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를 디자인하다, 블루노트의 앨범 아트

블루노트는 85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풍파 속에서도 '재즈의 현재'라는 정체성을 놓치지 않은 레이블입니다. '타협하지 않는 표현'은 블루노트가 1939년부터 언급한 표어였고, 이는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레이블 운영, 심지어는 앨범 아트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번에는 동시대의 감각에서 몇 발자국 더 나아가며 놀라움을 줬던 블루노트의 앨범 아트와 음악을 고루 살펴보려고 합니다.

Alfred Lion이 1939년 블루노트를 창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인 베를린에서부터 친구로 지낸 Francis Wolff가 합류합니다. Francis Wolff는 회사의 재정을 집중적으로 맡았고 종종 레코딩 세션을 감독하기도 했는데요. 그런 그가 중요하게 남긴 것은 바로 아티스트들의 사진입니다. 주로 리허설 때 촬영한 사진들은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앨범 아트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레이블 초반에는 Paul Bacon이나 John Hermansader의 앨범 아트 작업에서 그가 찍은 사진이 등장하는데요. 대표적으로는 The Jazz Messengers의 [At The Cafe Bohemia Vol. 1](1955)이 있습니다. 압도적인 크기의 타이포그래피와 그 아래를 받치고 있는 아티스트들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이후 블루노트의 상징적인 앨범 아트들을 만들어 낸 디자이너가 등장하는데요. 바로 Reid Miles입니다. Reid Miles는 블루노트가 1950년대 중반 12인치 LP를 발매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합류하여 앨범 아트를 만들었습니다. (그전에는 앞서 언급한 Hermansader와 함께 앨범 아트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의 첫 단독 작업은 비브라폰 연주자 Milt Jackson과 피아노 연주자 Thelonious Monk의 퀸텟이 함께한 [Milt Jackson and the Thelonious Monk Quintet](1956)이었습니다. 빨갛게 채색된 연주자들의 사진과 비브라폰의 음을 연상시키는 동그란 점들은 음악을 듣기 전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죠.

블루노트를 대표하는 앨범 중 하나인 기타 연주자 Grant Green의 [Idle Moments](1963) 역시 음악뿐만 아니라 앨범 아트도 주목받았습니다. Reid Miles는 Francis Wolff가 찍은 Grant Green의 상반신 사진을 과감하게 잘라내어 그가 기타를 연주하는 손만 활용하여 앨범 아트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과감함은 종종 논쟁의 대상이 되곤 했지만 사람들의 기억에 깊게 자리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명실상부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 John Coltrane이 블루노트에서 리더로 녹음한 유일한 음반인 [Blue Train](1958) 역시 Francis Wolff의 사진과 Reid Miles의 디자인이 함께합니다. 동료 연주자들이나 트랙에 대한 정보가 일체 들어가 있지 않은, 오직 John Coltrane의 이름과 앨범 제목, 앨범 넘버링만 적혀있는 간결함은 그것만으로도 앨범에 대한 소개가 충분하다는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흥미로운 기록도 있는데요. Reid Miles는 자신의 일거리를 친구였던 Andy Warhol에게 나눠 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블루노트에는 Andy Warhol이 디자인에 참여한 앨범도 몇 장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는 기타 연주자 Kenny Burrell의 아티스트 동명의 앨범 [Kenny Burrell](1957)이 있습니다. 채색 없이 선으로만 이뤄져 있는 그림의 단순하지만 명확한 표현이 밝은 레터링과 어우러지면서 앨범 아트인지 아니면 정말 '작품'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일러스트 한 편에 Andy Warhol의 서명은 덤입니다).

이처럼 Reid Miles와 Francis Wolff를 중심으로 한 앨범 아트는 레이블의 정체성과 독창성을 동시에 보여주며 블루노트의 상징처럼, 나아가 한 시대의 재즈에 대한 상징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Miles와 Wolff, 이들이야말로 재즈의 핵심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낸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 아닐까요? 소개해 드린 앨범과 함께 눈과 귀가 동시에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