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아이돌에 대한 기억'남자 아이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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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아이돌에 대한 기억'남자 아이돌'편

2011.02.10

‘긴급조치 19호’를 아십니까? 흰색, 노란색, 하늘색, 주황색, 초록색, 붉은색, 보라색 풍선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설 특집 방송을 휘어잡은 아이돌들을 보며 문득 떠오른, 그 시절 같은 자리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1세대 아이돌 가수들. 이제 그들도 팬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의 이름 안에서 함께 울고 웃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내 마음 속 나의 첫 우상, 한 천 년의 끝과 새천년의 시작에 화려하게 이름을 날렸던 1세대 아이돌의 이야기와 그들의 (숨은)명곡들을 소개합니다.

이제는 High-five Of Thirteenagers가 되어버린 초대 아이돌, H.O.T. 1집 타이틀곡 ‘전사의 후예’로 데뷔한 이들은 보송보송한 털모자, 털장갑을 들고 ‘캔디’를 부르며 대한민국 가요계 아이돌 신드롬의 문을 활짝 연 1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이다. H.O.T. 신드롬은 10대를 넘어 가히 국민적이었는데, 이들을 ‘핫’이라고 부르느냐 ‘에쵸티’라고 부르느냐에 따라 구세대와 신세대가 갈렸을 정도. 명절에는 H.O.T.가 단독 진행하는 특집 프로그램이 방영되기도 했었고, 5집 컴백을 할 때는 모방송사에서 아예 한 시간짜리 특집 방송이 제작되어 전파를 타기도 했었다. H.O.T.의 캐리커쳐가 그려진 각종 문구류부터 자서전, H.O.T. 음료수, H.O.T. 향수에 H.O.T.의 DNA가 든 목걸이까지 판매되었으니 현세대 아이돌로는 상상도 못할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엔터테이너의 전설이었던 그들. H.O.T.가 특별했던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의 노래에 90년대 말의 각종 사회적 사건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IMF 시기의 희망을 노래한 ‘빛’과 1999년 C랜드 수련원의 화재 사건을 다룬 ‘아이야’, 장애인의 사회적 소외 이야기인 ‘Outside Castle’이 그 대표적인 예. 멤버들의 자작곡만으로 앨범을 꾸리기도 하고, 가사로써 ‘10대들의 오피니언 리더’ 역할을 하기도 했던 H.O.T.는 진정 전설의 아이돌이었다.

1세대 아이돌 이야기에 절대 빠지면 안될 또 다른 그룹, 젝키. H.O.T.가 강인함으로 전사의 이미지를 풍겼다면 젝키는 비슷한 느낌의 가사에서도 좀 더 10대다운 귀여움이 묻어났던 감성 충만 아이돌이었다. 시조창의 기운이 느껴지는 특이한 데뷔곡인 ‘학원별곡’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이들은 엄청난 점프 실력을 보여주었던 ‘폼생폼사’로 1세대 아이돌의 양대 산맥으로 등극했었다. 이미지를 기준으로 6명의 멤버가 3명씩 ‘화이트 키스’와 ‘블랙 키스’로 나뉘어졌던 것도 방울방울한 추억 중 하나. 이후 2, 3집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10대들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젝키의 인기는 새 학기 새 친구를 사귀면 ‘H.O.T.가 좋아? 젝키가 좋아?’를 먼저 물어봤던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1세대 아이돌의 성공엔 젝키와 H.O.T.의 흥미진진한 라이벌 구도가 크게 한 몫 했을지도. 젝키의 불멸의 히트곡인 ‘커플’과 ‘예감’은 리메이크되거나 라디오의 신청곡으로 현재까지도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도 어디선가 ‘Com’ Back’의 인트로가 들리면 펌프 위에 서 있는 것만 같아 가슴이 설렌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뚜렷한 기승전결 속에 감동이 잔뜩 묻어나는 ‘어머님께’란 노래로 단숨에 국민가수로 자리한 그룹, god. 어려운 시절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힌 노래와 함께 등장한 god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기 재민이’를 키우는 좌충우돌 모습을 보여주며 단숨에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이들의 선전은 H.O.T.와 젝키의 해체로 시들해질 뻔했던 아이돌 계에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기도. 먹을 것이 없어 과자 하나도 나눠먹는 어려운 연습생 시절을 거쳐 국민 가수로 거듭난 god는 이제는 프로듀서로서 입지를 굳힌 박진영의 성공에 초석이 되어주기도 했다. god 음악의 특징은 단연 지금 들어봐도 좋은 멜로디와 기억에 확 박히는 가사.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와 ‘어머님은 짜장면을 싫다고 하셨어’로 일축되는 ‘어머님께’와 ‘난 니가 싫어, 니가 정말 싫어!’로 기억되는 ‘거짓말’, ‘내가 가는 이 길은 어디로 가는지’라며 지금도 고3들의 공감을 사고 있는 ‘길’이 대표적인 예이다.

젝키와 같은 소속사에서 야심차게 내어놓았던 보이밴드, 클릭비. 4명의 보컬팀과 3명의 악기팀으로 이루어진 클릭비는 아이돌다운 밝은 노래와 수려한 외모로 소녀팬들을 휘어잡으며 1.5세대 아이돌계의 3자 구도를 이룬 그룹이었다. god와 신화, 클릭비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각기 다른 음악잡지를 사서 서로 좋아하는 아이돌이 나온 부분을 교환하던 것도 그 시절의 기억 중 하나. 클릭비의 실력파 멤버들은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음악 활동 중인데, 어린 시절 이미 기타 연주 앨범을 발매했던 노민혁은 현재 ‘애쉬 그레이’라는 3인조 밴드에서 활동 중이고, 리드보컬이었던 오종혁은 ‘온에어’, ‘쓰릴미’를 거쳐 뮤지컬 배우로 거듭나는 중이며, 드럼을 맡았던 하현곤은 현재 ‘하현곤팩토리’란 이름으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한발을 내딛고 있다. 클릭비란 이름으로 더 이상 함께 활동하지 않는 동안에도 하현곤의 프로젝트 앨범에 멤버들이 간간이 참여하며 우정을 과시하더니, 최근에는 재결합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지기도. 어린 시절 지금 들어도 신나는 흥겨운 곡을 노래한 이들이 사뭇 성숙해진 모습으로 어떤 음악을 전해줄 지 내심 기대해 본다.

1세대 아이돌 중 유일하게 현재 진행형인 그룹, 신화. 올해로 데뷔 13년 차인 대한민국 최장수 아이돌 그룹이기도 하다. 1집에서 고배를 마시고 H.O.T.의 그렇고 그런 아류로 사장되는가 싶더니, 2집에서 ‘T.O.P’와 ‘YO!’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명실상부 1세대 아이돌로 거듭났던 이들. 모든 멤버가 근육질이 되어 돌아온 3집 ‘Only One’에서는 메리야쓰에 츄리닝 하나 살짝 걸치고 나와 당시 남자가수로서는 다소 요염한 안무를 선보였던 ‘원조 짐승돌’이기도 하다. 멤버들의 끼 또한 충만하여 그 당시 거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을 접수하기도 했던 원조 예능돌 신화. 함께 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이들 앨범의 수록곡과 퍼포먼스들을 찬찬히 뜯어봄으로써 대한민국 대중가요 시장의 흐름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특히나 아이돌 멤버 간 우정의 씁쓸한 말미가 자주 보이는 요즘, 해체 위기를 서로 간의 믿음으로 극복한 이들의 우정이야 말로 가요계의 신화를 창조해내며 돋보이고 있다.

* 본 글은 남자 아이돌 위주로 구성하였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원하신다면 여자 아이돌편도 준비하겠으니 많은 댓글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