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비춘 창이자 문화예술계의 큰 어른. 김민기

트렌드 클리핑

시대를 비춘 창이자 문화예술계의 큰 어른. 김민기

2024.07.23
Special

김민기 (1951~2024)

어느 분야에서든 그 이름만으로 상징성을 갖는, 태산 같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한국 문화예술계에서는 김민기의 이름이 그런 위치에 있습니다. 새 노래가 나오지 않은지 30년이 넘었지만, 그는 가수이자 작곡가로 현대사의 굵직한 순간마다 늘 회자되어 왔습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이 된 노래, '아침 이슬'

이미지 | 영화 '1987' 포스터

장준환 감독이 만든 '1987'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1987년 6.10 민주항쟁의 계기였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그리고 이 항쟁을 전국으로 퍼트린 '이한열 최루탄 피격 사망 사건'을 다룬 영화입니다.

군사독재정권에 전국민이 격렬히 반발하던 이 시기, 사람들 사이로 가장 열렬하게 퍼져 나온 노래가 바로 김민기가 만든 '아침 이슬'입니다. 덕분에 '아침 이슬'은 지금도 6월항쟁의 상징적인 노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한편 대통령 탄핵과 파면이라는 한국 정치사 초유의 사건이 있던 2017년. 이 시기에도 광화문에서는 백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 '아침 이슬'을 불렀습니다. 약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노래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굵직한 순간마다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노래로 쓰여 왔습니다.

국민적인 민중가요가 된 금지곡

흥미로운 사실은 '아침 이슬'이 원래 민중가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곡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과거 김민기가 JTBC와 가진 인터뷰에 따르면, 김민기가 상정한 곡의 화자는 원래 '나'가 아니라 예수나 석가 같은 성자로서의 '그'였다고 하지요.

다만 가사를 '그'가 아닌 '나'로 바꿨을 때 곡 작업이 수월히 진행됐기 때문에 이런 가사가 나왔다고 하는데요. 때문에 이 곡이 이렇게 저항적인 의미로 사랑 받을 줄은 김민기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합니다.

원래 이 곡은 1971년에 발매된 이후, '가사가 불순하다'는 이유로 1975년 금지곡 처분을 받고 상업적으로 실패한 노래였습니다. 하지만 독재정권 하에서 민주화를 꿈꾼 대학생들이 애청하고, 따라 부른 것을 계기로 결국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가질 수 있었죠. 그의 노래는 그의 인생만큼이나 파란만장했습니다.

'상록수'로 IMF 시기를 위로하다

1998년에는 공익광고를 통해 그의 노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외환위기로 인해 모두가 힘들었을 당시, 그가 쓰고 양희은이 부른 '상록수'가 대한민국 건국 50주년 공익광고 CF에 쓰인 것인데요. 이 곡은 맨발로 분투하던 프로 골퍼, 박세리의 모습과 함께 쓰이며 당대의 국민적 희망가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상록수' 또한 애초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곡은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 축가로 계획했던 곡이라고 하는데요. 역시 독재정권 하에 금지곡으로 낙인 찍히는 바람에 오히려 또 다른 생명력을 가질 수 있던 곡이라고 하겠습니다.

대중문화예술인의 산실, 학전

이미지 | 김광석

앞서 언급했듯, 한국 현대사에서는 중요한 순간마다 그의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인 궤를 넘어, 지금까지도 문화예술계의 인사 모두가 그에게 존경을 보내는 이유는 그가 이후 세대의 주축을 이룬 문화예술인들을 대거 양성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겁니다.

그는 1991년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을 개관하고, 수많은 신인 배우와 가수들에게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황정민과 설경구가 세상에 나왔고, 또 김광석과 안치환이 알려졌습니다. 극단 학전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 그리고 학전 관련 인사들은 2023년 12월 작성된 아래 매거진을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앞것'들을 비춘 '뒷것'

그는 늘 자신을 '뒷것'이라 말했습니다. 반면 무대에 오르는 배우와 가수는 '앞것'이라 표현했지요. 꼭 그의 말처럼, 그는 인생 후반기의 시간을 무대 뒤에서 무대 앞 후배들을 비추는 데 애썼습니다. 운영비에 쪼들리면서도, 그는 일생의 마지막 불꽃을 학전 운영에 태웠습니다. 학전은 올해 3월 14일 폐관했습니다.

2024년 7월 21일, 그의 부고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2023년 말 투병 소식이 전해지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김민기는 시대에 위로를 건넨 음악인이었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른다운 참 어른이었으며, 한국 현대사를 비춘 창이자,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진 음악인이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연관 아티스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