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음악, Kraftwerk(크라프트베르크)

블로거 뮤직

미래음악, Kraftwerk(크라프트베르크)

2011.07.18

90년대 중후반에 유년기를 보낸 세대라면 공감할 것이다. 우리는 국민학교와 초등학교의 전환기와, 혼란스런 밀레니엄과, 과학기술의 엄청난 발전을 직접 겪으며 자랐다. 어린이시절 교내외 활동들 역시 상당히 미래지향적인 것이었다. 열 살 남짓 꼬마들에게 돌아볼 과거보단 오지 않은 미래가 더 찬란하니 당연한 것이지만, 생각해보면 유난히 미래적이었다. 일부만 나열해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꿈돌이 랜드의 자기부상열차, 로봇과 공상과학만화들(녹색전차 해모수를 기억한다면!), 우주세계 개척을 꿈꾸며 쏘아 올렸던 고무동력기와 물로켓(과학 꿈나무들의 제1목표).
저학년시절엔 통일 포스터나 불조심 표어를 그리는 과거적 활동에 전념하였다면, 고학년으로 진급하면서는 보다 급진적으로 미래를 그렸다. 우주의 날인지 뭔지 하는 날이면 수행평가로 공상과학그림을 그려야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실현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으로 최첨단 로봇과 로켓과 우주를 그렸다. 본 적이 없기에 상상한 것을 그려야 했고, 선생님들 또한 상상력을 발휘할 것을 주문하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친구들의 그림은 다 비슷비슷했다.
아마, 우주정거장이니 화성탐사 로봇이니 하는 것들이 나오는 교육용 비디오가 상상력을 제한한 탓일거다. 그래서 나도 친구들과 비슷한 우주배경에다 비슷한 모양의 우주정거장을 그려냈다. 친구들과 비슷한 모습의 미래를 꿈꿨다.

당시의 수많은 공상과학 만화들의 오프닝을 장식한 문구 “서기 20XX년”.
시간이 흘렀고, 특별할 것 없는 오늘은 어린시절 그렇게도 기다리던 그 “서기 20XX년”이다. 누구나 다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 태블릿PC, KTX나 현실이 된 우주정거장. 지루한 지하철 안에서도 카톡과 트위터를 가능하게 한 기술의 발달에 찬사를 보낸다. 세상 참 좋아졌다. 헌데, 이 멋진 신세계는 과거 상상했던 것과는 좀 다르다.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기 위해 99년 여름, 경기도 모 초등학교의 한 어린이가 꿈꿨던 미래상을 옮겨본다.

하지만 2011년 오늘, 지난날의 미래였던 현재, 정말 저렇게 되지 않았다. 하, 정말 다행이다. 자동차가 날아다니는 건 괜찮지만, 얇은 금속 옷과 테크노가방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등에 땀이 찰 것을 생각만해도...). 로봇 밴드도 영 호감이 안간다. 그땐 최첨단이었는데, 아 진짜 끝내줬는데, 왜 이상하지.

과거시점의 미래상은 보통 지나고 나면 구식처럼 보인다. 대단히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던 미래가, 실상 과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의 2011년이 99년 당시엔 멀고먼 미래였다고 해도, 결국 시간을 사는 것은 ‘나’를 비롯한 사람들인 탓에 근본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런 연유로, 오늘 보는 99년 경기도 어린이의 미래상은 좀 이상해 보이고, 심지어 구식처럼 보인다.
물론 손안의 미디어, 넷북이나 와이파이의 상용화, 실현된 우주정거장과 우주여행상품은 지금도 충분히 미래적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 녹아들어 매일 부대끼다보니, 흥분과 기대감을 잃었다. 미래적 상상력을 잃고 나면, 너무나도 당연한 현재가 돼버린다는 거다. 특별할 것 없는 매일의 일상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미래지향적인 시도들은 언제나 멋지다. 시간이 지나면 당연한 현실이 될 수도, 유행지난 구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없는 것에 대한 시도는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일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Kraftwerk(크라프트베르크)는 여전히 위대하다. 종종 무언가를 쓰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나는 이 멋쟁이 아저씨들의 음악을 듣는다. 지금 들어도 미래적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 미래적 방향성이 그야말로 ‘상상속미래’라는 게 여실히 드러나는 점은 있지만, 그 때문에 느껴지는 설렘이 있다.
다른 악기는 배제하고 오직 전자음으로만 구성된 이들의 음악은 놀랍게도 70년대 초반의 것이다. 세기말을 강타했던 테크노, 현재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일렉트로닉 장르의 원류가 바로 크라프트베르크다. 무려 40년이나 된 이 음악들이 얼마나 세련되고 선구적인 음악이었는지는 들어보면 곧장 알 수 있다.

1970년 독일에서 결성된 크라프트베르크. 이들은 20세기를 살았지만, 21세기의 음악을 했던, 미래를 살았던 뮤지션이다. 일렉과 테크노 뿐 아니라 뉴웨이브, 하우스, 앰비언트, 심지어 힙합까지 이들이 이후 음악 씬에 미친 영향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고 한다.
비록 72년 데뷔작 [Kraftwerk]는 신서사이저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했지만, 세 번째 앨범 [Autobahn]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며 미래음악의 상징이 됐다. 영화<컨트롤>의 OST로 유명하기도 한 'Autobahn', 당시 라디오를 틀기만 하면 에어플레이 됐다는 'Radioactivity' 등 30년도 더 된 명곡들부터 2007년 발매한 싱글 'Aerodynamik'까지.
크라프트베르크의 뜻은 독일어로 발전소. 이들의 미래적 사운드를 연구하고 뽑아내는 스튜디오이자 발전소인 “클링클랑”은 오늘날까지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그렇게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은 오늘과 미래를 동시에 산다.

말 자체만으로도 구식같은 느낌을 주는 미래지향적(이 말 자체도 구식의 느낌을 준다) 단어들이 있는데, Kraftwerk의 음악은 이 단어들이 정말 잘 어울린다.

어린 시절 그렸던 우주정거장이나 자기부상열차그림 같은 느낌. 비록 친구들이랑 비슷한 그림을 그려내긴 했지만, 고백하자면 난 그런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뭔가 새롭고 신기한 것들이 현실이 되어있을 상상은 자체만으로 너무 설레던 것이었다. Kraftwerk 의 'Trans-europa express'를 처음 들었을 때, 딱 그런 기분이 들었다. 아홉 살 때 그렸던 우주정거장 그림. 두근두근하며 봤던 꿈돌이랜드의 자기부상열차 비디오도 문득 생각난다.

덧붙이자면, Kraftwerk의 진수를 맛보려면 영상을 함께 보아야한다. 유튜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들의 공연실황은 상상력 그 자체다. 80년 한 TV프로에 출연해 로봇분장을 하고 연주하던 그들을 보라. 상상력의 극치, 드라마틱한 변화가 전개될 미래, 기대감 가득한 흥분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앞서 초딩 시절 자신의 미래상을 공개한 ‘한 때 과학꿈나무’ 경기도 어린이는 무럭무럭 자라 할 일 없는 대학생이 되었다. 시간은 10년도 넘게 흘렀지만, 크게 변한 것은 없다. 그 때와 다를 것 없이 비틀즈나 벨벳언더그라운드, 산울림을 좋아하고, 가끔 창의력이 필요할 땐 크라프트베르크의 유튜브 영상을 보며, 날아다니는 자동차 대신 버스를 애용한다고 전해진다. 그 경기도 어린이가 이런 말을 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