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볼 수 없어도 - 츠지이 노부유키(TSUJII NOBUYUKI)가 연주하는 러시아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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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볼 수 없어도 - 츠지이 노부유키(TSUJII NOBUYUKI)가 연주하는 러시아 음악

2026.02.10
Special

눈으로 볼 수 없어도 - 츠지이 노부유키(TSUJII NOBUYUKI)가 연주하는 러시아 음악

최근 어느 시각장애인이 쓴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계획했던 수술이 실패로 돌아가 결국 어린 나이에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그는 한때 볼 수 있었던 사람으로 보지 못하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지금의 그는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극복이라는 말을 쉽게 입에 올릴 수 없는 이유는 한번 생긴 장애가 여전히 나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 어릴 때부터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음악가가 있습니다. 일본의 피아니스트 츠지이 노부유키(TSUJII NOBUYUKI)는 시력이라는 것을 유지하고 있거나, 한 번이라도 본다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던지지 못할 질문을 합니다. 어린 시절 노부유키는 어머니에게 '바람은 무슨 색깔인가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피아니스트 츠지이 노부유키의 커리어는 극복이나 성공이라는 단어로 묘사될 것이 아닙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어진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과, 왼손과 오른손을 따로 녹음한 테이프를 준비해 학습을 도운 스승, 그리고 전세계를 함께 돌아다니는 매니저까지. 노부유키는 이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자신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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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중심에는 음악을 사랑하고 그 마음을 꾸준히 가꾸어 나간 노부유키 자신의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2024년 있었던 노부유키의 도이치 그라모폰 전속 계약 소식은 제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 소식 이후 머지않아 발매된 베토벤 작품집에서 그는 이번 계약이 단순히 장애가 있는 인간의 성공 신화가 아님을 뛰어난 연주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편곡 작품의 즐거움 –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

[Rachmaninoff • Tchaikovsky]. 이번에 노부유키가 새롭게 발표한 앨범의 타이틀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두 작곡가는 우리나라에서도 대단한 사랑을 받고 있는 음악가들입니다. 독일,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들 못지않게 피아노를 위한 걸작을 여럿 남겼던 러시아 작곡가들이었기에 노부유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을 연주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노부유키가 고른 작품들의 면면은 다소 독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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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의 숨은 타이틀은 바로 '편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앨범의 첫 곡부터가 편곡 작품입니다. 노부유키가 먼저 들려주는 작품은 겨울의 스테디셀러인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 본래 이 곡은 잘 알려진 대로 발레를 위해 쓰인 곡이지만 후에 작곡가가 이를 관현악 모음곡으로 다시 선보이면서 콘서트홀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태생이 관현악곡이었던 이 작품을 피아노를 위해 편곡한 인물은 피아니스트 미하일 플레트네프. 피아노와 관현악에 대한 이해가 남다른 인물의 편곡을 통해 듣는 '호두까기 인형'이 원작과는 다른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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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잇는 곡들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와 관련된 편곡 작품들입니다. 가곡인 '라일락 Op. 21 No. 5'을 작곡가가 피아노 독주용으로 편곡한 버전과, 피아니스트 아르카디 볼로도스가 편곡한 가곡 '이곳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Op. 21 No. 7',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편곡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앨런 리처드슨이 편곡한 '보칼리제'까지. 풍부한 표현력과 아찔한 기교, 아련한 분위기를 넘나드는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을 츠지이 노부유키는 다양한 편곡들로 준비해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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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수록된 작품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 장식합니다. 악단의 상임지휘자인 도밍고 힌도얀이 지휘하는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이 협주곡을 협연한 츠지이 노부유키. 가장 어려운 피아노 협주곡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 이 작품을 노부유키는 전세계 수많은 곳에서 연주해 왔습니다. 탄탄한 테크닉과 맑은 음색, 직선적이면서도 순간순간의 미묘한 뉘앙스를 잘 살리는 노부유키의 연주 스타일은 이번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연주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1악장의 절정을 장식하는 긴 카덴차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2악장에서의 연주, 그리고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마지막 3악장까지. 장대한 서사시처럼 이어지는 라흐마니노프 연주를 통해 노부유키는 말합니다.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세상이 여기 펼쳐져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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