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음악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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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음악을 사랑해

2024.06.19
Special

밤은 음악을 사랑해

밤에 듣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확실히 밤에 듣는 음악은 달라'라고 이야기한다면 감정 과잉처럼 비칠까요? 그런데 이 시간에 음악을 들으면 소리의 폭과 밀도가 넓어지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곤 합니다. 아마 공기의 흐름이 변하면서 음악의 울림이 더욱 커진 덕분이겠지요. 달라진 공기가 음악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을 알기에 더욱 신중하고 싶은 마음. 오늘은 낮보다 밤을 사랑하는 분들을 위해, 밤에 듣는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음악을 가지고 왔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 그 시간을 온전하게 만들어줄 음악과 함께 여름밤을 함께 건너가 보아요.

아직 해는 지지 않았지만

저녁 여덟 시가 되어도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해를 볼 수 있는 요즈음.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조금씩 연해지기 시작할 때의 오묘한 기분을 최근 들어 자주 느끼고 있습니다.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Diana Damrau)가 부르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4개의 마지막 노래'에는 바로 이 순간, 해 질 녘 같은 네 곡의 가곡이 담겨 있습니다. 생기 있는 첫 곡 '봄'부터 시작해 후반부의 호른 솔로가 아름다운 두 번째 곡 '9월', 중반부의 바이올린 솔로가 은은하게 빛나는 세 번째 곡 '잠들 무렵', 그리고 그야말로 저무는 하루의 끝자락처럼 장엄하게 울리는 마지막 곡 '저녁 노을'이 오늘의 석양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줍니다.

곡리스트 15

보다 차분한 저녁 시간이 필요한 분들에게는 튀르키예 출신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파질 세이(Fazil Say)의 신보 [Evening]이 좋겠습니다. 드뷔시와 사티, 그리고 쇼팽의 작품처럼 저녁 공기와 어울리는 피아노 연주가 여러분의 공간을 더욱 밀도 있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일해요, 음악과 함께

쾌적한 작업을 위한 적절한 노동요 선택은 언제나 중요하지요. 마침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Alexandre Tharaud)가 고요한 밤을 적절한 열기로 채워줄, 밤과 함께 하기 좋은 앨범을 최근 발표했습니다.

곡리스트 22

이번 신보 [Four Hands]에서 그동안 알고 지냈던 음악계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아 피아노 옆에 앉힌 알렉상드르 타로. 브루스 리우(Bruce Liu), 베아트리체 라나(Beatrice Rana), 베르트랑 샤마유(Bertrand Chamayou) 같은 피아니스트는 물론, 본업이 피아니스트가 아닌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Gautier Capucon)과 카운터테너 필리프 자루스키(Philippe Jaroussky) 또한 타로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군요. 아마 이들의 피아노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건 이 앨범이 유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심각하지 않은, 그렇다고 해서 가볍지도 않은 피아노 연주들로 가득 차 있는 앨범 [Four Hands]의 음악이 오늘 밤에도 바쁠 여러분의 능률을 챙겨줄 것입니다.

이제는 나만의 시간으로

해야 할 일을 끝낸 이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물론 온전히 나만을 위해 쓰는 시간에도 음악은 중요합니다.

밤의 기운을 온전히 머금었다고 해야 할까요? 밤에 듣는 하프 소리는 아주 특별한 울림을 전하곤 합니다. 그리고 여기 소개하는 하피스트 마르쿠스 클린코(Markus Klinko)의 프랑스 음악 연주곡집은 여러분이 원하는 밤의 풍경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고요. 드뷔시의 '아라베스크'와 사티의 '짐노페디'는 마치 원곡처럼 들릴 정도로 하프라는 악기와 궁합이 잘 맞아떨어지네요.

플루트처럼 밝은 음색의 악기는 아무래도 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그 또한 음악 나름. 최근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Emmanuel Pahud)가 발매한 모차르트 작품집에는 맑은 밤과 어울리는 작품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플루트를 위한 버전으로 편곡해 연주한 '바이올린 소나타 마단조 K. 304'. 오늘 밤은 악기가 달라져도 여전히 아름다운 2악장으로 장식해 봅시다.

오늘을 마무리합니다

종일 음악을 듣는 저 같은 사람들은 하루를 마무리할 때도 음악을 이용하곤 합니다. 평소보다 긴 밤을 보낸 오늘 같은 날에는 마지막을 함께할 음악 선택에도 신중을 기울이는 편이고요. 특히나 몸에 쌓인 피로와 감정들이 상당하다면, 소란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음악을 골라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릴 앨범, 리오피(RIOPY)의 [Meditation 333]의 수록곡은 딱 3곡. 그것도 동일한 주제가 약간씩 변주되기에 실질적으로 한 곡처럼 들리는 음악은 신기할 정도로 듣는 사람의 기분을 편안하게 내려놓습니다. 마치 하루를 마무리할 때 쓰시라고 쓴 곡처럼 말이죠. 이제는 길었던 하루와 인사할 시간, 다시 맞이할 내일을 위해, 오늘의 나를 잘 재워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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