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 쓰는 편지, Liana Flores의 [Flower of the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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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서 쓰는 편지, Liana Flores의 [Flower of the soul]

2024.07.02
Special

먼 곳에서 쓰는 편지, Liana Flores의 [Flower of the soul]

영국 노퍽주의 작은 마을에서 보내던 시절들을 여전히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고향이 아니었다면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한가롭던 10대 후반에는 보사노바 덕분에 어머니의 고향을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으로부터 거의 1만 km나 떨어진, 브라질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기타를 잡은 것도 그즈음이었죠.

음악이 너무 좋아진 나머지 ‘이걸 진지하게 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두 장의 EP도 발매했습니다. 그 후 찾아온 오랜 망설임의 시간. 음악 곁에 있는 게 좋았지만 자신은 없었기에, 나 자신을 제대로 내보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대학교에 진학해 한동안은 학업에 힘썼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온전한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Liana Flores는 천천히 음악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꽃으로 쓴 음악, [Flower of the soul]

위대한 아티스트이자 보사노바의 거인 Joao Gilberto와 Antonio Carlos Jobim이 그들의 걸작을 발표했던 레이블에서 데뷔 앨범을 발매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 2024년 4월, 버브 레코드는 Liana Flores와 전속계약을 맺었다는 뉴스를 발표합니다. 아직 젊기에,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원래 그렇기에 인생의 구체적인 방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Liana Flores는 그저 가진 것을 잘 담아낸다는 마음으로 데뷔 앨범 작업에 임합니다.

이번에 발매된 버브 데뷔 앨범 [Flower of the soul]은 이제 2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이 아티스트가 그동안 어떤 음악의 영향력 아래서 지내왔는지를 선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Liana Flores는 재즈와 포크, 그리고 보사노바가 적절하게 섞어 만든 음악 위에서 자연과 환상, 사랑과 상실의 감정을 노래합니다.

가볍게 흩날리는 플루트 소리가 살랑이는 목소리와 어울리는 첫 곡 'Hello again'이후 이어지는 트랙인 'Orange-coloured day'는 제목 그대로 꽃잎으로 주변을 물들인듯한 색채감이 느껴지는 곡입니다. 다채로운 악기들이 서로의 음색을 적절하게 섞는 가운데 꽃처럼 피어오르는 Liana Flores의 음색은 마지막에 이르러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모습을 감추어 버리네요.

분위기를 조금 달리하는 세 번째 곡인 'Nightvisions'에는 제인 에어, 레베카, 가위손, 트와일라잇과 오페라의 유령까지. 플로레스가 오래전부터 좋아해 왔던 고딕 로맨스의 영향력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동부 해안에서 보냈던 대학 시절을 시간을 추억하며 쓴 'Crystalline'는 마치 그곳에서의 산책처럼 유유하게 흐릅니다. 어느덧 현악기의 쌉싸름한 소리를 뒤에 두고 기타 줄을 만지작거리며 노래하는 'Now and then'과 다시 가벼운 리듬감을 만들어낸 뒤 페이드 아웃으로 사라지는 'Halfway heart'까지 도달하면 앨범의 반을 함께한 셈입니다.

어느 밤 찾아온 멜로디를 붙잡고

진정한 내향인을 위한 음악. Liana Flores의 앨범을 듣는 동안 떠오른 생각입니다. 혼자 있는 것의 의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음악들을 지나고 또 지나다 보면 앨범을 듣는 ‘나’ 또한 선명해지는 느낌입니다. 어느덧 다시금 시작되는 음악, 해프닝처럼 짧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When the sun…”'뒤로 반짝이듯이 시작하는 앨범의 타이틀 트랙이자 더욱이 특별한 성취로 기억될 'I wish for the rain'이 시작합니다. Liana Flores는 이 곡을 썼던 어느 가을밤을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매주 열리던 잼 세션에 여느 때처럼 참여했을 때, 불현듯 머리를 스친 악상. 그날의 할 일이 모두 끝난 이후에도 남아 있던 멜로디를 붙잡아 만든 곡이 바로 이 'I wish for the rain'입니다.

뒤잇는 트랙인 'Cuckoo'는 아티스트의 오랜 우상이었던 Caetano Veloso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에는 언제나 망설이는 사람의 마음이 녹아 있습니다. 그리고 앨범의 또 다른, 조용한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곡이 시작합니다. 'Butterfiles'는 브라질의 뮤지션인 팀 베르나지스와 함께 화음을 맞춘 노래이자 이번 앨범에서 가장 브라질과 가까이 닿아 있는 분위기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음악을 쓸 당시 Liana Flores는 런던에 있었지만요.

멀지만 가까운 음악 친구와의 시간을 보낸 이후 Liana Flores는 다시 혼자가 됩니다. 'Slowly'. 첫 앨범부터 힘을 들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아니, 애초에 그럴 수도 없었고요. 조용히 만남을 시작해 서로가 원래 있던 곳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지막이 연주되는 기타 소리와 함께 깃털처럼 가벼운, 그러나 진지한 음성을 흩날리는 Liana Flores가 여러분에게 다음을 기약하는 인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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