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50년, 그리고 김창완의 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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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50년, 그리고 김창완의 70년

2026.02.10
Special

산울림 50년, 그리고 김창완의 70년

당대를 함께 활동했던 음악가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일이었다고 회고합니다. 음악적 프로페셔널리즘이 중요했던 시대에, 노래 실력도 연주력도 아마추어처럼 보이는 밴드가 청춘들의 인기를 얻고 있었으니 말이죠. 그것은 기성 음악의 테두리 바깥에 있던 소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산울림의 등장은 한국 대중음악의 감각과 흐름을 바꾼, 일종의 사건이었습니다.

1977년의 문제적 데뷔작

산울림은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삼형제로 결성된 밴드입니다. 1977년에 나온 이들의 1집은 '한국 대중음악 사상 가장 문제적인 데뷔앨범'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평을 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1970년대 중반 대중음악계에는 어둠이 짙게 내리깔려 있었습니다. 대마초 파동으로 인해 밴드들이 사라지고, 젊은 층이 향유하는 대중음악도 없어진 시기였죠. 빈자리를 채운 것은 젊은이들의 음악이 아닌, 어른들의 트로트였습니다.

산울림은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타파하고 나온 대학가 밴드였습니다. 이를테면 '다시 만난 젊음의 소리'였다고 할까요? 게다가 음악도 신선했습니다. 이들은 영미 록의 계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1960년대의 유산인 사이키델릭을 섞고, 문학적인 가사는 물론 동요의 영역까지 끌어온 독보적인 스타일의 음악을 들려줬습니다. 그를 담아낸 것이 아직 설익은 연주력이었고요.

때문에 이들의 음악은 기존의 연주력과 보컬 중심의 프로페셔널리즘과는 아예 다른 세계관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후대의 인디 록 밴드들, 그리고 로파이 미학을 앞세운 음악가들이 산울림의 음악적 영향력 아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입니다.

커리어의 명반 퍼레이드

산울림은 1977년 1집부터 1997년 13집을 냈습니다. 여기에 동요 앨범 네 장을 포함하면 총 열 일곱 장의 정규 앨범을 남겼죠.

삼형제가 모두 참여한 1, 2, 3집은 산울림를 대표하는 커리어로 손꼽힙니다. 1집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는 '꼭 그렇진 않았지만 구름 위에 뜬 기분이었어'라는 김창완 특유의 구어체 작사법을 읽을 수 있으며, 김창훈이 샌드 페블즈에게 선물한 곡이자 7080세대의 송가인 '나 어떡해', 지글대는 한국형 사이키델리아를 보여준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거친 김창훈의 보컬과 강렬한 연주의 파격이 있던 '내 마음 (내 마음은 황무지)' 등 많은 트랙들이 주목받았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후대 뮤지션들에게도 커버되며 지금까지도 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곡리스트 4

4~6집은 동생들의 군입대로 인한 공백을 장남 김창완이 메꾼 시기입니다. 4집은 음반사의 발매요청에 못 이겨 김창완이 그동안의 외부 곡들을 긁어모아 컴필레이션화하여 낸 앨범이며, 5집은 동생들이 휴가를 나올 때마다 짬짬이 녹음해 만든 앨범이었죠. 6집은 아예 김창완의 솔로였습니다. 과도기적 시기의 앨범들이었던 관계로 이전 앨범들만큼의 호응은 없었지만, 그중 6집의 '창문넘어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는 대중적 인기를 얻었습니다.

곡리스트 4

7~9집 활동기는 전역 후 다시 모인 삼형제가 제 2의 전성기를 이끈 시기입니다. 7집에서는 '독백'과 '청춘', 8집에서는 '내게 사랑은 너무 써'와 '회상' 같은 서정적인 곡들이 나왔고, 9집에서는 로킹한 트랙들이 주로 포진되어 있어 이들의 초기 커리어를 연상하게 했는데요. 이 시기, 형제들의 연주합은 다시 한 번 정점의 폼을 보여줬습니다.

곡리스트 4

10~12집의 기간은 두 동생들이 각자의 사업으로 인해 음악에 참여를 잘 하지 못했던 시기입니다. 위기의 시간에 산울림의 이름을 계승한 것은 역시 김창완이었습니다. '너의 의미'로 잘 알려진 10집, '비'라는 주제로 전체 콘셉트를 설계한 11집에는 김창훈의 참여 흔적이 조금이나마 있지만, 12집은 김창완이 혼자 힘으로 앨범을 만들며 외롭게 커리어를 쌓아갔습니다.

곡리스트 4

1997년. 다시 의기투합한 삼형제는 사이키델릭 록으로 회귀하며 초창기의 실험성과 후기의 서정성을 함께 담아내는 작업을 감행했습니다.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와 '무지개'가 각 영역을 대표하는 노래입니다. 커리어의 막바지에서, 이들은 우리에게 처음 들려준 생경한 감각을 다시 꺼내 들며 그룹의 서사를 스스로 마무리했습니다.

곡리스트 2

그리고 김창완의 이야기

삼형제의 음악은 13집을 마지막으로 들을 수 없었습니다. 2008년, 드러머이자 막내인 김창익이 눈길에 지게차가 넘어지는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입니다. 이후부터 지금까지 산울림이라는 이름으로는 단 하나의 신규 음원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때문에 김창완에게 '산울림 50주년'이라는 말은 기념일이라기보다는 비극을 환기시키는 시간에 가까울지 모릅니다. 그는 최근 데뷔 50주년 소회를 묻는 자리에서도 '막내가 떠난 후 산울림 50주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속내를 밝힌 바 있습니다. 그리고는 '대신 김창완밴드가 산울림의 음악과 유업을 이어가길 바란다'는 말을 꺼냈지요.

김창완 스스로가 언급했듯, 산울림의 정신적 유산은 김창완밴드가 이어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창완밴드의 시작은 비극의 해인 2008년 말에 아이러니한 앨범 제목으로 나온, [The Happiest]였습니다.

사랑하는 동생의 죽음으로 그는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원망하는 시기를 지나자, 스스로를 치유할 힘이 생겼다고 합니다. 동생을 데려간 지게차를 제목 그대로 쓴 'Forklift'는 슬픔에 매몰되어 있던 김창완을 김창완 스스로가 구원했다는 노래입니다.

한편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는 달관한 시선으로 위로를 줍니다. 이 곡에는 사람들 각자가 자기의 삶을 살길 바라는 그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곡리스트 2

우리 음악계에서 김창완밴드의 존재는 귀중합니다. 이들이 록 페스티벌과 단독 공연을 통해 음악 팬들을 꾸준히 만나고, 틈틈이 신곡들을 발표하며 '원로 록 뮤지션'에 안주하지 않는 활동을 이어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The happiest]를 시작으로 정규 앨범 [Bus]와 [용서] 등을 발표하며 포크와 사이키델릭, 펑크 록 등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2012년 [분홍굴착기]에서는 산울림 35주년을 기념해 그룹의 과거 곡들을 현대적인 밴드사운드와 편곡으로 재해석하는 면모를 보이기도 했는데요. 이는 김창완밴드가 산울림을 계승의 대상이자,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이후 오른 많은 무대들에서도 이들은 산울림의 음악을 현재형 밴드 사운드로 환기시키며 두 그룹, 그리고 구세대와 현세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톡톡이 하고 있습니다.

곡리스트 8

2026년, 김창완은 데뷔 50주년을 맞아 김창완밴드의 이름으로 새 싱글 'Seventy'를 발표하며 '산울림 50주년'이 아닌, '뮤지션 김창완의 70세'를 강조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복원하는 대신, 현재의 밴드와 함께 만든 신곡으로 자신의 일흔을 기념한 것인데요. 이런 태도 역시 김창완답습니다. 작품이 주는 원숙미와 가사 미학의 빼어남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요.

마치 아이들의 입을 빌려 어머니에게 전하는 고백 같은 '사랑해'에도 그의 철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내가 먼저 듣고 싶지만 먼저 해야 하는 말.' 참 어른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르침입니다.

곡리스트 2

김창완, 그리고 그의 음악을 통해 우리는 한 아티스트의 마르지 않는 창의력을 봐 왔습니다. 아마 앞으로의 시간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나간 산울림의 50년보다는, 지금을 살아가는 김창완의 일흔을 마주할 수 있어 기쁩니다. 여전히 할 말이 남아있는 참 어른, 가수 김창완의 50주년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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