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그 누구보다도 특별했던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음악과 발자취를 뒤돌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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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그 누구보다도 특별했던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음악과 발자취를 뒤돌아 보며...

2011.07.14

대부분의 사람들은 팝의 황제로 명성을 떨치던 전성기 시절의 마이클 잭슨에 대해 주로 기억하고있다. 어렸을 때부터 이미 스타였던 지라 사실 그의 인생에 전성기가 아닌 시절이란 존재하지 않는 게 맞을 터인데 솔로 커리어 기간의 그 전설 같은 활약상이 펼쳐지기 이전의 마이클 잭슨, 그리고 자신의 앨범 프로모션 이외의 과외 활동들을 짤막하게 되짚어볼까 한다.

1962년 인디애나에서 시작되어 R&B, 소울, 훵크 그리고 디스코를 아우르는 곡들을 연주하고 노래했던 가족밴드 '잭슨 5'는 1970년대 팝 뮤직의 가장 큰 현상 중 하나라는 평가를 얻어냈다. 잭슨가의 세 명의 형제는 아버지의 기타를 몰래 가져와 라디오에 맞춰 연주하다가 기타 줄을 끊어먹는데, 아버지 조 잭슨은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이들의 음악적 재능을 눈치채고 곧 음악활동을 시키기로 결심한다. 사실 결성 초기에는 마이클 잭슨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1년이 경과할 무렵 말론과 마이클이 가세했고 게다가 마이클은 리드보컬로 배치 되었다.
흑인이 창업한 최초의 레이블 모타운이 거대해져 가는데 밴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비틀즈의 [Let It Be]를 누르고 1위를 차지한 [ABC], 아직까지도 불려지고 있는 [I Want You Back], 그리고 무수하게 커버된 발라드 [I'll Be There]는 차트를 정복했고 이들은 보이밴드, 초기 아이돌의 성공적인 예로서 회자됐다. 물론 보시다시피 아이돌 시장은 여전히 전세계 어디에서도 건재하고 있다. 그들의 노래 또한 지속적으로 클럽의 플레이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고 있으며, 이 곡들은 수많은 DJ들에 의해 리믹스 되어지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은 이때부터 영화 [벤]의 사운드트랙과 함께 모타운 시기의 솔로 앨범들 또한 발표하기도 한다.

1968년부터 1975년까지 활동해왔던 모타운 시절 이후 20퍼센트의 인세율과 자율적인 프로듀스 권한을 인정해주기로 약속한 에픽(Epic)/CBS로 이적하면서 '잭슨즈'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이유는 모타운이 ‘잭슨 5’라는 상표권을 놔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타운의 창립자 베리 고디가 직접 인정했던 것처럼 자신이 대표로 재적할 당시 모타운에서 잭슨 5를 능가하는 상업적 성공을 거둔 아티스트가 없었기 때문에 쉽게 풀어주지 않은 듯싶다. 게다가 저매인 잭슨이 모타운에 잔류하면서 당시 14세인 랜디 잭슨이 가입하는 등의 멤버변동 또한 있었기 때문에 밴드는 직접적인 변화과정을 겪는다. 저메인 잭슨은 베리 고디의 딸 헤이젤 고디와 결혼한 상태였던 지라 차마 다른 레이블로 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잭슨 5의 모타운 후반기의 침체의 원인을 밴드 자체의 셀프 프로듀스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는 경우가 있었다. 심지어 모타운은 이들이 춤추는 것 때문에 무대 위에서 각자가 악기를 연주하는 것에도 반대의사를 표시하기도 했는데, 결국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프로듀스 할 수 있는 권한을 얻으면서 자연스럽게 더욱 많은 변화를 추구하게 됐다. 1976년도 셀프 타이틀을 시작으로 2백만장 이상을 판매한 [Destiny]와 [Triumph], 믹 재거가 함께하기도 했던 [Victory] 등의 앨범들은 꾸준히 성공가도를 이어갔다. 결국 밴드는 해체됐지만 2001년 9월 7일 마이클 잭슨의 솔로 30주년 기념 라이브에서 단 하룻동안 밴드가 재결성 되기도 한다. 모타운 당시의 앨범들은 총 1억장 이상을, 그리고 잭슨즈 기간의 앨범들 또한 3천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잭슨 5, 그리고 잭슨즈는 모든 아이돌 그룹의 발판이 됐다. 십대 층을 정면으로 겨냥한 쇼 엔터테인먼트가 비로소 이즈음에 하나의 완성된 '기획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또한 마이클 잭슨이라는 거대한 업적을 가진 인물이 탄생한 배경이 되기도 했는데, 이는 그룹에서 독립해 성공한 아티스트로 거듭난 수많은 케이스들-저스틴 팀버레이크, 비욘세와 같은-의 모범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 최연소 리드보컬
-5살의 나이에 그룹 잭슨파이브의 막내 마이클잭슨이 리드 보컬을 맡음
* 최연소 빌보드 넘버원
-당시 그의 나이 11세
-그룹이라는 이유로 정식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12살의 스티비 원더가 정식으로 올라있음.
* 그룹 역사상 처음으로 4곡이 연속으로 빌보드 1위에 오름
-잭슨파이브의 첫 데뷔 곡 I Want You Back 그리고 이어 발표한 ABC, The Love You Save, I'll Be There이 모두 연속으로 넘버원 기록
* 최연소의 나이로, 흑인 최초로 롤링스톤지 표지에 등장
-당시 그의 나이 13세
* 공중파 방송 최초로 선보인 브레이크 댄스
-74년 소울트레인에서 Dancing Machine을 부르면서 브레이크 댄스를 선보였다. 당시 만 16세
-그 이후 Dancing Machine 레코드는 매상 1위로 올랐고, 당시 브레이크 댄스를 유행시킨 장본인
*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앨범 Off The Wall
-1979년 발표한 Off The Wall의 성공으로 마이클잭슨은 성인 솔로가수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약 1000만장 판매. 당시 흑인 음반 중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기도 했다.
*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 Thriller
-1984년 Thriller는 사상 최고로 많이 팔린 앨범으로 인정 되었다.
-일주일 안에 100만장의 레코드 판매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37주간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기록
-판매량의 증가가 매우 급속했기 때문에 플래티넘 인증을 받은 후 거의 2년간 집계가 불가능
-플래티넘 인증을 받은 거의 1년 만에 20배로 불어남
-현재까지 약 1억400만장 기록
* 앨범 전체가 댄스 차트 1위
-Thriller앨범의 모든 트랙(총 9곡)이 댄스 차트 1위를 기록.
* 빌보드 싱글차트, 댄스차트, 블랙차트에서 동시에 1위를 한 최초의 곡
-Billie Jean은 당시 싱글차트와 댄스, 블랙차트에서 1위를 한 최초의 곡이다.
* 뮤직비디오 최초의 집단 댄스
-Beat It은 최초로 집단 댄스를 등장 시킨 뮤직비디오였고 이것은 오늘날 뮤직비디오의 고전이 됨.
* 뮤직비디오 최초로 35mm 필름으로 촬영
-극장 상영용 장편 영화에 쓰이는 필름
* MTV 사상 최초로 방영된 흑인 뮤직비디오
-당시 백인들의 Rock음악 중심으로 방영되던 MTV에서도 마이클잭슨의 뮤직비디오 Billie Jean을 틀 수밖에 없었다.
* 1984년 Grammy Awards 최다 부문 수상
-E.T 사운드 트랙까지 총 8부문을 수상
-이 기록은 1999년까지 유효
*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음악 비디오 The Making Of The Thriller
-약 100만장 가량이 팔림
-최초의 뮤직비디오 메이킹 필름. 메이킹 필름 개념의 시초
* MTV가 뽑은 사상 최고의 뮤직비디오 1위 Thriller
-그 외 많은 조사에서도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뮤직비디오
* 펩시콜라가 코카콜라의 수익을 넘어서게 한 최초의 스타
-84년과 86년
* 그 당시 가장 많은 액수를 받은 광고비를 받은 아티스트
-펩시로부터 천오백만 달러
* 앨범 Bad 발매 하자마자 전 세계 25개국에서 1위 기록
-오스트레일리아를 포함한 몇 개국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나라에서 1위를 했다.
* CBS 레코드 역사상 최다 예약 기록
-Bad 앨범 예약 판매만 225만장
* 한 앨범에서 5개의 1위곡 배출
-마이클잭슨의 87년작 Bad에서 I Just Can't Stop Loving You, Bad, The Way You Make Me Feel, Dirty Diana, Man In The Mirror 등 5개의 1위곡이 나왔다.
*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과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을 동시에 가졌던 유일한 스타.
-당시 Bad앨범이 스릴러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판매 기록을 세움으로써 한 가수의 앨범이 판매량 1~2위를 석권하는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 첫 공연 일본에서 9회분 공연티켓 25만장이 예매 한 시간 만에 매진
-그래서 5회 공연 추가 역시 매진
-총 45만장 판매
-이 후 88년 두 번째 일본 공연에서도 40만5천장 매진
-배드투어 일본에서만 총 85만 5천명 동원 (이전 일본기록의 4배)
-암표 가격 일본 최고의 기록
* Bad Tour... 세계에서 가장 큰 운동장인 웸블리스타디움에서 8회 연속 매진 기록
-미처 티켓을 구하지 못해 경기장 밖에서 관람한 사람들을 포함 해서 어마어마한 인파가 공연을 관람했다.
* 가장 많은 수익을 얻은 콘서트
-Bad 투어로 1억2천5백만달러의 총 수익을 벌어들여 당시 가장 많은 수익을 얻은 콘서트 기록을 갱신
-후에 셰어의 패러웰 투어가 1억9천250만 달러로 기록 갱신, 2006년 머다나의 컨패션스 투어가 1억9천370만 달러로 기록 갱신
* 89년 최초로 포브스 연예인 소득 연 1억 달러 시대를 열었다.
-연간 매상고가 1억 달러를 넘은 최초의 엔터테이너, 89년에 1억2500만 달러로 사상 최고 금액의 소득을 얻은 엔터테이너 (1989 년, Forbes 잡지)
-가장 성공적인 연예인으로 2008년판 기네스북에 등재
* 뮤직비디오에서 최초로 몰핑기법을 사용
-당시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사용된 신기술 몰핑기법이 뮤직비디오로서는 처음으로 마이클잭슨의 Black Or White에 사용되었다.
* MTV 역사상 일주일간 가장 많이 방송을 탄 뮤직비디오
- 마이클잭슨의 Black or White
*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앨범 Dangerous
-1991년 11월 발매 되었음에도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 되었다.
* 사상 최고의 시청률
-93년 오프라 윈프리 쇼의 마이클잭슨 출연 분이 생중계 되었고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다.
* 토스터 기술을 사용한 최초의 아티스트
-무대 아래에서 별안간 튀어나오는 것 (Dangerous 투어 오프닝 장면)
-어셔나 비, 서태지 등 많은 가수들이 흉내 내고 있음
* 투어에 뮤지컬의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아티스트
-오늘날 퍼포먼스 형 가수들에게 있어서 거의 고전처럼 되었으며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음
* 한국을 비롯 대만 등 일본 이외의 아시아 주요국들에서 순회공연을 한 최초의 메이저 가수로 기록.
-Dangerous Tour
* 방송국 HBO가 구입한 루마니아 공연 중계권은 2천만 달러로 사상 최고액.
-Dangerous Tour
* HBO에서 방송한 공연의 시청률은 미국 케이블 TV 역사상 최고 시청률 기록.
-21.4%
* 1993년 Grammy Awards - Living Legend Award(살아있는 전설 상) 최연소 수상.
-당시 그의 나이 35세
* 한 명의 팝 스타 (마이클 잭슨)가 지원하는 최다 자선 단체
-Heal The World
* 최초의 핫샷 1위
-1995년 R.Kelly와 함께 작업한 You Are Not Alone이 남녀 통틀어 사상 최초 1위로 데뷔
-이 기록 전엔 마이클잭슨&쟈넷 잭슨의 Scream이 핫 샷 5위로 데뷔해 기록을 세움
* 세계에서 가장 비싼 뮤직비디오
-여동생 쟈넷 잭슨과 함께한 뮤직비디오 Scream
-$700만(₩84억)을 들여 제작 되었다.
* 최초의 퍼포먼스 리뷰
-Dangerous의 획기적인 안무로 평론가들을 놀라게 함으로서 최초의 퍼포먼스 리뷰의 개념이 시작
-찰리 채플린이 골프 치는 장면, 대부에서 말론 브란도가 양복을 터는 장면을 비롯 200여가지가 넘는 영화의 장면들을 안무에 응용
* 가장 많이 팔린 리믹스 앨범
- 마이클잭슨의 Blood On The Dance Floor은 약 600만장 판매, 리믹스 앨범으로서는 최대 기록
* 세계에서 가장 긴 뮤직비디오
-Stan Winston과 Michael Jackson이 만든 Ghosts
-35분의 길이로 마이클잭슨이 1인 5역을 연기했다.
* Childhelp USA등 39곳의 자선 단체를 지원함으로 인해 기네스 북에 기록
- 2000년도 판
* The Rock & Roll Hall Of Fame Foundation (록앤롤 명예의 전당)에 최연소로 두 번 오름
-1997년 잭슨파이브가 연주자(Performance) 부문에 이름을 남김
-2001년 마이클잭슨 단독으로 연주자(Performance) 부문에 이름을 남김
*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음악상 수상 기록
-영어권국가에서만 350회/유럽, 남미국가에서 210회/동양권국가에서 19회
-미국의 기록북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Reply's believe or not)에 등재
* SMAPxSMAP 최대 출연료 갱신
-마이클이 처음으로 텔레비전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칸토 지구의 시청률은 22.0 퍼센트, 순간 최고 시청률은25.9 퍼센트를 기록했다.
-30분 출연하고 받은 출연료는 20만 달러
* 빌보드 싱글 1위를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가족.
-Michael Jackson & Janet Jackson
* 레코딩 역사상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기네스 월드 레코즈
The Guinness Book of World Records lists Thriller as having sold 65 million copies as of 2007 - 증빙 자료 포함 (단, 비공식 적으로 1억 4백만장의 판매고로 기네스 북에 등록된 역대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명기)

이미 영화를 능가하는 뮤직 비디오들을 만들어왔던 그 인지라 영화에 출연하거나 곡을 주는 경우는 비교적 드문 편이었는데, 아마도 인간을 위협하는 쥐를 그린 영화 [벤]의 주제곡이 그가 최초로 불렀던 영화 주제곡이었을 것이다. 1978년도에는 모타운과 유니버설 영화사의 합작인 오즈의 마법사의 흑인버전 뮤지컬 [위즈]에서 허수아비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다. 조지 루카스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와 함께 했던 입체영화 [캡틴 EO], [Bad]를 발매할 무렵, 마치 그 시기의 노래들을 뮤직비디오처럼 엮어놓은 [문워커], 그리고 범고래와 소년의 우정을 그린 영화 [프리윌리 1]에서는 [Will You Be There]를, 속편에는 [Childhood]라는 곡들을 선사한다. [맨인블랙 2]에서 직접 외계인으로 잠시 출연하기도 했고, 사운드트랙에는 없지만 [백투더 퓨처2]와 [러시아워]같은 영화에서도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흐르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마이클 잭슨이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생각해보라, 과연 그 누가 팝의 황제를 모셔올 수 있겠는가. 하지만 솔로활동 초기에는 케니 로긴스나 미니 리퍼톤, 도나 섬머, 그리고 록웰의 곡들에서 백보컬로 참여한 바는 있었다. 몇몇 랩퍼들이 마이클 잭슨의 앨범을 거쳐가기도 했다. [Dangerous]에서는 헤비 D가, [HIStory]와 [Invincible]에서는 노토리어스 B.I.G.와 타이리스가, 그리고 [Michael]앨범에는 50 센트가 랩 부분에 참여해냈다.
마이클 잭슨은 [Off The Wall] 앨범에서 스티비 원더의 곡을 부른 적이 있었고 스티비 원더의 앨범 [Hotter than July]에서는 백보컬로 참여했는데, 이후 [Bad]에 수록된 [Just Good Friends]에서 드디어 듀엣을 실현시켰다. 동생 자넷 잭슨하고 함께 부른 [Scream] 또한 무척 인상적인 콜라보레이션이었다.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 경우 [Thriller] 앨범에 [The Girl is Mine]에 참여했고 후에 마이클 잭슨은 [Say Say Say]에 피쳐링해주기도 했다. 폴 매카트니가 저작권이 중요해질 것을 귀뜸한 이후 마이클 잭슨이 비틀즈의 카탈로그를 사면서 이들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감히 다른 가수들이 함부로 불러올 수 없는 그를 피쳐링 시킨 거의 유일한 팀은 아마도 3T일 것이다. 이들은 바로 마이클 잭슨의 조카 세 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으로, 마이클 잭슨은 이들의 곡 [Why]에 함께하면서 곡의 품격을 높여줬다. 앨범발매는 마이클 잭슨의 회사 MJJ 뮤직에서 이루어졌다.

사실 이것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언급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보일 지경이다. [Thriller] 25주년 앨범 발매기념 인터뷰에 등장했던 패럴 윌리암스, 비욘세, 와이클리프 진, 윌 아이엠 등부터, MTV 시상식에서 [Man In The Mirror]를 부르다가 울먹이며 결국 노래를 마치지 못한 크리스 브라운, 그리고 최근에 마이클 잭슨이 자신의 롤 모델이라 언급한 저스틴 비버까지 이 목록은 끝없이 이어진다. [Thriller] 25주년 기념판의 한국 라이센스 버전 부클릿에는 그에게 영향 받은 한국 아티스트들의 코멘트가 빼곡히 적혀있기도 하다. 나이와 장르를 불문한, 메인스트림부터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까지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이들의 헌사를 이 지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영향을 직접 언급한 아티스트들의 이름만을 적어도 아마 책 한 권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이 영향을 비껴간 인물들을 찾는 것이 훨씬 수월할 지경이다. 가수들에 국한되지 않은, 수많은 이들의 인생과 라이프스타일 또한 바꿔놓았다. 지금 우리가 서있는 문화적 환경과 위치는 바로 마이클 잭슨을 토대로 구성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구성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