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우리 시대에 재즈는 '재즈 같은 무언가'로 인식된다고요. 재즈풍의 코드, 재즈적인 분위기, 갈수록 재즈는 재즈 그 자체로 조명되기보다는 재즈적이고 싶은 다른 장르의 친구로 더 익숙해진 느낌입니다. 확실히 재즈만큼 다른 장르에 잘 스며드는 음악도 또 없으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 있게 재즈라 부를 수 있는 음악을 점점 만나기 힘든 현실이 종종 아쉽기도 합니다. 재즈 부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다만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면, 삶의 어느 지점에서 여러분 또한 재즈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이상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날이 기왕 찾아온다면 오늘이면 더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서요.
그의 음악을 오랫동안 들어오셨던 분은 이 보컬리스트가 한동안 혜원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음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트럼펫터 이주한과 함께 했던 밴드 윈터플레이 활동으로 본격적으로 알린 이후 활동명을 MOON (혜원)으로 변경하고 솔로 활동을 시작, 지난 2018년과 2019년, 앨범 [Kiss Me]와 [Tenderly]를 세계적인 레이블인 버브(Verve)에서 발매하는 등 MOON (혜원)은 국내는 물론 재즈 기반이 본토인 미국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에서 그 이름을 널리 인정받게 됩니다.
이번에 발매되는 앨범 [Midnight Sun] 또한 MOON (혜원)의 음악을 사랑하는 일본 음악계의 애정이 돋보이는 앨범이기도 합니다. 이번 작업을 함께한 인물은 거의 독학으로 재즈를 공부해 1970년대부터 일본과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며 그 이름을 알렸던 피아니스트 츠요시 야마모토(Tsuyoshi Yamamoto). 이 전설적인 피아니스트가 이끄는 트리오와 함께 MOON (혜원)은 그의 솔로 활동의 또 다른 챕터를 열었습니다.
MOON (혜원)의 이번 앨범 [Midnight Sun]은 앞서도 언급했듯 츠요시 야마모토와 그의 피아노 트리오가 목소리를 받쳐주고 있습니다. 그리 무리하지 않는 베이스와 드럼, 부드러운 음색을 들려주는 피아노. 피아노 트리오가 들려줄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사운드 사이를 MOON (혜원)의 보컬은 편안하게 유영합니다.
첫 곡 'I Let a Song Go Out of My Heart'로 산뜻한 인사를 건넨 혜원과 츠요시 야마모토 트리오는 앨범의 타이틀곡인 'Midnight Sun'으로 슬쩍 넘어가 한껏 나른해지더니 'In the Middle of a Kiss'에서는 평소에는 말하기 어려울 깊은 감정을 우아한 방식으로 들려줍니다.
이어지는 세 곡은 잘 알려진 스탠더드 넘버들. 익숙한 멜로디에서 낯섦을 찾는 'Autumn Leaves'에 이어지는 'Misty', 'Send in the Clowns'에서는 맑게 울리는 MOON (혜원)의 단정한 목소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제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가 봅시다. 느린 인트로로 시작해 제 템포를 찾는 'I Didn't Know What Time It Was'와 여유로운 템포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Girl Talk' 뒤로는 'I Got It Bad and That Ain't Good'이 좋은 분위기 속에서 쉬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가볍게 도발하는 듯한 리듬으로 시작하는 트랙인 'Look to the Moon'은 MOON (혜원)이 작사, 작곡했기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곡입니다.
밤으로 녹아드는 듯한 부드러운 넘버 'A Cottage for Sale'과 가볍게 들뜨는 리듬의 'Twisted'가 이어진 뒤 앨범은 마지막을 노래할 준비를 합니다. 'You Do Something to Me'. 앨범의 끝을 즐겁게 마무리 짓기 위해 리듬이 분위기를 한껏 띄우는 가운데도 결코 품위를 잃지 않는 MOON (혜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좋아하는 밤을 오늘, 더욱 부드러운 방식으로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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