 Radiohead와는 다른 결의 어둠이었다. [In Rainbow] 시기의 날카로운 보컬과 피아노의 조합을 지닌 가창 곡 'Suspirium'은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비주얼 미디어 작곡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또 다른 가창 곡 'Unmade' 또한 'Suspirium'과 비슷한 맥락을 지니고 있으며 최면에 걸린 듯한 'Open Again'의 연약한 섬뜩함은 Thom Yorke에게 있어서도 새로운 종류의 소리였다. 14분에 달하는 드론 트랙 'A Choir of One' 또한 어둠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무시무시한 여정을 선사했다. 영화와 완전히 분리해놓고 보았을 때도 꽤나 독립적인 체계와 야심으로 무장한, Thom Yorke의 별개의 정규 작업물이라 분류해도 크게 무리 없는 작품이 됐다.

Thom Yorke, 그리고 그의 The Smile의 음악을 다뤄낸 TV 시리즈 [Peaky Blinders]

2019년 무렵 Edward Norton 주연의 영화 [Motherless Brooklyn]에서 신곡 'Daily Battles'를 공개한 Thom Yorke는 또 한 번 영상물에 음악을 제공한다.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Cillian Murphy 주연의 범죄 시대극 [Peaky Blinders]를 위해 곡을 쓴 것인데, 그는 극의 마지막 시즌을 위해 두 개의 오리지널 곡을 제공했다.

'영국판 대부'라 불리는 걸작 TV 시리즈 [Peaky Blinders]의 수록곡 경우 Thom Yorke의 이름으로 발표됐지만 Radiohead의 또 다른 한 축인 Jonny Greenwood와의 공동작업으로 이뤄졌다. '5.17'은 [Suspiria] 시기의 멜랑콜리한 피아노와 같은 맥락의 색조를 띠고 있지만 보다 스산하고 차분한 느낌을 제공하고 있으며, 함께 공개된 연주 곡 'That's How Horses Are'의 경우 서정적인 부분이 유독 두드러졌다.

[Peaky Blinders]의 작업물들은 Thom Yorke와 Jonny Greenwood의 새로운 밴드 The Smile에 대한 정체가 드러난 직후에 발표됐는데, 때문에 The Smile의 곡 또한 [Peaky Blinders]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작품의 6시즌 마지막 에피소드인 'Lock and Key'에 The Smile의 장중한 'Pana-vision'이 사용되면서 극의 위대한 마침표를 찍는 역할을 해냈다. 'Pana-vision'의 오피셜 비디오 또한 [Peaky Blinders]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다. 참고로 The Smile은 올해 두 번째 정규 앨범 [Wall of Eyes]를 발표하고 6월부터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Thom Yorke가 야심 차게 제공하는 새로운 영화적 경험 [Confidenza]

The Smile의 활동으로 바쁜 사이 Thom Yorke가 새로운 영화음악을 담당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꽤나 부지런한 창작자임에 틀림이 없는 Thom Yorke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Suspiria]의 성공적인 결과물로 인해 그간 다수의 영화음악 의뢰 또한 들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의뢰들을 뒤로하고 결국 그가 선택한 영화는 이전 작 [Suspiria]의 Luca Guadagnino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이탈리아 출신 감독의 작업물이 됐다.

이탈리아의 중진 감독 Daniele Luchetti의 2024년도 영화 [Confidenza(영어 제목 'Trust')]는 국내에서도 번역된 [끈]의 소설가 Domenico Starnone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2024년 1월 무렵 Thom Yorke가 [Confidenza]의 영화음악을 담당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4월 초에는 1분 길이의 영화 예고편이 공개됐다. 예고편에서는 대사보다 Thom Yorke의 음악이 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감독 또한 대본을 작업할 당시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말하는 것 이상으로 강력하다는 사실을 담으려 했다고 언급한 만큼 Thom Yorke의 음악이 무척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감독은 [Confidenza]에서 언어적 소통보다는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강조하려 했다. Thom Yorke 또한 이에 대해 즉시 이해했다며 감독은 덧붙였다. 긴장감을 조성하는 동시에 캐릭터의 두려움을 우스꽝스러운 형태로 만드는 방식을 찾았으며 오히려 Thom Yorke의 창의성은 감독의 욕망을 넘어서기도 했다고 한다. 감독은 영화음악 작업에 대한 Thom Yorke의 세심함과 정확성 또한 극찬했다.

[Confidenza]는 이탈리아 로마를 배경으로 고등학교 교사 피에트로가 과거 자신의 학생 테레사와 불륜 관계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는 자신의 약점에서 벗어나 결국 가면이 벗겨지는 것을 바랄 수밖에 없는 현대 남성의 초상을 그린다. 영화는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에서 초연했으며 4월 24일 이탈리아에서 개봉한다. Thom Yorke가 담당한 사운드트랙은 4월 26일 디지털로 발매되고 7월 12일에 바이닐 포맷과 CD가 발매될 예정이다. 유화풍의 커버 아트웍이 무척 아름답기 때문에 바이닐 레코드를 구매하는 것 또한 추천할 만하다.

The Smile의 작업 당시 색소폰을 담당했던 Robert Stillman, The Smile의 드러머 Tom Skinner, 그리고 Radiohead와 The Smile의 앨범은 물론 [Suspiria]에서도 함께했던 지휘자 Hugh Brunt와 런던 컨템포러리 오케스트라(LCO)가 [Confidenza]의 음악 작업에 합류했다. 참여 진만으로 보면 The Smile 프로젝트의 연장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Knife Edge

앨범에 수록된 가사가 있는 두 곡 중 하나로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들인 Elio Germano와 Federica Rosellini가 비디오에 등장한다. 예고편에서도 잠시 들을 수 있는 심플한 피아노를 베이스로 Thom Yorke의 연약한 가성이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상기시켜주는 곡은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사운드 디자인 사이 절박한 상황 속에서 갈등하는 내용의 가사를 담아냈다. 이 곡의 비디오와 함께 컨템포러리 재즈 풍의 'Prize Giving' 또한 동시에 공개됐다.

Four Ways In Time

최초로 공개된 영화의 예고편 마지막 부분에도 흘러나왔던 트랙. 스산하고 비극적인 오케스트라 연주 위로 Thom Yorke의 스산한 목소리는 마치 폭풍 전의 고요처럼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어느 인터넷 유저가 영화제 상영 당시 영화 마지막 엔드 크레딧이 올라갈 때 직접 곡을 녹음한 파일이 미리 돌기도 했다.

앨범의 첫 트랙 'The Big City'는 지난 2월 The Smile의 BBC 6 Music 'Artist in Residence' 시리즈 플레이리스트에서 미리 공개됐던 곡으로, 미니멀한 전자 효과음은 [Tomorrows Modern Boxes] 시기의 Thom Yorke를 떠올리게끔 한다. 관악기들을 중심으로 신비한 듯 은은하게 흘러가는 'Letting Down Gently', 곧바로 이어지는 긴 호흡의 클라리넷 연주가 두드러지는 'Secret Clarinet', 그리고 'Nosebleed Nuptials'의 앞부분이나 'Bunch of Flowers'의 경우 Radiohead의 'Life In a Glasshouse'의 브라스 파트를 연상시키게 만든다. 불길한 드론 트랙 'In The Trees'와 'Nosebleed Nuptials'의 후반부 경우 예고편에서도 확인 가능했다.

미니멀한 노트로 점차 고조되어가는 'A Silent Scream', 그리고 타이틀 트랙 'Confidenza' 같은 스코어의 경우 마치 비명을 지르는 듯한 현악기 피치카토를 뒤섞어 놓았으며, 프리 재즈처럼 귀결되는 'On The Ledge' 또한 Thom Yorke의 실험적인 측면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게끔 유도한다. 부조화한 방향으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방식은 공포나 스릴러식 문법이라기보다는 혼란스러운 심상의 구현에 더 가깝다는 인상이다.

불협화음이 다방면으로 감지됨에도 어떤 우아함을 유지하고 있다. 특정한 비주얼을 마주하지 않았음에도 Thom Yorke가 불러일으키는 분위기는 기존 영화음악가들의 작업물과는 분명 차별화된다. 이미 영화음악가로서 큰 성공을 거둔 Jonny Greenwood와는 별개의 특별한 노선을 개척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극도로 초조하게 만드는 Thom Yorke의 사운드 디자인은 영혼마저 얼얼하게 만드는데, 오히려 가창이 없는 트랙들에서 그 진가가 발휘되는 듯싶다. 물론 그의 가창곡들 또한 마치 유령처럼 오케스트레이션 위로 스며들면서 결코 잊히지 않는 이미지를 선사한다. 수십년간 전설적인 경력을 쌓아온 Thom Yorke에게도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면이 있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만 여전히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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