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지들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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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지들은 어디로??

2011.01.27

SUB, 52street, GMV, 핫뮤직을 아시나요? 아마 어떤 분들에겐 생소할테고, 어떤 분들에겐 무척이나 반가운 이름일 겁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존재했던, 현재는 모두 폐간된 대중음악지들의 이름이지요. 한 때는 서점 입구의 잡지코너 한 켠에 자리했지만, 지금은 콜렉터들의 책장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추억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매 달 깨알 같은 부록과 알찬 정보를 제공해 음악팬들에겐 보물과도 같았던 음악잡지, 추억이 얽힌 음악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어린이 시절, 영미권 음악을 좋아하시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가요보단 바다건너 온 음악을 많이 들으며 자랐습니다. 등하굣길엔 워크맨과 함께, 집에 돌아와선 늦은 새벽까지 이어지는 라디오 프로그램과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지요. 몇 없던 음악전문 프로그램을 녹화까지 해가며 꼬박꼬박 챙겨보던 엄칭(엄마께서 칭하시길) 매니아 키드였습니다. 그렇게 음악에 대한 애정을 차곡차곡 쌓아가던 즈음, 그저 듣는 것에서 나아가 '제대로 알고자’ 하는 갈증을 느꼈습니다. '더 많이 알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진심 반 허세 반의 이유에, 남들은 모르는 고급정보를 나만 아는 데서 오는 지적 허영이 한 몫 했을 겁니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근황은 어떠한지, 새 앨범은 전작보다 좋은지, 해외 음악계 흐름은 어떠한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싶었습니다. 물론 굵직한 정보야 라디오나 TV프로를 통해 접할 수 있었지만, 세세하고 전문적인 정보에의 갈증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었지요. 그래서 그 갈증을 어찌 해소했느냐 하면, 무작정, 보무도 당당하게 서점으로 갔더랬습니다. 필자는 착한 어린이였기 때문에 모르는 게 있으면 책을 읽으라던 부모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찾은 서점에서 열세 살의 끝자락, 대중음악지와 처음 만나게 됐습니다.

막 2000년대에 들어선 그 즈음엔 꽤 많은 음악지가 있었습니다. 팝 전문지 [GMV], [52street], 그리고 락 음악 전문지 [핫뮤직]까지. 쉽게 접하지 못하는 해외 뮤지션들의 최신 소식과 음악평론, 생생한 인터뷰 기사와 고화질의 사진으로 무장한 음악지는 음악팬 소녀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부록으로 괜찮은 샘플러 CD나 좋아하는 뮤지션의 포스터라도 나올라치면 혹 조기매진이라도 될세라 방과 후 곧장 서점으로 달려가곤 했지요.

친구들과 좋아하는 뮤지션의 인터뷰기사를 돌려 읽으며 미리 쌓아둔 지식(사실 뮤지션들의 신변잡기)을 늘어놓을 적의 의기양양함, 음반추천 기사를 읽으며 음반 위시리스트를 작성하던 때의 쏠쏠한 재미. 공부하는 척 참고서 밑에 숨겨두고 읽다가 늦은 밤까지 공부하는 딸에게 간식 하사 차 오신 어머니께 발각, 잡지 한 권이 휴지조각이 된 서늘한 기억까지. 몇 푼 안 되는 용돈 때문에 CD 한 장 대신 테이프 두 개를 택해야만 했던 그 때, 용돈을 쪼개어 한 권, 두 권 모은 음악지는 음반 못지않게 소중했습니다. 부족한 용돈과 어머니의 감시란 악조건 속에서도 책장 한 켠을 빼곡히 채워가는 그 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뿌듯하던지요. 무엇보다도 다음 달 호를 기다리는 한 달간의 기분 좋은 설렘이란!

헌데 언제부턴가 음악지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음악동호회 웹 카페에 매 달 음악지 내용이 그대로 업로드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즈음이었지요. 더욱이 외국어 실력을 조금만 발휘하면 해외 오피셜 사이트를 통해 최신 뉴스를 빠르게 얻을 수 있는데다, 희귀음반이나 해외 인디음악에 대한 고급정보까지 얻을 수 있음을 안 이상 음악지에 대한 애정이 예전 같을 리 없었습니다. 신속 정확한데다 무료인 정보들, 이 새로운 정보취득방식에 익숙해져 버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굳이 잡지를 사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정보를 손쉽게 얻으면서 구입 횟수는 자연스레 줄어만 갔지요. 때마침 고3이 되면서 대입을 위해 음악에 대한 애정을 잠시 접어두어야 했고, 어머니에 의해 책장 한 켠을 차지했던 음악잡지들이 폐지 수거함으로 퇴출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 음악지에 대한 애정은 식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곤 꽤 오래간, 까맣게 잊고 지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09년의 어느 날. 여느 귀갓길과 같이 서점 내 레코드샵에 들러 사고 싶던 음반을 골라 계산을 기다리는 줄을 섰습니다. 그러다 문득, 잡지코너에 있을 음악지 생각이 나더군요. 간만에 한 권 사볼까 싶어 코너 여기저기를 살폈습니다. 헌데 그 많은 잡지들 사이에서 발견한 건 클래식 전문지뿐, 즐겨보던 대중 음악지는 도통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점원에게 물으니 '현재 발행되는 음악 잡지는 클래식 계열 밖에 없네요'하고 맙니다. 세상에, 품절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다'니! 예상 밖의 소식에 놀라움을 감출 길이 없었습니다. 괜한 섭섭함과 미안함, 부끄러움이 뒤섞인 채로 서점을 나서며 생각했지요.

사실 음악지의 위기는 외환위기 즈음부터 불어 닥친 음반계와 출판계의 경제난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이에 맞물려 인터넷의 활성화, MP3의 보편화로 음반시장이 큰 타격을 받으면서 영향력 하에 있던 음악지 출판계 또한 사장세에 들어서고 말았던거죠. 음악소비 환경이 변하면서 독자 수가 많이 줄어든 것도 큰 이유였습니다. 결국 수요저하와 광고수익감소의 위기를 타개하지 못한 음악지들은 하나 둘 폐간되기에 이릅니다. [GMV]의 폐간을 비롯, [52street(구 오이뮤직)]은 무기한 휴간 중으로 거의 폐간상태이고, 가장 좋아했던 최장수 음악잡지인 [핫뮤직]마저 2008년 폐간하고 말았다는 안타까운 소식까지. 가히 멸종과도 같은 음악지들의 폐간소식을 뒤늦게 접하며 모종의 죄책감에 휩싸인 채 음악지, 그리고 오늘날을 돌아보았습니다.
현재 다수의 오프라인 음악지가 폐간된 상태지만, 그를 대신해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다양한 미디어와 컨텐츠는 존재합니다. 개인의 음악적 견해와 취향이 담긴 블로그, 영상 컨텐츠를 제공하는 유튜브, 음악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털. 오프라인 음악지에서 형태와 플랫폼만 달리한 음악웹진까지. 심지어 트위터나 마이스페이스를 통해 뮤지션과의 직접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음악 이외의 개인사까지 모두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정보 면에선 훨씬 풍성해졌습니다. 정보 습득의 경로가 다양해짐에 따라 일반인도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을 갖추게 됐구요. 이쯤 되면 음악지의 폐간을 환경변화에 따른 자연도태로 치부할 법도 합니다. 자연스런 흐름으로 말이에요.

하지만 클릭만으로 간편하게 받아볼 수 있는 음악 웹진으로도, 다양한 컨텐츠로 무장한 포털 서비스로도 채울 수 없는 음악지만의 고유한 매력이 있습니다. 온라인이 대신할 수 없는 오프라인 매체의 가치 말입니다. 음악지가 주는 실재(實在)감은 무엇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높은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영국의 음악잡지 NME
두터운 잡지 책의 질감과 무게감, 막 인쇄된 잉크의 냄새, 애정과 설렘이 담긴 한 권의 지식. 게다가 콜렉팅의 즐거움까지. 허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가치는 오롯이 음악만을 위해 존재하는 매체라는데 있습니다. 음악을 위해 할당된 지면이나 한정된 시공간이 아닌, 오직 음악만을 위한 한 권. 너무 많은 음악, 너무 많은 정보 속에서 길 잃기 십상인 오늘날, 손에 들리는 한 권의 가치는 때로 무척이나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국내의 상황과는 사뭇 다르게도 먼 나라 영국과 미국, 이웃 나라 일본에선 여전히 다양한 음악지가 발행되고 있습니다. 다루는 장르와 형식이 무척이나 다양한데다, 그 퀄리티 또한 높습니다. 새로운 매체의 출현으로 출판계와 음반계가 위기를 겪고 있음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오프라인 음악지를 발행하고 있음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온라인 매체의 영향력과 오프라인 매체의 영향력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한 호 한 호 쌓아가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궤적을 그리는 충실함, 오프라인 음악지의 존재 가치를 알고 지켜내는 그들의 문화와 이를 가능케 하는 많은 조건들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습니다.

헌데 새해를 맞이하던 즈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대중음악 SOUND]라는 대중음악 무크지의 창간 소식이었지요. 소식을 듣자마자 들뜬 기분으로 서점엘 갔습니다. 독자들의 오랜 기다림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새 재고 없이 팔렸더군요. 다음날 다른 지점에 들르는 수고를 더하고 나서야 얻을 수 있었던 아주 오래간만의 음악지. 손에 들리는 묵직한 잡지책의 느낌이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한 권으로 정제된 알찬 소식들을 흡수하듯 읽어내던 지하철에서 왠지 모를 두근거림마저 느꼈습니다. 처음 음악잡지를 읽으며 밤을 꼬박 샜던 열세 살 끝 무렵처럼 말이죠. 다음 호가 나올 때까지 지속될 기분 좋은 설렘. 무크지로 발행된 터라 기다림이 길지만, 그렇기에 더 설레는 기다림이 아닐는지요. 여러 어려움 속에 발행된 만큼 오프라인 음악지의 존재가치를 증명해내는 전문지로, 다양한 대중음악지 등장의 밑거름으로 성장해나가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