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짙게 남은 음악 6 'Me And You And Everyone We Know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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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짙게 남은 음악 6 'Me And You And Everyone We Know OST'

2012.05.03

))<>((, 의미 없어 보이는 기호의 조합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말하고자 하는 게 보인다. "Back and Forth, Forever", 이 이모티콘의 설명쯤 되겠다. 누군가는 여기서 은근한 성적 뉘앙스를 느낄지도 모른다. 영화 속 인물들도 성적 표현을 위해 이 이모티콘을 활용했으니 이상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기호의 창시자인 꼬마는 정작 성에 무지하다. 아이에게 있어서 “Back and forth, forever"는 사람 간의 관계를 표현한 말일 뿐이다. 관계를 설명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서투른 어른들 틈에서 유일하게 관계의 본질을 꿰뚫어본 꼬마 로비. 로비의 언어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가 된다. 하지만 이 꼬마가 영화의 주인공은 아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평생 서툴기만 한 등장인물 모두. 실은, 나와 너와 우리 모두(Me And You And Everyone).

아닌 아내의 아들 둘을 맡아 키우는 리처드, 자신만의 세계 속에 사는 아마추어 비디오 아티스트 크리스틴. 리처드의 아들인 로비와 피터는 인터넷 채팅으로 익명의 누군가와 야한 채팅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이웃인 두 소녀는 성적 호기심으로 낯선 남자를 도발한다. 이웃집 여자아이는 아이답지 않게 비밀스런 혼수마련에 한창이다. 이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서툴게 나아간다.

이 영화의 대사들은 비일상적이다. 그래서 좀 뜨악할지도 모른다. 직접적이지도 않고 지시적이지도 않은 은유적 표현들은 책에나 나오는 게 아닌가. 더구나 말들은 허투루 나오지 않고 단단한 구조를 지어 맴돈다. 사람들은 직접적인 표현대신 채팅언어, 이모티콘, 문자, 메모, 짤막한 전화통화로 대화의 구색만을 갖춘다. 혹 대화가 오가더라도 전혀 섞이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회피해버린다. 이들은 관계에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소통에의 불신자들. 관계의 파탄과 종말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래서 제 안으로 파고든다. 그렇게 방어벽을 단단하게 세우고 나면 소통에 서툴러진다. 새로운 사람과 다시 시작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Me and you and everyone we know]는 그런 사람들의 영화다.

감독인 미란다 줄라이가 여주인공까지 맡은 이 영화는 2005년 개봉해 칸느와 선댄스에서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신선한 이야기전개와 소통과 관계에 대한 고찰, 영화에 꼭 들어맞는 OST까지. 대중적 취향의 영화와 OST는 아니지만, 영화와 한 몸 같은 음악들이 인상 깊어 들어보시라 추천한다. 미국의 영화음악가 마이클 앤드류스가 담당한 OST는 신디사운드를 활용한 여백 있는 넘버들이 가득하다. 음악만 들어도 영화를 보는 듯한, 묘한 OST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석양어린 바다를 바라보며 대화한다.

“네가 날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맹세하자. 당장 여기서 함께, 지금 당장. 알았어?”
- “알았어.”
“따라해 봐. 난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난 용감해질 것이다.”
- “난 용감해질 것이다.”
“좋아, 그리고 다음은, 나는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 것이다. 환상적으로. 용감무쌍하게. 은총으로 가득한 채로.”

두 남녀의 대화인 줄 알았던 오프닝 음악. 미란다 줄라이(크리스틴 역)의 나레이션에 마이클 앤드류스의 몽롱한 사운드가 덧대어진 넘버가 인상 깊다. 영화상에선 사진에 이야기를 더하는 비디오 아티스트 크리스틴의 작업. 그녀의 나레이션을 배경삼아 이윽고 리쳐드의 이야기가 오버랩 된다. 사랑하던 아내와의 마지막. 그토록 단단하게 스며있던 관계도 끝날 땐 참 맹랑하게 허무하다. 리처드는 각자의 짐을 정리하던 순간, 이 작별에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들 둘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물었지만, 자신이 무엇도 아니었을 뿐이라는 끔찍한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리처드는 호명되길 원했다. 누군가로부터 이름 지어져 규명되길 바랐다. 하지만 관계는 끝이 났고 그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렸다. 리처드는 관계의 실존을 입증하기 위해 세레모니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일테면, 소신공양(몸을 불태워 바치는 불가의 의식) 같은 것. 그는 웃는 낯으로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결코 지워지지 않을 관계의 종말을 위해, 그는 손에 불을 질렀다.

때로 우리 인생은 달리는 자동차 위 얹힌 금붕어 같다. 평화로운 금붕어는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냥 마트의 어항 속을 헤엄치다 어떤 꼬마 아가씨의 집으로 입양 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부주의로 갑자기 자동차 위에 얹힌 채 도로를 질주하게 됐다. 운전자는 금붕어의 위기를 모른다. 차가 영원히 같은 속도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면, 속도를 더하든 감하든 금붕어는 도로로 굴러 떨어져 죽을 것이다. 크리스틴은 달리는 차 안에서 앞 차 지붕에 얹힌 금붕어를 걱정한다. 영원히 같은 속도로 운전할 수 없기에, 어느 순간 결국 끝을 목도하게 된다고 생각하면서. 마침내 도로로 굴러 떨어져 자취를 감춘 금붕어, 크리스틴의 표정엔 연민과 불안이 어린다. 누구도 도울 수 없는 금붕어 신세가 바로 우리들의 것과 같지 않나. 하지만 곁의 노인은 외려 담담하다. “적어도 우린 이 모든 걸 함께하잖아.” 비록 달리는 차 위 금붕어 신세지만, 그러니까 함께 해야 한다는 노인의 통찰.

그런 연민으로 함께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클리쉐가 금붕어만큼 영롱하게 빛나는 장면에서 연주곡 “Goldfish"가 흐른다. 공간을 부유하는 신디 사운드가 몽환적인 곡. 대화 없이 음악만으로도 처리된 장면이지만, 다분히 이야기적이다. 금붕어의 위태로움과 농담 같은 상황에 대한 관조가 부유하는 사운드로, 점멸하는 빛으로 대체된 까닭이다.

금붕어의 죽음을 목도했던 그 날,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있었음에 문득 두려움을 느낀 크리스틴 앞에 나타난 리처드. 크리스틴과 리처드는 서로에게 묘하게 끌렸다. 티는 안냈지만, 둘은 그들 사이의 인력을 감지했다. 크리스틴은 리처드를 다시 만나러갔다. 신발가게에서 일하는 그를 먼발치서 지켜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엉뚱하게도 그녀는 양말을 잠시 짚었다가, 귀에 덮어쓴다. 엉뚱한 그녀에게 자꾸 끌리는 리쳐드. 둘은 가게를 나서 거리를 걷는다. 거리의 이름은 ‘타이론’. 그들은 익숙한 듯 이야기를 나누며 길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걷는다. 타이론 거리가 삶이라면 그들이 걷는 과정은 관계의 지속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직 서로에게 다가가지 않았지만, 그래서 아프지 않은 설렘만이 있는 관계라고 안도하면서. 사실 아직 관계가 두려운 둘은 은유와 수수께끼로 가득한 이야기만 나눈다. 서로에게 “두려워 마세요.” 부탁하면서.

미묘한 이 감정의 테마 'Socks On Ears'는 설렘이 몽글하게 샘솟는 사운드가 매력적이다. 마이클 앤드류스는 상황과 이야기를 사운드로 묘사하는 탁월한 재능이 있는 듯하다. 어딘가 엉뚱하고 미스터리한 구석이 있는 크리스틴. 냉소적이지만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리처드. 감정의 파동이 큰 사람들은 아니지만, 조용하고 점진적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음악으로 설명한다. 서툰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다가설 때 나는 소리는 아마 이런 게 아닐까.

당김은 밀어내기를 수반한다. 설렘의 거부할 수 없는 인력도 방어기제 앞에서 내쳐진다. 이혼과 가족의 외면으로 상처받은 리처드는 다가오는 크리스틴을 밀어냈다. 크리스틴은 상대와 대화하는 법을 몰라 애를 쓴다. 너와 나, 관계의 미묘한 거리감은 그녀로 하여금 작품을 향하게 했다. 이상한 인력이다. 한 쪽이 다가서면 한 쪽은 물러서고, 쫓아가면 멀어지고 멀어졌더니 쫓아온다. 힘의 균형을 위해 네 쪽으로 기울었다가 내 쪽으로 기울었다가 하며 평행을 맞춘다. 크리스틴은 리처드에게서 산 분홍 구두에 ‘나’와 ‘너’를 써 넣고 애타는 마음을 비디오에 담는다. 관계의 매커니즘을 잘 나타낸 크리스틴의 ‘Shoe'씬은 사실 꽤 유명한 장면이다.

애수어린 피아노연주 뒤로 멀어지는 신디 사운드가 아련한 'You And Your Shoe'. 마이클 앤드류스는 인간적인 사운드를 지향했고, 그래서 가장 최소한의 멜로디만을 활용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곡에 여백이 많다. 설명 대신 헤아려주기를 바라는 크리스틴과 리처드의 화법처럼. 영어적 표현으로 상대의 상황에 공감하는 표현이 바로 'Shoe' 아니던가. 별다른 설명도 없고 요란하지도 않은 관계지만, 두 사람은 끊임없이 서로를 헤아리고 있었다.

리처드의 막내아들, 여섯 살짜리 로비. 이혼한 부모님, 바쁜 아버지, 컴퓨터만 하는 형과 함께 사는 꼬마다. 로비는 형과 익명 채팅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어른인 척 하며 야한 농담을 던지는 채팅. 사실 로비는 아직 너무 꼬마라 성적 농담을 ‘성적인 방식’으로 하지 못한다. 꼬마에게 야릇한 농담은 보다 본질적인 관계의 표현이었다. 익명의 여자에게 던진 “Back and forth, forever"는 꽤 질척한 농담이지만, 아이에겐 관계와 접촉의 원리였다. 우리는 영원히 서로에게 마음을 주었다가 뺏었다가, 서로의 영역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하면서 살고 있다는 통렬한 깨달음. 하지만 채팅상대인 어른은 이 농담에 자극받고 로비를 만나고자 한다. 결국 서로의 욕구가 맞아떨어진(?) 두 사람은 한 공원 벤치에서 만나기로 한다. 벤치에 나타난 중년의 여성. 처음엔 곁에 앉아있는 꼬마를 알아보지 못한다. 로비는 오랫동안 대화해 온 상대를, 기다려온 상대를 지긋이 바라본다. 이윽고 그녀는 그 꼬마가 질척한 대화의 상대였음을 알아챈다. 실제 대화는 한마디도 없지만, 그들의 입맞춤은 짙은 울림을 선사한다. 영화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스킨십!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짜릿한 경험 뒤로, Spiritualrized의 “Anyway that you want me"가 흐른다. 스피리츄얼라이즈드는 드림팝-슈게이징의 모호한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음악으로 유명하다. 외롭지만 낭만적이고, 병적이지만 치유가 따르는 음악. 중년의 여성과 여섯 살 꼬마의 입맞춤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 찰나엔 관계의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연민, 통렬한 이해, 외로움, 설렘, 공감과 동의, 헤아림과 위로, 대화. 그리고 너와 나와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관계에 대한 영원한 갈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