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동익&조동희와의 작업을 결정한 이유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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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동익&조동희와의 작업을 결정한 이유 (2편)

2020.11.04
Special

내가 조동익&조동희와의 작업을 결정한 이유 (2편)

"저는 컴프(컴프레서)나 리미터 안 쓰고 작업했으면 합니다."

사실 컴프레서나 리미터는 음악 작업하는 사람에겐 거부하기 힘든 유혹입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요. 예를 들어 볼까요? 해상도가 떨어지는 JPG 이미지 파일의 크기를 줄이면 좀 더 이미지가 또렷하게 보입니다.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리를 압축(compress)하니 소리는 좀 더 또렷해집니다.

사람 목소리는 힘 있고 또렷하게 들리며, 드럼의 타격감은 살아납니다. 또한 음색이 비슷한 악기들의 소리가 사용하기 전보다 잘 구분되며, 전체적으로 소리가 정돈된 느낌입니다. 요즘 한창 요리에 빠져있는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은데요. 북엇국이나 사골 곰국은 정말 재료가 적게 들어가는 요리이지만 또 그렇기에 음식 맛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북엇국의 경우 황태를 직접 찢어, 무와 함께 참기름에 볶다가, 쌀뜨물에 넣고, 육젓으로 간을 해도 엄마가 해준 북엇국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 되는데요. 여기에 MSG 한 티스푼이면 고든 램지도 끓이지 못할 것 같은 북엇국이 완성됩니다. 고든 램지가 북엇국을 끓였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요. (...) 엄마 손맛의 비밀은 MSG였던 것이지요. 어쨌든 컴프레서나 리미터는 MSG같은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존재합니다. 소리를 압축했기에 압축된 범위 내의 소리는 명확하고 또렷해지지만 그 신호 범위(threshold)를 벗어나는 신호에 대해서도 신호 범위까지밖에 음량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다이내믹스가 큰 음악을 들을 때에는 매우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예를 들면 좋을 것 같은데요. 얼마 전에 친한 형님의 차를 운전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 차에는 배기량이 6,600cc인 12기통 엔진이 장착되어 있었죠. 차는 브레이크에서 발만 떼어도 달려 나가려고 으르렁거리는데 제가 운전했던 길은 제한 속도가 50km/h인 왕복 2차선의 시골길. 그런 차로 그런 길을 운전하는 게 태백이나 인제 서킷을 달리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그 때 알았습니다. 달려 나가려는 차(소리)를 계속 억제해야 하면서(컴프레서)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죠.

컴프레서를 쓰는 게 무조건 좋다는 것도, 무조건 안 좋다는 것도 아닙니다. 이건 어디에 타겟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어떤 가수의 앨범 작업을 하는데 그 가수의 앨범을 사는 사람들이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음악을 주로 듣는다면(대표적으로 아이돌 가수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필자 주) 그 가수의 앨범 작업에는 컴프레서나 리미터를 쓰는 게 맞을 겁니다.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의 가장 큰 장점 – 해상도와 정위감 – 은 부각시키면서,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의 가장 큰 단점 – 상대적으로 작은 다이내믹스 – 은 덜 부각되니 득실을 따져보면 실보다 득이 많을 것이고, 그러니 컴프레서를 사용하는 게 당연한 선택이죠.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컴프레서를 쓰지 않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고요.

저는 제 오디오 시스템으로 음악을 들었을 때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앨범을 원했습니다. 요즘에는 그런 앨범을 정말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그래서 컴프레서나 리미터를 쓰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세웠고, 제 의견에 조동익 씨도 흔쾌하게 동의하며 같이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업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음원이 오면 제가 그 음원을 모니터하고, 어떤 식으로 작업하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면 그 내용을 조동익 씨가 전해 듣고 취사선택을 해서 작업하는 방식으로요. "뭐 하러 귀찮게 그렇게 왔다 갔다 해? 그냥 직접 작업하면 되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음악 작업하는 DAW가 각기 다르다는(프로 툴즈와 로직 프로) 이유 외에도 조동익 씨가 작업한 걸 제가 함부로 손대는 것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작업해야 작업 전후의 비교가 용이해지면서 소리가 개선되었나 아닌가를 확인하기가 편하기에 이런 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전체적은 음악 성향을 모니터하기 위해 받은, 믹싱도 제대로 되지 않은 첫 번째 음원에서 받은 느낌은 1) 음원 소스가 많다, 2) 1)의 이유로 조동익 씨가 작업하는데 고생 많이 하셨겠구나, 3) 목소리와 MR이 겉도는 느낌이다, 4) '슬픔은 아름다움의 그림자'는 어쿠스틱 버전을 한 트랙 추가하면 좋겠다 이었습니다. 이런 내용과 원하는 믹싱의 방향을 전달했더니 일주일쯤 후에 믹싱이 완료된 음원이 도착했습니다. 조동희 씨도 '슬픔은 아름다움의 그림자' 어쿠스틱 버전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오빠에게 말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고 있다가 제가 그런 내용을 써서 보내서 한 곡이 더 추가되었다며 매우 좋아하더군요. 그렇게 믹싱 때 10 곡이었던 앨범은 마스터링 때 11곡인 앨범이 되었습니다.

매우 많은 분들이 조동희 씨의 보컬 스타일이 장필순 씨와 비슷하다고 말하지만 제가 듣기엔 아닙니다.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일단 발성 자체가 다르고, 그렇기에 목소리 톤이나 소리의 굵기, 에너지 정도, 레코딩 시의 마이크 게인 등등 모든 게 다릅니다. 그나마 비슷한 게 분위기라고 생각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목소리의 분위기마저 다릅니다.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장필순 씨는 포크 음악에 어울리는 목소리이고, 조동희 씨는 포크 보다는 일렉트로니카에 어울리는 목소리입니다. 이건 비단 제 생각뿐만이 아니라 조동희 씨의 목소리를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고 조동진 씨의 말이기도 하고요.

바로 여기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앰비언트와 일렉트로니카에 로우파이를 한 숟가락 섞은 듯한 앨범이기에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조동희 씨의 목소리는 궁합이 좋을 것 같지만 일렉트로니카라는 장르 자체가 가상악기를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장르이고, 로우파이 분위기이다보니 소리에 약간 지저분한 느낌이 살아있어야 하는데 조동희 씨의 목소리는 애초에 성량이 작고, 미성이면서, 대역이 높다 보니 마이크 게인을 상당히 높게 세팅한 다음, 마이크를 씹어 먹을 듯이 가까이에서 녹음한, 그렇기에 너무 심할 정도로 깨끗하게 녹음된 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둘이 만나니 헤어와 메이크업은 도산대로의 멋진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고 의상은 "무릎 나온 추리닝"을 입은 느낌적인 느낌? 목소리와 반주가 겉도는 느낌이었죠.

"동희 씨 목소리 때문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전체적으로 소리의 중심이 너무 높은데?" 조동희 씨의 목소리 대역이 높아서 무게 중심이 높게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소리의 중심이 너무 높은 것 같았습니다. 여러 트랙을 들으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답이 나오더군요. 베이스 기타의 볼륨이 너무 작은 게 이유였습니다. 가뜩이나 킥드럼과 신디사이저의 배음이 주를 이루는, 그렇기에 이퀄라이저가 V형 커브를 그리게 되는 일렉트로니카 장르에서 베이스의 소리가 안 들리니 전체적으로 소리가 좀 뜨는 느낌이었고, 그래서 베이스 기타의 볼륨을 올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면서 각 트랙 별 이퀄라이저 세팅과 각 소스 별 볼륨의 조절 등에 관해 이야기해서 전해드렸죠.

그리고 며칠 뒤 제 의견이 모두 반영된 최종본이 도착했습니다. 조동익 씨가 제 의견을 모두 받아들인 게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조동희 씨가 물어보니 "다 맞는 말이잖아. 한지훈 씨가 말한 대로 작업하는 게 맞아. 넌 이제 놀면 되지만 난 이제부터 시작이다. ㅠㅠ" 하시면서 작업하셨다는군요.

어쨌든 그렇게 조동희, 조동익 씨와의 작업은 모두 웃으면서 즐겁게, 그리고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고 끝났습니다. 작업료로 얘기한 조동익 씨와의 소주 한 잔과 꼬리곰탕은 아직 먹지 못했지만요.

음원을 오픈하기 전이기에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긴 어렵지만 조동희 씨의 새 앨범은 1) 들리는 듯, 안 들리는 듯 들리는 여러 작은 음원 소스들, 2) 조동희 씨 목소리, 3) 조동희 씨 목소리와 다른 악기들과의 조화, 4) 작은 볼륨과 큰 볼륨일 때 느낌에 차이가 있나 등등에 신경 써서 들어보시면 그냥 음악을 들을 때와는 다른 느낌의 조동희 2집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이들이 제가 신경 써서 작업한 부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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