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짙게 남은 음악 3 'Almost famous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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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짙게 남은 음악 3 'Almost famous OST'

2012.05.03

사춘기 즈음이면 특정 음악이나 가수를 열렬히 사랑하게 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모든 청소년들, 한 때 청소년이었던 사람들 대다수가 그랬다. 무슨 통과의례라도 되는 것처럼. 다양한 취향만큼 사랑의 이유도 제각각이다. 멋진 외모, 세련된 스타일, 어쩌면 ‘간지’ 때문에 좋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사랑의 시작은 음악 그 자체에 있지 않을까. 한마디로 ‘음악이 좋아서!’

애정에서 시작된 막연한 동경은 열망으로 커진다. 평범하지만 않다면 뭐라도 되고 싶은 치기어린 사춘기. 음악은 곧 사랑의 대상이자 심각한 연구의 대상이 된다. 누구나 좋아하는 음악을 특별히 더 좋아하고 더 많이 알기위해 시간과 애정을 쏟아 붓는 것이다. 결국 동경에서 시작된 열망은 아이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하게 만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떤 아이는 밴드를 하고, 누구는 평론을 하거나 음악업계에 몸담고, 더러는 영화감독이 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윌리엄’이 그렇다. 이루어질 리 없는 허황된 꿈같지만, 사실 모든 스토리는 이 영화의 감독 카메론 크로우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이야기다.

영화감독 ‘카메론 크로우’의 이름은 왠지 생소하다. 하지만 그가 감독한 탐 크루즈 주연의 ‘제리 맥과이어’나 커스틴 던스트가 출연한 ‘엘리자베스 타운’같은 영화들은 꽤나 익숙할 것. 사실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앞서 말한 두 영화만큼 알려지지는 않았다. 락 음악과 밴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 다소 마니악한 것이 사실. 하지만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골든 글로브 각본상을 수상할 만큼 탄탄한 스토리가 살아있는 영화다. 음악에 문외한이라도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는 스토리에, 꽤 진지한 성장담이 담겨있어 대중성도 상당하다.

감독의 청소년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주인공은 윌리엄.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 밑에서 누나 아니타와 함께 산다. 영특한 윌리엄은 어머니의 자랑거리지만, 누나는 사고뭉치일 뿐이다. 어머니와 반목을 거듭하던 누나, 집을 나가며 물려준 락 음반이 모범생 윌리엄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음악 잡지를 탐독하고, 여기저기에 음악관련 글을 기고하는 사춘기소년 윌리엄. 박학한 음악적 지식은 물론이고 글솜씨까지 탁월한 그에게 꿈같은 기회가 찾아온다. 유망주 밴드 ‘스틸워터’의 미국투어 동반취재를 맡게 된 것! 그것도 롤링스톤지다! 동경의 대상이었던 밴드와 함께 투어길에 오르는 영광에 설렘 가득한 소년. 하지만 그 곳에는 동경하던 밴드의 환상적인 모습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뮤직 비즈니스의 추악한 면모, 우상같던 락스타의 허상까지 모두 목격하고 만다.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영화들은 유독 선곡이 좋다. 그도 그럴 것이, 카메론 크로우는 열 세살부터 음악평론을 시작한 칼럼니스트였다. 우수한 학업성적으로 수차례 월반도 했단다. 어린나이에 롤링스톤지의 평론가까지 꿰찬 비범함은 영화에서도 돋보인다.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감독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인데다 음악에 대한 애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낸 작품. 음악 감독까지 직접 맡은 이 영화의 선곡은 유명한 곡 보다는 숨은 명곡 위주의 것이어서 한층 더 매력적이다.

윌리엄의 누나 아니타는 집안의 골칫거리다. 탁월한 학업성적 덕에 월반에 월반을 거듭한 윌리엄과는 확연히 다르다. 약물과 난잡한 성생활에 찌든 밴드들(어머니의 말에 의하면)의 음악을 듣고, 남자친구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무단외박도 서슴지 않는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녀의 나이 열여덟. 한국정서에서의 열여덟은 풋내기 고딩일 뿐이지만, 서양의 열여덟은 독립을 준비하는 나이가 아닌가. 게다가 일찍이 홀로된 윌리엄과 아니타의 어머니는 자식관리에 철통같은 엄격한 교수. ‘전형’과 ‘모범’을 바라는 어머니에게 한심한 문제아취급을 받는 아니타, 반항심이 커지는 건 당연지사다.

그러던 어느 날, 반감이 정점에 달한다. 통제와 과도한 기대를 도저히 못 참겠단다. 좋아하는 음악도 듣지 못하게 하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다. 밴드들은 모조리 약물 중독자에 타락해버린 몰염치들이라니! 그래서 가출, 아니 출가, 즉 독립을 선언하는 역사적인 날 그녀는 구구절절 이유 대신 턴테이블에 LP 하나를 얹는다. 흘러나오는 곡은 Simon & Garfunkel의 명반 [Bookends]에 수록된 ‘America'다. 자신이 떠나는 이유는 다 이 노래에 있다는 아니타. 어머니는 말했다. "약물과 섹스와 찌든 그 녀석들의 눈을 봐라!“ 아니타는 기가 차다는 듯 외친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은 시에요!“

애수어린 멜로디와 시적인 가사, 시대의 음유시인이었던 사이먼 앤 가펑클. 그들이 노래한 ‘America’는 젊은이의 열띤 의지와 희망 섞인 노랫말이 빛을 발하는 곡이다. 사실 사이먼 앤 가펑클은 타락한 락커의 외양과는 거리가 멀다. 기성세대의 우려와는 달리, 모범생 같은 수수한 외모로 지적 통찰과 사유 가득한 노래를 부르곤 했다. 만약 아니타의 어머니가 한 번이라도 그들의 음악을 제대로 들었더라면, 그런 경멸찬 시선으로 타락한 눈 운운할 수 있었을까나.

그렇게 누나는 자신의 삶을 위해 제 발로 걸어 나갔다. 그녀는 제 힘으로 살아나가길 원했고, 변화를 바랐다. 아마 홀로서기를 시작한 그녀의 삶은 이전과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큰 변화는 의외로 윌리엄에게 있었다. 아직 변성기도 오지 않은 꼬마 윌리엄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변화의 진원지는 누나와 어머니의 반목도 아니요, 누나의 갑작스런 가출도 아니다. 꼬마 윌리엄의 인생 대격변은 침대 밑에서 시작됐다.

집 떠나기 전 아니타, 침대 밑에 무언가를 숨겨두었으니 꼭 찾아보라 이른다. 착한 윌리엄은 누나 말대로 침대 밑을 살피다 가방 하나를 발견한다. 가방을 열었더니 웬걸, 밥 딜런, 레드 제플린, 롤링 스톤즈, 지미 핸드릭스같은 전설적 밴드와 뮤지션의 LP가 가득하다. 윌리엄의 입이 떡 벌어진다. 월반에 월반을 거듭할 만큼 공부엔 탁월하지만 다른 데엔 딱히 관심도 애정도 없던 윌리엄이다. 어머니의 통제에 반항 한 번 안했던 순종적 꼬마였다. 그에게 락음악이나 밴드는 금기 그 자체. 하지만 금기시 했던 것들을 마주했을 때, 금기의 허구적 실체를 파악했을 때의 쾌감은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지 않던가. 엘리트지만 뻔하고 착하기만 했던 아이의 안에서 일어난 화학작용. 원초적 부위를 자극하는 에너지, 욕망과 욕구에게 솔직하라 외치는 선동적 메시지. 그게 바로 음악, 특히 락음악의 매력이다.

침대 밑 신세계를 목도한 순간 윌리엄이 듣던 음악은 The who의 [Tommy]앨범에 담겨있는 ‘Sparks'. 날것의 매력이 살아있는 에너지 넘치는 기타리프에 윌리엄의 눈이 번쩍 뜨인다. 아니타는 알았다, 음악이 윌리엄의 눈을 뜨게 할 것임을. 그래서 집 떠나기 전 윌리엄에게 속삭였더랬다. “촛불을 켜고 Tommy를 들어보렴, 네 미래를 볼 수 있을거야”

거듭된 월반으로 또래보다 두 세 살은 어렸던 윌리엄. 순진하다 못해 찌질한데다, 흥미로운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는 소년에게도 사랑은 왔다. 밴드 ‘스틸워터’ 공연 백 스테이지에서의 첫만남부터다. 사랑의 대상은 페니 레인(케이트 허드슨). 밴드들을 쫓아다니는 미모의 여성, 스스로를 밴드에이드라 칭하지만 한마디로 그루피*다. 스틸워터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러셀과 그렇고 그런 사이. 러셀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을 것이 두려운 페니는 가벼운 태도로 일관하려 하지만, 그에 대한 사랑은 깊어만 간다. 상처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과 주체할 수 없는 진심이 혼란스러운 소녀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분별력을 잃은 상태다. 윌리엄은 그런 그녀를 안쓰러움으로 지켜보기만 한다.

사실 영화 속 관계들에서 진심의 행방은 불명이다. 뮤직비지니스의 세계에서도, 팬과 뮤지션의 관계도, 그루피와 밴드의 관계에서는 더더욱. 그래서 페니를 향한 윌리엄의 진심이 유독 돋보인다. 러셀에게 외면당하고 수면제를 과용한 페니, 의식을 잃어가는 그녀를 보살피는 건 러셀도 친구들도 아닌 윌리엄 뿐이다. 숫기 없는 그는 용기를 내 의식 없는 그녀에게 고백한다. 태어나 처음 말해본다며, 부들부들 떨면서.

찰나의 입맞춤이 지나고, 호텔방에 의사가 들이닥친다. 위세척을 해야 한다. 서두르지 않으면 큰일 날지도 모른다. 그녀의 입에 호스를 우겨넣는 절체절명의 순간, 어울리지 않게도 달콤한 러브송이 흐른다. Stevie Wonder가 부른 'My Cherie Amour의 청아한 전주다.

약에 취한 끔찍한 몰골도,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도, 호스를 입에 넣는 끔찍한 광경도 윌리엄에겐 그저 로맨틱한 전경이었을거다. 꿈만 같던 아름다운 페니 레인에게, 뭐, 못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생애 첫 고백을 마친 후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일 수밖에!

‘올모스트 페이머스’에서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밴드 스틸워터. 당대 실존했던 뮤지션들, 데이빗 보위나 믹 재거, 롤링스톤지의 편집장 벤 퐁 토레스 등의 실명이 거론되는 것과는 달리 스틸워터는 가상의 밴드다. 하지만 가상의 밴드이기에 현실의 반영이 더 쉬웠을 것이다. 지역에서 작게 시작한 밴드가 유명 밴드 공연의 오프닝을 맡으며 조금씩 이름을 알린다. 여기저기 부르는 곳이 점점 많아진다. 오프닝을 장식하던 위치에서 이제 메인 무대에 오르는 위치가 된다. 열악한 연습실에서 같이 고생하던 매니저대신 큰 매니지먼트 회사의 매니저와 계약하게 된다. 구질구질한 투어버스 대신 전용기가 생긴다.

실제 많은 슈퍼밴드들이 밟아왔던 수순 아닌 수순이다. 영화 제목처럼 ‘유명해지기 직전’의 과정이다. 이렇게 승승장구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가지는 것이 많아질수록 관계에는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인간인지라. 스틸워터의 리더이자 그들 음악의 중추 러셀, 그에게 쏠리는 인기와 관심을 시기하는 보컬. 작은 사건을 계기로 그에 대한 시기심과 불만이 폭발한다.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러셀은 투어 중 팀을 이탈해버린다. 약물과 술에 절어 돌아온 투어버스 안, 곧 해체를 말할 것만 같은 긴장이 감돈다. 이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바싹 얼어있던 멤버들이 하나 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Elton John의 ’Tiny Dancer'.

올모스트 페이머스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장면을 최고의 장면으로 꼽는다.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자연스레 긴장이 해소되는, 그야말로 ‘영화 같은’ 장면이기 때문.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장면이 인상 깊은 이유는 모든 긴장을 털고 노래하는 그들의 순수한 표정에 있다. 유명세, 부, 갈등의 축적 과정에서도 처음 음악을 시작했던 시절의 순수한 애정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결국 이 영화는 화려한 밴드의 모습부터 치졸하기 그지없는 그들의 실상까지 다 보여주지만 여전히 음악에 대한 애정은 잊지 않고 있다. 윌리엄은 러셀의 인터뷰를 위해 끊임없이 묻는다. 진부하고 촌스럽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인터뷰의 첫 질문.

영화의 감독 카메론 크로우가 직접 감독을 담당한 OST. Simon & Garfunkel, The Who, Beach Boys, Led Zeppelin, David Bowie까지. 70년대 음악 뿐 아니라 문화까지 선도했던 전설적인 뮤지션들의 음악을 만날 수 있다. 널리 알려진 대표곡 대신 숨어있는 명곡 위주의 선곡이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